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쓰인 주인공 없는 소설,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
누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지?
이 질문은 19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행운의 편지같은 기분이 들지만 아닙니다) 19세기 영국은 근대화로 인해 상공업이 발달하고 중산계급이 눈에 띄게 성장하던 시기입니다.
부의 축적과 신분 상승의 욕망이 가득한 시기라고 다시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정신을 홀리는
물건들로 가득해
하염없이 엄지로 스크롤을 내려본 경험 혹시 있으신가요. 그러나 아무리 내려도 쇼핑몰에 전시된 상품의 개수는 줄지 않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지요.
물건이 줄지어 있는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이리저리 쏠려다니다가 죽는 인간들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우선은 세차게 풍자하고, 조롱하지만 나중에는 안쓰럽게 바라보지요. 그리고 그것을 글로 남겼습니다. <허영의 시장>의 윌리엄 새커리.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니?!
『허영의 시장』의 연재 당시 제목은 『영웅 없는 소설: 펜과 연필로 그린 영국 사회의 스케치』였고,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될 때에도 ‘영웅 없는 소설’을 부제로 붙였습니다.
따라서 ‘영웅 없는 소설’은 이 작품을 설명하는 중요한 특징으로, 이는 ‘주인공 없는 소설’을 의미하기도 하고, 따를 만한 인물이 소설 속에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부와 명예, 사랑과 결혼, 지위, 쾌락 등 각자의 허영을 추구하는 동안 자세히도 조명을 받지만 어떤 성장이나 성취없이 죽어버립니다.
자기 인생을 낭비하고
꼭두각시로 살다가
꼭두각시로 떠나고 마는 사람들
소설을 시작하며 연출가는 주요 등장인물을 인형극의 인형들로 소개합니다. 소개받은 인물들은, 극이 끝나 상자 안으로 다시 들어갈 때까지 누구도 자신이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지요. 자신을 움직이게 했던 허영이라는 줄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인물들은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낭비해버리는 겁니다.
천상으로 가는 순롓길에
'허영'이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이 책의 제목인 『허영의 시장』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천상으로 가는 순롓길 중 주인공이 ‘허영’이라는 도시에서 만나는 휘황찬란한 ‘시장’은 인간의 탐심과 욕망을 드러내는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이 길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요?
이것과 비슷한 시험에 들어 돼지가 된 유명한 사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장장 19개월간 연재되었습니다. 분량이 상상 가시나요! 1권 614페이지. 2권 652쪽.
주인공도 없는 소설,
200여년 동안 사랑받는 이유
오직 읽는 이만이
조용히 웃을 수 있다
설사 원하는 것을 손에 넣었다 한들 만족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사람들에게 구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새커리는 그것을 결코 '신'이라고 대답하지 않으면서 장장의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이 오래되고, 길고, 배울만한 주인공도 없는 꼭두각시들의 인생을 지금 왜 읽어야 할까요?
<허영의 시장>에서 나의 면면을 얼마쯤 발견하고 조용히 나의 그간을, 주위를 살펴볼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오직 읽는 이만이 알 수 있는 조용한 깨달음, 작은 즐거움이 이렇게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