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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게뭐라고

예상외로 많은 여자들이 말한 뜻밖의 결혼 이유?

"나는 과연 무얼할 때, 가장 빛나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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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탈출하려고.”
“부모님한테서 독립하려고.”
결혼이 결핍과 통제를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 된 이유

여자 선후배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결혼의 진짜’ 이유에 대해 의외로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나 혼자 독립은 부모님의 허락을 받을 수 없으니, 결혼을 통해 합법적이고 공식적으로 부모님의 감시로부터 벗어나는 것. 그것이 결혼의 중요한 이유였던 것이다. 우리에게 ‘여성성’은 이렇듯 ‘뭔가 벗어나야 한다는 것’ ‘뭔가 결핍된 것’으로 시작된 것 같다.


비로소 독립 후 깨닫게 된
진정한 ‘여성스러움’의 의미

나는 스물아홉에 간신히 원룸을 얻어 독립을 하면서 ‘인생에 한 번쯤은 꼭,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자’라고 다짐을 하며 집을 나왔다. 훨훨 날아갈 것만 같았고, 감시와 통제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시련도 함께 시작됐다. 또한 독립을 통해 진정한 ‘여성스러움’에 대한 깨달음도 얻었다.


나는 20대 내내 고분고분하고, 아기자기하며, 상냥한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그런 ‘바람직한 여성’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 것이다. 까칠하고, 시니컬하고, 무뚝뚝한 여자가 되어서 어른들의 순진한 기대를 통쾌하게 배반해주고 싶었다. ‘멋진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멋진 여성’이 되는 노력에 낭비하기 싫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이런 행동 자체가 강력한 결핍의 소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여성성에 대한 과도한 혐오 또한 일종의 콤플렉스라는 사실을 뒤늦게 인정하게 되었다. 


는 지독한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심한 반감을 가졌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오랫동안 시달리다가 결국 ‘딸만 셋’을 낳은 어머니를 연민했다. 딸들은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장녀인 나에게는 ‘장남 이상의 책임감’을 바라시던 부모님의 기대를 이해했지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왜 나는 ‘열 명의 아들 부럽지 않은 한 명의 딸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불만을 숨지기 못했다. 나는 그저 수식어가 필요 없는 ‘나’일뿐인데. 나는 늘 ‘남자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감과 싸워왔고, 사실 별로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을 남몰래 다그치고 학대해왔던 것이다. 


부모님과 떨어져 오롯이 혼자 지내다 보니,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가족의 매트릭스’를 벗어난 곳에서, 나의 진짜 인생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남성성도 여성성도 그 자체로 나쁘거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성으로 태어나서가 아닌
정말 ‘여자라서 행복한 인간’

‘멋진 인간’이 되는 것과 ‘멋진 여성’이 되는 것을 굳이 날카롭게 구분하려했던 분별심도 우스워졌다. 멋진 여성과 멋진 인간은 나에게 결국 같은 것이었다. 여성이 아닌 나란 상상할 수 없었다. 단지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여성으로 자라났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정말 ‘여자라서 행복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성별에 대한 올바른 인지는
‘70억 n개의 성의 다름’을
인지할 때 시작된다.

생물학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 속에서 자라온 여성들과 남성들은 서로의 ‘동일성’보다는 ‘차이’를 배울 기회가 현저히 부족하다. 가정이나 기술 교과서 어디에도, 사회나 정치 교과서 어디에도, 남자와 여자의 본질적 차이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설명은 없다. 우리는 사회적 성역할, 즉 젠더의 개념을 누구에게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오직 ‘실생활’이라는 지독한 개인플레이를 통해서만 남녀의 차이를 처절하게 깨우쳐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성이면서도 남성적으로 행동하고 싶을 때가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며, 게다가 여성이면서도 여성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 남성이면서도 남성성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여성에게 '여성스럽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 남성에게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 이 모두는 사실 여성성을 여성 속에 가두고, 남성성을 남성 속에 가두는 이분법적 사유다. 세상에는 오직 두 개의 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70억 개 이상의 성이. 저마다 서로 다른 빛깔과 향기를 지닌 성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와 생을 함께 나눈다는 것. 그리고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수많은 남녀들이 수많은 조직사회에서 소통과 교감을 반복하는 일. 그것은 바로 이 여성성과 남성성을. 그리고 70억 개가 넘는 ‘n개의 성’을 우리가 서로 ‘아직 잘 모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시작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과도한 여성성을 가진 여성을 ‘공주병’이라고 비난하고, 부담스러운 남성성을 자랑하는 남성을 ‘마초’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여성성과 남성성은 그 자체로 폄하되거나 비난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아직 더 많이, 더 깊이 탐구되어야 할, 여전한 미개척의 영역이 아닐까. 우리는 더 많은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더 무궁무진한 남성성의 위대함을 경험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성별이 아닌 자신의 존재만으로 충만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빛나는 사람일까?”


꿈, 취업, 인간관계, 삶의 방식.

어느 하나 쉽지 않은 20대에게

작가 정여울이 건네는 공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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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트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리커버 에디션의 일부를

발췌 및 편집하여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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