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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가 자동차를 탔다고?" 기발한 패러디로 유명해진 작품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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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널리 알려진 작품을 일부러 흉내 내거나 차용하는 표현 기법을 ‘패러디(parody)’라고 하죠. 미술뿐 아니라 음악·영화·문학 등 현대예술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동양화 작품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 시킨 임택 작가가 주목받고 있어요. 기발한 상상력이 담긴 패러디로 새롭게 등장한 21세기 동양화는 어떤 모습일지 자세히 알아봐요!

*이 글은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적용' 이전에 작성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수도권 지역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에 따라  2020년 8월 19일(수)부터 전체 전시실(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특별전시실, 어린이박물관, 도서관)을 잠정 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사전 예약을 하고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입구에서 한 사람씩 체온을 재고 QR코드를 찍은 후 입장했어요. 관람하는 동안에도 관객들은 자발적으로 일정 거리를 유지했어요. 아슬아슬한 일상 속에서 다행히(?) <새 보물 납시었네>를 직접 볼 수 있었어요.


전시 제목이 상큼해요. “새 보물 납시었네!” 어렵거나 근엄하지 않아서 좋아요. 그렇다고 가볍거나 경박하지도 않아요. 부제도 간단명료해요. ‘신국보보물전 2017~2019’.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새로 지정된 국보와 보물 83건, 총 196점이 공개되는 전시에요.


진열장 속 유물은 단순히 문화재라는 의미를 넘어 예술품으로 손색없었어요. 말 그대로 하나같이 ‘보물’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런데 이 보물은 모두 국가 소유가 아니에요. 사립 박물관, 사찰, 개인 소장가 등 민간이 소장하고 있는 것도 많아요. 그래서 이렇게 한자리 모아놓고 볼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요. 이번 전시를 위해 보물을 빌려온 기관은 34곳, 이 가운데 간송미술관 소장품이 22점이나 돼요.


‘마상청앵도’ 패러디한 ‘옮겨진 산수유람도’

▶ 김홍도,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종이에 수묵담채, 117×52.2cm, 18세기 말~19세기 초, 간송미술관 소장

그런데 전시품 중 일부는 9월 27일까지 열리는 전시 기간 내내 볼 수 없어요. 몇몇 유물은 3주 동안만 전시되고 다른 것으로 바뀌어 걸려요. 주로 종이에 그려진 그림이나 글씨가 그래요. 밝은 조명 아래 오래 두면 상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에요. 단원 김홍도(1745∼1806?)가 그린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가 그런 예에요. 보물 제1970호로 지정된 이 그림은 8월 11일까지만 전시됐어요. 서둘러 전시를 보러 간 이유도 사실 이 때문이에요. 몇 년 전 간송미술관에서 본 ‘마상청앵도’를 다시 한번 직접 보고 싶어서였어요.


나는 옛 그림 중에서도 ‘마상청앵도’를 각별히 좋아해요. 제목 그대로 말(馬) 위에서 꾀꼬리 소리를 듣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미술사학자 유홍준은 “청각적 자극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조선의 풍속과 시적인 정취까지 성공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라고 평했어요. 100% 공감해요. 실제로 그림을 오랫동안 응시하면 꾀꼬리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해요.


그런데 어쩌면 그림 속 인물은 김홍도 자신의 모습일지도 몰라요.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그림 솜씨 하나로 연풍현감 벼슬까지 오르며 파란만장한 삶을 산 단원이에요. 그가 이 그림을 그린 나이는 50대 중반, 원숙함이 무르익을 대로 익은 전성기 때에요. 그래서일까. 꾀꼬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과 표정이 왠지 쓸쓸하고 회한에 젖어 보여요.


조선시대 그림은 대부분 그림만으로는 인정받지 못했어요. 글과 글씨, 즉 ‘시서화(詩書畵)’가 어울려야 제대로 된 그림 대접을 받았어요. ‘마상청앵도’도 마찬가지예요. 화면 왼쪽 위, 세로로 쓰인 한시가 역시 길쭉한 화면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시는 김홍도와 동갑내기 동료 화원화가 이인문(1745~1824?)이 지었어요. “佳人花底簧千舌(가인화저황천설·고운 여인 꽃 아래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 꾀꼬리의 생태를 아름답게 은유적으로 읊은 내용이에요. 글씨는 김홍도가 직접 썼어요. 


지필묵 대신 컴퓨터로 이미지 조합·출력

▶ 임택, ‘옮겨진 산수유람도’, 디지털 프린트, 84×67cm, 2006

이런 배경을 알고 보면 훨씬 흥미로운 현대미술 작품이 있어요. 덕성여대 동양화과 임택 교수의 ‘옮겨진 산수유람도’ 시리즈에요. 동양화에서 출발한 임택은 전통을 계승하는 차원을 넘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된 전통을 보여줘요. 옛 그림이나 이미 널리 알려진 작품을 일부러 흉내 내거나 차용하는 표현 기법을 ‘패러디(parody)’라고 하는데, 미술뿐 아니라 음악·영화·문학 등 현대예술 여러 분야에서 활용돼요.


패러디는 교묘한 표절이나 비도덕적인 모방 행위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요. 풍자, 과장, 익살, 명작에 대한 존경 등 창작자의 명확한 의도를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이에요.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를 패러디한 임택 작가의 이 작품이 아주 좋은 예에요. 하인을 거느리고 나귀 등에 올라앉은 나그네는 노란색 ‘뉴비틀’을 탄 자가운전자로 바뀌었고, 버드나무와 꾀꼬리는 입체적으로 표현됐어요.


주인공과 배경이 과거에서 현재로 바뀌었을 뿐 내용은 ‘마상청앵도’와 똑같아요. 원작의 여백은 뭉게구름 피어난 파란 하늘로 대체됐어요. 그래서 한결 밝고 상쾌해요. 퀴퀴한 세월의 때를 씻어내고 재기발랄한 현대의 옷을 입힌 형국이에요. 패러디를 통해 형식은 달라졌지만 원작이 지닌 애잔한 풍취는 변함없어요.


시대가 변하면 화가의 표현 방식도 따라서 변하는 법이에요. 임택은 전통 동양화가를 고수해온 지필묵 대신 디지털카메라와 포토샵 프로그램을 활용해요. 입체로 만든 이미지를 촬영하고 조합해 디지털 프린터로 출력해요. 21세기, 동시대 동양화는 이런 모습이에요.

© 이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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