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개화기로 시간여행 떠나볼까? 인천 차이나타운의 정취

조회수 2020. 12. 17. 16: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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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화기, 한양과 가장 가까워 중일 무역의 중심이 된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인천인데요. 


오늘은 인천 차이나타운의 역사를 되짚어가며 근대의 역사를 알아보고 정취를 맡아보아요. 또 차이나타운의 미래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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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생활사전시관에 있는 개항 당시 거리 모습을 그린 그림
▶개항 당시 조계지에 세워진 건물들. 테라스와 벽 색깔이 이국적이다.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에 끌려가요. 거리 전체에 진한 짜장의 냄새가 풀풀 나요. 그런 유혹엔 넘어가야 하죠. 중국 음식이지만 한국인에겐 어떤 음식보다 친근한 음식이 짜장면이에요. 허기질 때, 외국에서 오랜만에 올 때,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 가난한 시절 온 가족이 오랜만에 외식할 때, 그 중심엔 짜장면이 있었어요. 


그 짜장면이 이 땅에서 시작된 곳이 바로 인천이에요. 인천역 광장에 서면 ‘中華街(중화가)’라고 큰 글씨로 쓴 패루(牌樓)와 마주치게 돼요. 전 세계 도시의 차이나타운 입구를 알리는 공통적인 상징물이에요.


1883년 일제에 의해 강제 개항된 인천은 외국 문물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도시예요. 개항 이전엔 한적한 포구인 제물포항이었던 인천은 갯벌을 중심으로 오두막이 옹기종기 모인 어촌이었어요. 


일제가 조선 침략의 교두보로 인천항을 개발하면서 외국 상인이 모여들었고,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는 치외법권 지역인 조계지도 생겨났어요.


차이나타운을 시작으로 이 지역 일대는 인천의 구도심이에요. 청나라와 일본, 그리고 서양 열강의 조계지였던 차이나타운 일대는 관련 유적들이 남아 있어 개항 초기인 1800년대 후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요. 


한나절만 걸으면 사연 많은 우리의 근대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가요. 그 시작에 짜장면이 있어요. 진한 짜장의 냄새에 취해 일단 먹어 보아요.

▶개항장 거리는 밤이 되면 화려하게 살아난다. 옛 건물을 리모델링한 카페와 레스토랑, 수제 맥줏집 등이 젊은 층을 유혹한다.
▶공화춘의 해산물 풍부한 짜장면

사연 많은 근대사가 파노라마처럼…

짜장면은 19세기 말 개화기 인천에 자리 잡은 중국인(화교)들이 요기를 채우기 위해 개발한 국수예요. 


애초 산둥 지방의 서민 국수인 ‘자장미엔(炸醬麵)’의 요리 방법과 발음을 따왔어요. 산둥회관이란 음식점을 운영하던 화교 우희광(1886~1949) 씨가 한국식 짜장면을 개발해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어요. 신해혁명(1911)으로 청조가 무너지고, 중국 최초의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건국됐어요. 


우 씨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공화국의 봄’이라는 의미로 식당 이름을 공화춘(共和春)이라 개명했어요. 공화춘은 1983년 경영난으로 폐업했고, 식당을 개조해 2004년 인천 중구청이 짜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했어요. 박물관 바로 옆집의 현재 ‘공화춘’ 식당은 4층 건물로 한국인이 운영해요. 


굳이 원조를 찾는다면 근처에 우 씨의 외손녀가 운영하는 ‘신승반점’이 있어요. 공화춘의 짜장면을 먹었어요. 녹말 없이 볶는 간짜장에 해산물이 듬뿍 든 공화춘 짜장면을 먹으며 고국의 공화국 건국을 기뻐한 화교의 감동을 음미해봐요.

▶인천역 광장에서 바라본 차이나타운 입구

짜장면을 먹었으니, 근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볼까요?


우선 짜장면 박물관으로 가요. 주방 자리였던 1층은 짜장면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마네킹을 이용해 보여줘요. 식사 장소였던 2층은 짜장면에 대한 역사를 쉽게 알 수 있는 전시물이 자리하고 있어요. 향수를 자극해요. 


짜장면 박물관을 나와서 중화풍의 거리를 걷다 보면 대불호텔 전시관과 마주쳐요. 1888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에요. ‘양탕국’으로 불린 커피를 투숙객들에게 처음 제공한 곳이에요. 


경영난으로 1978년 철거된 대불호텔은 40년이 지난 2018년, 중구생활사전시관으로 새롭게 태어났어요. 대불호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1관, 1960~70년대 인천 중구의 생활사를 체험할 수 있는 2관으로 구성됐어요. 당시 한국어와 일본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통한 대불호텔 종업원의 서비스는 외국인들을 놀라게 만들었어요.  


미국인 선교사 헨리 거하드 아펜젤러(1858~1902)는 자신의 '비망록'에 “놀랍게도 호텔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손님을 편하게 모셨다”는 투숙 경험을 남겼어요. 대불호텔 객실료는 상등실 2원 50전, 일반실 2원이었어요. 당시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23전이었으니 그 고급스러움을 상상할 수 있죠. 


중구생활사전시관 2관은 1960~70년대 인천 중구의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어요. 당시 상류층 주택을 재현한 전시물부터 이발소, 다방, 극장까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에 빠져들게 돼요.

▶차이나타운 거리 모습
▶인천의 골목을 펜화와 수채화로 그려온 고제민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고 있다.

사라지는 개항의 흔적 그림으로 담아내

대불호텔 거리는 개항장 역사 문화의 거리예요. 조선은행이라 이름 붙은 구 인천일본제1은행지점, 구 인천일본제18은행지점, 구 인천일본제58은행지점이 나란히 있어요. 청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이 조선경제를 수탈하기 위해 건축했어요.


이 거리 중간에 자리 잡은 도든아트하우스에선 11월 6일부터 10일까지 인천을 중심으로 창작활동을 펴고 있는 중견 서양화가 고제민의 '인천, 그리다' 출판기념전이 열렸어요. 펜화와 수채화로 인천의 섬과 포구, 마을과 골목길을 그리는 작업을 해온 고 작가는 “인천의 시간과 함께한 시민의 희로애락과 삶의 향기를 담고 싶었다”며 “개항의 흔적을 지닌 공간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라고 말했어요.


인천 숭의동 독갑다리 경인약국의 6형제 가운데 막내딸로 태어나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인천에서 미술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한 고 작가는 인천 지역의 소멸하고 남은 흔적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향수, 새롭게 생성되는 모습에서 보이는 흔들리는 정체성과 희망 등을 그림으로 담아냈어요. 정겹네요.


이 거리의 북쪽엔 삼국지와 초한지 벽화 골목이 있어요. 삼국지 벽화 거리에는 도원결의, 장판교 싸움, 적벽대전 등 '삼국지' 주요 장면 80편이 눈길을 끌어요. 차이나타운에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이 있어요. 


1883년에 생긴 일본 조계지와 1884년에 생긴 청국 조계지의 경계예요. 중앙에 석조 계단이 있고, 계단을 중심으로 청국과 일본의 건물들이 양쪽으로 확연하게 다른 양식을 보여줘요. 계단에 올라서면 인천항이 한눈에 들어와요. 


치열하게 전개된 열강들의 다툼과 그 틈에서 신음하며 고통받았을 민초들의 아픔이 전해져요.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

개항장 일대 스마트 관광도시로 거듭

골목길로 계속 올라가면 자유공원이 기다려요.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있는 곳이에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정자엔 어르신 두 분이 종이 장기판을 가운데 놓고 장군 멍군에 열중이에요. 주변엔 산책 나온 젊은 연인들이 사진을 찍어요.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의 함포사격으로 초토화된 곳이지만, 시간의 흐름은 그때의 긴박함을 역사적 사실로만 존재하게 해요. 맥아더 장군 동상 주변엔 노인들이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자유공원을 지나 동쪽으로 걸어 내려가면 홍예문을 만나요.


▶홍예문

‘무지개(홍예)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은 철도 건설을 담당하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공사를 시작해 1908년에 준공한 석문이에요. 응봉산 산허리를 잘라 높이 13m, 폭 7m의 화강암 석축을 쌓고 터널처럼 만든 문이에요.


건설 당시 인천 중앙동과 관동 등에 거주하던 일본인 수가 급격히 늘자 만석동 방면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이 문을 통해 확장했어요.


돌을 깎고, 나르고, 쌓는 고된 노동은 이 땅에 살던 우리 선조의 몫이었어요. 애잔해지는군요. 어둠이 깔리면 이 거리는 화려하게 변신해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뉴트로 거리가 됐어요. 오래된 건물들을 구조 변경해 문화 공간이나 카페로 바꾸었어요.


이 거리에선 수제 맥주를 마셔야 해요. 인천은 우리나라에 맥주가 처음 들어온 도시이기 때문이에요.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며 인천을 통해 맥주가 공식 수입됐어요.


이제 개항장 일대는 스마트 관광도시로 거듭났어요.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최근 ‘스마트관광도시 시범 조성사업’ 대상지로 이곳을 선정했어요.


개항장의 역사 문화 콘텐츠를 증강현실과 결합하고 비대면으로 간편결제, 방문 전 선주문, 인공지능 기반의 맞춤형 방문지 추천 서비스 등 지능형(스마트) 관광 특화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에요.


희미해지는 역사의 흔적이 최첨단 인공지능과 만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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