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은 왜 '스프 깡통'으로 유명해 질 수 있었을까?

조회수 2020. 3. 6. 17:13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워홀은 자기 자신을 바꾸어나가기 시작했다

1. 앤디 워홀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출처: 1977년의 앤디 워홀

앤디 워홀은 맨해튼의 스테이블 갤러리에서 첫 작품 전시회를 열었다. 그 는 이 전시회에서 코카콜라 병과 캠벨 수프 깡통 같은 것들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그린 그림들을 선보였다. 



앤디 워홀은 전시회 기간 내내 멍한 눈으로 말없이 한쪽 구석에 서 있었다. 이전 화가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화가들은 대부분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장황한 말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과거에 커포티를 비롯해 미술품 매매상과 후원자들을 귀찮게 쫓아다니던 모습은 더 이상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2. 작가의 의도와 주제를
알 수 없는 그림

출처: Campbell's Soup I (1968)

비평가들은 워홀의 달라진 모습과 작품 세계에 당혹스러워하면서도 관심 을 보였다. 그들은 작가의 의도와 주제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워홀에게 “의도가 뭐죠?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지만, 그는 “그저 좋아서 그린 겁니다”, “워낙 수프를 좋아하거든요” 하고 간단히 대꾸했다. 


3. 비평가들의 해석을 불러오다

"워홀의 작품은 대량 소비문화를
신화처럼 떠받드는 현대 문명 사회의
필연적인 결과다"
출처: 3 Coke Bottles Andy Warhol Date: 1962

비평가들은 앞다투어 그의 작품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워홀의 작품은 대량 소비문화를 신화처럼 떠받드는 현대 문명 사회의 필연적인 결과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겠다는 결정, 이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차원을 열어보이려는 게 작가의 의도다.” 어쨌든 전시회는 크게 성공했고, 워홀은 새로운 문화운동, 곧 대중예술의 선구자로 주목받게 되었다. 


4. 워홀이 얻은 교훈은?

워홀은 그와 같은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1960년대 초부터 자신의 작품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깡통에 담긴 수프나 속도 위반 딱지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품들을 그렸다. 



답: 의미가 없는 그림
감상자들은 강요받는
느낌 없이 그림을 볼 수 있어

그의 그림에는 이렇다 할 의미가 담겨 있지 않았으므로 감상자들은 전혀 강요받는 느낌 없이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그림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면서 호기심을 가졌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주장하려 하지 않았다

즉각적인 표현, 시각적인 효과, 차분하고 냉담한 분위기 등은 그의 그림이 가진 특징이었다. 워홀은 그림만 그런 식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주장하려 하지 않았다. 


앤디 워홀로 살펴본
인간 관계의 기술

그러나 세상에는 자신을 내세우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너도나도 앞다 투어 자기를 주장하죠. 그런 경우 일시적인 승리를 거둘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그 정체와 속셈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맙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여백을 남기지 않고, 여백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출처: 로버트 그린은 누구?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특히 집단을 상대로 할 때 효과적으로 능력이 발휘됩니다. 집단을 상대로 할 경우에는 감정적·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을 장악할 수 있다고 로버트 그린은 말합니다. 

출처: <인간 관계의 법칙>바로가기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