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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는 수십 년간 '이것' 하나를 끈질기게 관찰한 예술가로 유명한데요. '이것'의 후유증으로 백내장 진단을 받았지만, 자칫 시력을 잃어 더 그림을 그릴 수 없을까 봐 노년까지 수술을 받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었어요! 모네가 인생을 바친 '이것'은 무엇일지, 모네의 작품과 이야기를 통해 알아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화가 중에는 화려한 명성만큼 장수의 복까지 누린,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 여럿 있다고 해요. 대표적인 이가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입니다. 피카소는 20대 초에 거장의 반열에 오른 천재 화가죠. 현대미술의 역사를 뒤바꿔 놓은 입체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 ‘아비뇽의 처녀들’(1907)을 완성했을 때 피카소는 불과 26세였어요. 르네상스 3대 거장 미켈란젤로(1475~1564)도 15~16세기 사람으로서는 드물게 아흔 코앞까지 살았으며 살바도르 달리(1904~1989)와 앙리 마티스(1869~1954)가 85세, ‘절규’의 작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가 81세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도 장수 예술가 그룹의 상위에 올라 있는데요. 인상주의 미술사조 탄생에 산파 역할을 한 모네는 수십 년간 빛과 대기의 흐름과 변화를 끈질기게 관찰한 후유증으로 72세 때 심각한 백내장 진단을 받았어요. 하지만 자칫 시력을 잃어 더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될까 봐 83세가 돼서야 수술을 받았을 정도로 창작을 향한 그의 열정은 초인적이었다고 하죠. 수술 후 정상 시력 기능이 손상됐지만 86세로 목숨이 다할 때까지 작업에 매달렸답니다.

인상파의 명칭은 모네가 33세 때인 1873년에 선보인 ‘인상: 해돋이(1872)’에서 유래됐어요. 그를 인상파의 창시자, 인상파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인데요. 인상주의 그림과 함께 모네를 특징짓는 작업 스타일이 있는데, 바로 연작이에요. 하나의 주제로 여러 점의 그림을 그리는 연작은 시리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모네의 작품세계에서 토대를 이루는 핵심 요소입니다. 모네는 1877년 무렵, ‘생 라자르역’ 연작을 시작으로 ‘포플러’ 연작, ‘루앙 대성당’ 연작, ‘수련’ 연작에 이르기까지 무려 50년 가까이 연작에 몰두했었어요. 그림 인생의 대부분을 연작 창작에 바친 셈이죠.

 이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수련’ 연작이에요. 모네가 그린 ‘수련’ 작품들은 자연광선인 빛의 미묘한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인상주의 그림의 특징을 완벽하게 구현한 걸작 중의 걸작으로 평가합니다. ‘수련’ 연작 작업을 위해 손수 정원을 가꾸고 연못과 화초 관리에 모든 것을 바친 모네는 수련을 사랑한 화가이면서 일류 정원사라고 할 수 있죠.

모네가 평생을 바쳐 탐구한 빛의 마법은 ‘수련’ 연작에서 만개했어요. 모네는 거의 30년을 ‘수련’ 연작에 매달려 1897년 무렵부터 1926년 죽을 때까지 오직 ‘수련’을 주제로 신출귀몰한 빛의 실체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연구해요. 프랑스 파리 콩코르드 광장 옆의 오랑주리미술관은 ‘수련’ 연작 중 만년에 그린 8점의 초대형 패널 작품(일명 수련대장식화)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오랑주리미술관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8점의 연작을 전시할 목적으로 지어졌는데, 정작 모네는 개관 5개월을 앞두고 사망해 아쉽게도 2개 전시실을 가득 채운 필생의 역작들을 보지 못했어요. 

 오랑주리미술관에 전시 중인 수련대장식화에는 흥미로운 일화가 숨어 있어요. 모네가 평생 남긴 ‘수련’ 연작은 모두 250여 점으로 추정되는데요. 이 중 수련대장식화 작업은 70세를 훌쩍 넘긴 1914년 무렵부터 1926년 세상을 떠나는 해까지 10여 년 동안 계속됐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은 모네 개인적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은 해이기도 합니다. 큰아들 장이 성병으로 사망하고 3년 전 두 번째 아내 알리스가 저세상으로 떠난 빈자리가 채 아물기도 전에 장남마저 불귀의 객이 되자 산전수전 다 겪은 노 화가의 머릿속에 새겨진 ‘인생무상’ 네 글자는 더욱더 또렷하게 각인됐을 거에요. 

모네는 친구이자 프랑스 총리인 조르주 클레망소(1841~1929)에게 수련 그림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했어요. 클레망소와 상의 끝에 모네는 모두 8점의 수련대장식화를 제작해서 기증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모네는 첫 아내(카미유)와 상처한 지 4년이 지난 1883년 프랑스 파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센 강변의 시골마을 지베르니에 정착하는데,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련’ 연작에 몰두했어요. ‘수련’ 그림을 위해 손수 정원을 가꾸고 연못을 조성하고 일본식 다리를 지어 온갖 종류의 식물과 나무를 키우면서 창작의 열정을 불태웠다고 해요. 지베르니 정원으로 불리는 이곳은 오늘날 전 세계인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죠.

 모네가 아내와 자식 다음으로 사랑하고 정성을 기울인 꽃도 수련이었다고 해요. 수련은 뿌리와 줄기는 물 밑에서 자라고, 잎은 물 위에 떠 있는 여러해살이풀이에요. 특이한 것은 수련 꽃잎은 아침에 피었다가 해 질 무렵에 진다는 거죠. 모네가 햇빛의 강도와 각도에 따라 수시로 달라지는 물체의 색깔과 형태를 관찰하기에 수련은 최적의 조건을 갖춘 식물이었답니다. ‘수련대장식화’ 연작은 그림의 규모로나 미술사적 가치로나, 모든 면에서 모네 작업 인생의 화룡점정이었어요.

‘수련 연못’이 제목인 이 그림은 1920~1926년에 걸쳐 작업한 그림인데 세로가 219cm, 가로는 602cm로 보는 이를 압도하고도 남을 대형 크기에요. 오랑주리미술관 1층 전시실 두 곳을 빛내고 있는 나머지 7점도 마찬가지예요. 연못 위에 황금빛으로 꽃을 피운 수련이 햇빛을 받아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고, 축 늘어진 녹색 버드나무 가지도 인상적이죠. 60대 중반 즈음부터 모네의 수련 그림들에서는 연못 주변의 풍경들이 차츰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을 포함한 수련대장식화 연작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그림을 보면 풍경은 전혀 보이지 않고 수련을 중심으로 한 꽃과 나뭇가지, 햇빛에 반사된 형형색색의 물빛들만 화면을 채우고 있죠. 특히 백내장 수술 후유증으로 시력 손상의 역경 속에서 미술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기어이 완성한 점이 놀라워요. 

꽃과 연못의 물을 매개로 오묘한 빛의 향연을 캔버스에 펼친 모네가 스스로 밝혔듯이 그에게 지베르니 정원에서 작업 인생은 자연현상, 즉 우주에서 보고 깨달은 바를 물감의 집적으로 환생시키는 경건하고 위대한 여정이었어요.



ⓒ박인권 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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