2010 남아공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에서 반짝했다 요즘 안보이는 선수들

조회수 2019. 1. 22. 09: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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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추억의 선수들 ..

1. 이용래


“절충형” 조광래호의 황태자

2010월드컵에서 수미로 날라다녔던 김정우가 조광래호에서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받기 시작하고 그 대체자로 발탁


실제로 조광래호 초창기 몇경기에서 박지성을 연상시키는 미친듯한 활동량으로 지금도 국대가 해결하지 못한 기성용-구자철 조합의 뒤치닥거리를 완벽하게 해내며 미래를 기대하게 했으나 조광래 감독의 과한 기용에 혹사당하며 2011년 한해에만 약 60경기를 뛰게 됨

이후 급격한 폼 저하로 활동량 20 효율성 0 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조광래 감독이 물러나자 함께 국대에서 못 보고 있음

2. 윤빛가람


조광래호의 황태자2

K리그에서 2시즌 연속 베스트11 선정되고 아시안컵 8강전 이란전에서 연장 결승골로 제대로 눈도장 찍었으나 이후 조광래호가 무너지면서 함께 부진하기 시작. 


이후 국대에서 안보일려 하다가… K리그에서 부활하여 슈틸리케 시절 다시 뽑혀 체코전 골 넣으면서 부활하는 듯 하다가…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나고 신태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국대에서 못 보고 있음

3. 서정진


한국 국대 역대 역습짤의 주인공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짤을 박지성으로 착각할 정도로 뛰는 폼이 비슷하다. 조광래호에 뽑혀 폴란드 상대로 박주영에게 2어시를 선사하며 새로운 신성의 탄생을 알렸으나 그게 인생경기였고 그 이후 국대에서 못 보고 있음

4. 홍정호


수비 실수가 잦은데 빌드업 되는 수비수라고 한국형 피케라는 타이틀을 얻으면서 계속 국대에는 뽑혔던 홍정호. 실제로 재능을 인정받아 분데스리가에서 오퍼를 받아 센터백으로선 이례적으로 빅리그에 진출하여 큰 기대를 받음

그리고 분데스에서 엄청 잘하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하는 것도 아닌 무난하게 활약하던 홍정호가 뜬금없이 중국행 선택하면서 많은 비난을 받고 실제로 중국리그로 이적 이후 기량이 줄어듬. 중국화 된거 아니냐는 비아냥을 듣다가 국대에서 못 보고 있음

5. 이명주


최강희호에서 첫 발탁되어 A매치 데뷔전 MOM 먹으면서 화려하게 등장, 이후 리그 활약을 바탕으로 홍명보호에서도 계속 발탁이 되어서 무난했지만 결국 국대 중앙미드는 기성용+@로 꾸려질 수밖에 없었기에 스타일상 기성용 파트너로 적절치 못해 14월드컵에서 탈락, 이후 슈틸리케 체제에서도 큰 눈도장 못찍고 권창훈, 정우영, 이재성 같은 차기 주자들이 올라오면서 자연스레 국대에서 못 보고 있음

6. 한국영


수많은 시도가 이루어진 기성용 짝꿍 찾기 중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선수

사실 기량은 의문점이 많았으나 단순히 김남일이나 김정우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이라는 부분덕에 기성용 파트너로 가장 많이 나옴. 홍명보, 슈틸리케 체제에서는 거의 준주전 수준이었으나 결국 스타일만 비슷했다는 결론으로 기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음.

결국 신태용호에서 선택받지 못하면서 국대에서 못 보고 있음

7. 박종우


사실 한국영 이전에 기성용 파트너로 가장 가능성 높던 선수

런던올림픽에서 김정우를 연상시키는 싸움형 미드필더로 기성용 파트너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며 국대에서도 기대를 모았으나 플레이 스타일이 기성용 모방형으로 바뀌며 안익수 감독에게 “넌 박종우지 기성용이 아니다” 소리까지 들으면서 기량 하락

결국 국대에서 한국영에게 밀리며 국대에서 못 보고 있음

8. 김보경


나름 EPL 경험도 해보며 박지성 국대 은퇴 이후엔 무려 “포스트 박지성” 이란 극찬까지 받았던 선수

그러나 EPL 소속팀에서 경기 출전 기회를 많이 받지 못함. 이 상황에서 홍명보 감독은 김보경을 월드컵 엔트리에 선택했으나 결과는 좋지 못했음. 아쉽게도 가는 소속팀 마다 종종 강등되는 일도 벌어짐

그러다 K리그 복귀 이후 폼을 끌어올리며 슈틸리케호 초창기에 모습을 보였으나 그 뒤로 잘 안보임. 이후 신태용호에 딱 1번 소집된걸 마지막으로 국대에서 못 보고 있음

9. 이정협


슈틸리케의 진정한 황태자.

K리그의 흔하다면 흔했던 공격수 이정협을 슈틸리케가 발탁하여 아시안컵에서 맹활약. 당시 국내에서는 홍명보 감독의 학연, 지연 등의 의리 엔트리랑 다르다며 갓틸리케를 외치게 했던 대표적인 선수 중 한명이다.

당시 이정협은 국가대표팀 활약으로 2부리그에서 1부리그로 임대까지 가게 됨. 아쉽게도 소속팀에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음. 슈틸리케 감독과 상성이 잘 맞은 선수였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후 부진이 거듭되면서 슈틸리케 감독이 물러난 이후 자연스럽게 국대에서 못 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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