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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왜 거기서 나와? 임시방편으로 사용해도 어울리는 물건들

조회수 2020. 11. 6. 16: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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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원래 용도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주차방지 용도로 사용되는 플라스틱 물통 같은 거예요. 물건의 원래 용도는 아니지만, 그 쓰임새에 적절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도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다른 용도로 임시로 사용되다가 새로운 물건과 디자인이 탄생하기도 하는데요. 사물의 창조에 대해 남다르게 관찰한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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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피카소가 자전거 손잡이와 안장이라는 레디메이드로 창조한 소의 머리(1942년)

고양이는 사람들이 만든 사물을 원래 목적대로 쓰지 않아요. 고양이는 본능에 따라 안전한 곳을 찾고 그곳이 어디든 자기 보금자리로 삼는데요. 우리 집 고양이가 한번은 세면대에 들어가 있었어요. 세면대가 밑으로 꺼져서 분화구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니 안정감이 드는 거예요. 


또 우리 집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은 고양이용 장난감이 아니에요. 어지러운 전선을 묶는 작은 플라스틱 선이나 부드러운 귀마개예요. 그걸 던져주면 달려가서 입에 물어 가져오는 놀이를 즐겨요.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인공적인 사물이 오직 처음 만들어진 목적대로만 사용되는 것은 낭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물은 평소에 일을 하지 않고 노는 상태이기 때문이에요. 


책은 정보를 담은 그릇이므로 읽혀야 존재 가치가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책꽂이에 꽂혀 있어서 공간을 낭비할 뿐이에요. 하지만 책은 그 집안의 지적이고 문화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장식품으로도 활용되므로 낭비만은 아니라는 위안을 주지요.


책이 장식품의 기능을 갖는다 해도 그것 역시 시각적인 감상에 그칠 뿐 기능적 사물로서 쓸모가 있는 건 아니에요. 시각적인 감상에만 그친다면 그것은 예술품이 됩니다. 책은 다행스럽게 장식품 외에도 다양한 실질적 쓰임이 있어요. 냄비 받침이나 베개로 활용되는 것은 아주 흔하죠. 무더운 여름에는 손에 들고 있는 얇은 주간지를 부채로 활용할 수도 있어요. 


의자는 앉기도 하지만, 그 위에 발을 딛고 올라가 손이 닿지 않는 천장의 등을 수리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어요. 거친 청소년들의 교실에서 의자는 무기로 돌변하기도 해요.

쓸모의 새로운 발견

이것은 쓸모의 새로운 발견이에요. 이렇게 사물을 원래의 목적과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임시변통(makeshift)’이라고 부르는데요. 임시변통이란 당장 어떤 쓸모의 물건이 필요한데, 그것이 없을 때 주변에 있는 사물을 찾아 급하게 다른 용도로 쓰는 것을 말해요. 가장 흔한 경우는 싸움을 할 때 주변에 있는 물건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지는 거예요.

사진3. 주택가 지정주차 구역에 다른 차가 주차하지 못하도록 막은 플라스틱 물통

임시변통의 사물은 그 쓰임이 ‘일시적’이에요. 주택가나 도로변을 걷다 보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지정주차 구역이 비었을 때 다른 차가 주차하지 못하도록 의자나 플라스틱 통(사진 3)을 놓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어요.


다시 말해 그런 용도로 쓰는 것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거예요. 학생들이 ‘무기’로 사용한 의자는 제자리로 돌아가 본래의 기능, 앉는 용도에 충실할 거예요. 시장에서 물건을 쌌던 신문지는 버려질 거예요.

사진4. 군용 시설물의 자물통을 보호하는 용도로 쓰인 플라스틱 물병

임시변통 사물의 또 다른 특징은 그것이 매우 질이 낮다는 데 있어요. 언젠가 인왕산에 올라가 군 시설의 문에 달린 임시변통 사물을 발견한 적이 있는데요.(사진 4)


자물통이 보이지 않게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비에 녹슬지 않게 하려는 의도인지 플라스틱 물병을 가리개로 용도 변경해 그것을 숨긴 것이에요. 그 모양새란 초라하기 그지없었죠. 군인들은 이 임시 가리개가 군용답게 보이게 하려고, 또 시설물의 녹색과 통일성을 이루기 위해 녹색으로 칠했어요. 이로써 플라스틱 물병은 완전히 새로운 사물로 거듭났어요.

사진2. 스테인리스 그릇을 뒤집고 손잡이를 달아 요리의 열기를 차단하는 임시변통의 뚜껑

처음엔 거칠지만 결국 새로운 사물로 진화

이처럼 임시변통은 용도 변경에 따라 그 사물에 새로운 탄생과 생명을 선사해요. 이런 종류의 임시변통 사물은 일시적인 사용에 그치지 않아요. 생명이 연장되는 것이죠. 어느 식당엘 갔더니 스테인리스 그릇을, 끓고 있는 요리의 열기를 가두는 뚜껑으로 용도 변경했어요.(사진 2) 이 임시변통의 뚜껑은 일시적으로 사용된 뒤 버려지지 않을 거예요.


원래 그릇의 밑부분이던 곳에 뚜껑을 달았고, 그릇의 한 부분에 구멍을 뚫어 증기가 빠져나오게 했어요. 즉 공을 들여서 새로운 사물로 만든 거예요. 이 독특한 뚜껑은 좀 더 넓은 공간에 열기를 가두는 용도를 지녀요. 


뷔페식당에 가면 음식이 식지 않도록 하는, 뚜껑을 열고 덮을 수 있는 그릇이 있지만, 뚜껑만 따로 팔지는 않는데요. 식당 주인은 시장에서 적절한 가격과 크기의 물건을 찾지 못해 결국 이런 임시변통의 뚜껑을 디자인한 것이죠. 그러니 비록 임시변통이지만 이 뚜껑은 오래갈 거예요.


여기에서 저는 사람의 창의성을 봐요. 식당 주인은 말하자면 레디메이드(ready-made), 즉 기성품 두 가지(그릇과 뚜껑 손잡이)를 연결해 새로운 물건을 만든 거예요. 레디메이드를 이용해 다른 것을 창조했다는 점에서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를 붙여서 소의 머리를 만든 피카소의 발상과 비슷해요.(사진 1) 다른 점이 있다면, 피카소는 아트 오브제를 창조했고, 식당 주인은 쓸모 있는 실용품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사진5. 이 스툴은 기성품들을 연결해 미끄러질 수 있는 의자가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개념의 창의적인 물건도 이처럼 기존의 기능적인 사물들을 임시변통해서 연결해 만든 거예요. 구텐베르크는 와인 즙을 짜는 기계로 인쇄기를 만들었어요. 어느 시장에 갔더니 미끄러질 수 있는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작은 의자)을 발견했어요.(사진 5) 


이 스툴은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난 게 아니에요. 누군가 뭔가를 이동하는 데 썼던 바퀴 달린 금속 다리와 의자의 좌석을 붙인 거예요. 이 임시변통 사물을 만든 익명의 디자이너는 아마도 앉은 상태에서 이동하고자 이런 의자를 만들었을 거예요.


우리가 흔히 보는 바퀴 달린 사무 의자도 그렇게 출발하지 않았을까요? 따라서 허먼 밀러 같은 뛰어난 사무 가구 회사가 출시하는 의자를 디자인한 동기와 내가 시장에서 발견한 임시변통의 스툴을 디자인한 동기는 다를 것이 없어요. 단지 거칠고 조잡하다는 것이 차이죠. 임시변통의 사물은 반드시 어떤 필요를 전제로 해요. 그런 필요에 맞춰 처음에는 거칠게 만들어지다가 결국 개념을 가진 새로운 사물로 진화하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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