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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와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서울 레스토랑 추천 4

조회수 2019. 9. 16. 01: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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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뒷골목, 컴컴한 지하, 간판이 없는 가게들. 서울 미식 누아르를 찾아 나선 일주일의 기록.

있을 在

도산공원 근처에 소리 없이 오픈한 ‘있을 재’는 요즘 가장 주목받는 레스토랑이다. 네 살 터울의 형제가 20년 넘는 오랜 세월 한 우물만 파다 마침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챕터를 쓰고 있다. 한마디로 내공의 맛과 힘이 느껴지는 곳. 와인 섹션이 레스토랑의 중심을 관통하며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오직 요리가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어둑한 테이블 위로 한 줄기 핀 조명이 떨어지며 요리에만 집중하도록 만든다. 영화 <아이엠러브>에서 틸다 스윈턴이 새우 요리를 한 입 먹고 반해버렸던 레스토랑 신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랄까. 한식에서 영감 받은 푸근하고 맛의 핵심이 느껴지는 이탤리언 요리를 선보인다. 특히 진하게 뽑은 육수의 맛과 바싹 쫄깃하게 익힌 메추리 요리는 감칠맛의 향연을 느껴볼 수 있다. 완성도 높고 존재감 넘치는 두 남자를 닮은 이 공간이 오래도록 한자리를 지켜주었으면 바람으로 문을 나서게 된다.

6-3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어느 뜨거운 오후. 길고 투명한 커튼으로 둘러싸인 공간 앞을 서성였다. ‘6-3’이라고 손톱만 하게 적힌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리드미컬한 풍경이 펼쳐진다. 4미터는 거뜬히 넘을 높은 천장 끝까지 가지런하게 정렬된 와인병, 테이블 위로 하나둘 켜지는 촛불, 직사각형 프레임 사이로 스치듯 보이는 요리사들의 분주한 움직임. 청담동 6-3은 어쩌면 서울에서 가장 높은 천장을 품은 다이닝 공간이 아닐까? 이곳의 메뉴는 일간신문처럼 매일매일 새롭게 종이에 인쇄된다. 서울 ‘제로 콤플렉스’와 파리 ‘르 샤토브리앙’에서 경험을 쌓은 박진용 셰프가 선보이는 캐주얼하고 크리에이티브한 요리는 더 많은 와인을 탐하게 한다. 무엇보다 이제 6-3에서는 낮술이 주는 풍요를 누릴 수 있다. 3가지 코스요리로 제공하는 런치 메뉴에 펑키한 내추럴 와인을 곁들이는 것보다 완벽한 하루는 없다.

Noyu

한때 이곳은 네온사인이 붉게 비추던 정육점이었다. ‘노유’라 불리던 어느 작은 동네 골목길에서 몇십 년 동안 그렇게 자리를 지켰다. 지금은 오직 간판만 남아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그곳은 사람과 사람이 모이고 꽃병으로 사용하고 싶은 귀여운 와인병이 일렬로 줄지어 있는 술집이 되었다. 길고 복잡한 와인 리스트 대신 주인이 마치 스무고개 하듯 이런저런 취향을 물어봐가며 와인을 추천한다. 그게 탁 들어맞은 날엔 쉬이 자리를 떠날 수 없다. 병에서 글라스로 넘나들며 신나게 마시다 보면 너무 짧은 여름밤이 아쉬울 따름이다. 콩테 치즈, 샤퀴테리 모음 한 판, 백 알도 거뜬히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절임 방울토마토, 밤 11시부터 주문이 가능한 마성의 라면까지. 단순하고 편안하게 사람을 기분 좋아지게 하는 공간 노유. 지극히 영화 같다고 느끼는 순간은 자동차가 라이트를 켜고 노유 앞을 지나가는 순간이다.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불빛이 흰 벽을 비출 때 그저 그 순간의 장면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진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 언제나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는 한국 근대 건축물의 걸작 원서동 공간(空間) 사옥. 지금은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가 자리 잡았다. 은밀하게 감춰진 미로 같은 그 건물 사이에서 투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유리 건물. 2010년 시작해 한국 전통 디저트의 새로운 면면을 보여준 합이 10주년을 앞두고 그곳으로 들어갔다. 한옥을 바라보며 먹는다. 창덕궁 비원을 바라보며 마신다. 테이블 앞에 가지런히 놓인 시루떡과 주악, 유자차 한 잔을 앞에 두고 마주하면 시선은 자연스레 양옆으로 향한다. 스타일리스트 서영희가 선물처럼 한땀 한땀 박음질하고 담양의 고운 한지로 빚은 거대한 샹들리에, 그 아래 놓인 디자이너 폴 키에르홀름의 pk1 의자 다섯 개, 패션 디자이너 제이백이 합(合) 한자의 고유사선 모양에서 영감 받아 만든 그레이 유니폼, 이종길 금속공예가의 고즈넉한 주전자, 창가에 켜켜이 쌓아둔 시루. 어느 곳에 시선을 두어도 좋다. 합(合) 안에 모든 아름다움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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