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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에 우유니 호수가 있다면, 한국에는 여기가 있다?!

조회수 2020. 7. 14. 11: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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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에 가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 염전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도 있을 텐데요. 염전은 소금을 만들어내는 곳이에요. 그중에서도 곰소염전은 4대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염전이죠.


곰소염전에서 밀대로 쭈욱 바닥을 밀어내면 그 앞으로 소금이 쌓이게 돼요. 얼마나 신기한지 몰래 새끼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니 정말 짠맛이 난답니다.


변산해수욕장과 부안 영상 테마파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곰소염전이 있어요. 이번 여름휴가에 변산 해수욕장을 가게 된다면 꼭 한 번 들러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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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마침내 소금 결정체가 되며 흰 꽃으로 피어난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은 신(神)의 영역일 것에요. 없음이 있음으로 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바닷물에서 소금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이 하는 일이에요. 액체에서 고체를 뽑아내는 일이기 때문이죠. 소금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 하지만 인간의 일이 결코 아니에요. 태양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짠 내를 품은 바닷물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시간이 스며야 하죠. 그래서 한 시인은 소금을 ‘바다에서 피어나는 꽃’이라고 표현했어요.


‘꽃은 산이나 들에만 피는 게 아니라지요/ 바다에서도 피어나는 꽃이 있다지요/ 수차로 바닷물 퍼 올려 염밭에다 심어놓고/ 바람 좋고 볕 잘 드는 날이면/ 그곳에서 꽃이 피어난다지요/ 뭉게구름 같은 꽃이 둥실 피는 날이면/ 염부 김 씨는 한 마리 나비가 된다지요/ 꽃밭 위를 날아다니며 더듬이 손가락으로 콕 찍어 맛을 보고 꽃묶음을 만든다지요/….’(강민숙 ‘곰소염전’)


여기에 인간의 땀과 정성이 침투해야 해요. 내리쬐는 태양빛에 염부의 피부가 까맣게 타면 탈수록, 하얗고 질 좋은 소금이 태어나요.


그렇게 자연과 인간이 합작한 소금은 소중한 인간의 재화가 됐어요. 인간의 삶에 소금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인식하며 살아가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성경>은 이야기하죠. 소금이 인간에게 빛만큼 결정적이라는 뜻이에요.


▶만든 지 70년 넘는 나무 소금창고의 외벽

볕 좋은 5~6월 최상의 소금 생산 시기

간단히 소금 만드는 과정을 짚고 넘어가 볼게요. 바닷물을 햇볕에 말리면 소금이 되지만 기다림과 숱한 땀이 있어야 해요. 먼저 수문을 열고 바닷물을 저장지에 가둬요. 이때 바닷물의 염도는 25퍼밀(천분율의 단위로 1/1000을 뜻함). 저장지의 바닷물은 1차 증발지에서 염도 150퍼밀로 올라가요. 이 바닷물은 또 2차 증발지로 보내지고 염도가 250퍼밀로 올라가게 되죠.


2차 증발지에서 염도가 정점에 오른 바닷물은 마지막으로 결정지에 도착해요. 여름에는 2일, 봄과 가을에는 3일 정도 결정지에 머문 바닷물에서는 드디어 하얀 꽃이 피기 시작해요. 소금 성분이 엉기는 것이죠. 이렇게 소금꽃이 피기까지 15~20일이 걸린다. 물론 그 사이에 비를 맞지 않아야 해요.


증발 과정에 비가 내리면 해주(海宙)라고 불리는 보관 장소에 바닷물을 모아놓았다가 햇빛이 나면 꺼내요. 그러니 염부들은 하늘을 보고 살아요. 마음을 졸이며 하늘을 바라봐요. 하지만 내리는 비를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까요.


1년 중 4월부터 10월 사이에 소금을 만드는데요. 특히 햇빛이 좋고 비가 덜 내리는 5~6월이 최상의 소금 생산 시기에요. 전북 부안의 곰소항은 젓갈이 유명해요. 곰소염전이 있기 때문이죠. 일제강점기 때 곰섬, 범섬, 까치섬을 연결해 곰소항이 들어서면서 천일염을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곰소염전은 무려 4대에 걸쳐 한 집안이 운영해요.


6월 23일 낮, 곰소염전을 운영하는 남선염업의 신종만(73) 대표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회식을 했어요. 시골 수탉을 잡아 백숙을 만들어놓고, 곰소염전에서 나온 소금으로 절인 김치로 차린 소박한 회식 자리였죠. 이 자리에서 신 대표는 지난 5년간 소금 만드는 일을 배운 아들 신정우(34) 씨에게 과장이라는 직책을 주었어요. 일반 사원에서 승진한 것이죠.


드디어 자신이 3대에 걸쳐 운영해온 곰소염전이 4대로 이어지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에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 온 아들은 다른 젊은이들이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소금 만드는 일을 묵묵히 했어요. 고맙기만 하죠.


▶2대에 걸쳐 염부 일을 하는 이강연 씨가 소금을 밀대로 모으고 있다.

소금 팔아 번 돈으로 중고등학교 설립

남선염업은 74년 전인 1946년, 신 대표의 할아버지(고 신원섭)가 설립한 염전이에요. 그는 설립 초창기 염전학을 전공한 사람을 회사에 스카우트해 소금 맛을 좋게 만들었어요.


주변의 산에서 나무를 직접 베어와 소금창고를 지었는데요. 그때 지은 소금창고는 고색창연하지만, 지금도 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오랜 세월 거친 바닷바람을 이겨낸 나무 소금창고 벽에는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남아 있죠. 녹슨 자물쇠, 덧댄 합판, 삭아 내린 철판 구조물….


소금을 팔아 돈을 번 신 대표의 할아버지는 현재 부안여중, 부안여고를 세웠어요. 교육사업에 아낌없이 돈을 썼어요. 신 대표의 아버지(고 신동근)도 염전과 교육사업을 이었고, 신 대표를 거쳐 아들에게까지 이어진 것이에요.


신 대표는 축산학과를 다니며 아버지를 도와 염전 경영을 시작했고, 염전이 한창 바쁠 때는 시험을 볼 수가 없어 따로 교수 연구실에 가서 시험을 치르기도 했어요.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자신의 염전을 사진 찍기도 했던 신 대표는 사진 전시회를 열 만큼 사진에 조예가 깊어요.


곰소 소금은 짜면서도 은근한 단맛을 내요. 물론 나름의 비결이 있어요. 간수를 제거하는 것이죠. 간수는 습기가 찬 소금에서 저절로 녹아 흐르는 물이에요. 간수에는 불소, 비소, 마그네슘 등이 포함돼 있어 버려야 해요.


곰소 소금 생산지에서는 한 달에 네 번 정도 간수를 뽑아서 바다에 버려요. 그래서 수확량이 다른 염전의 절반이에요. 대신 다른 염전의 소금보다 비싸요. 남선염업의 간수 빼기 작업은 염전 설립 때부터 이어오고 있어요. 다른 염전에서는 간수를 바닷물과 섞어 계속 재활용해요.


▶4대째 곰소염전을 운영하기 위해 일을 배우는 신정우 씨

관광 명소로 거듭나는 ‘한국의 우유니 호수’

5월 중순 만들어지는 송홧가루 소금은 곰소 소금 가운데 가장 유명해요. 변산반도의 숲에서 날아온 송홧가루가 소금에 내려앉아 누런빛을 띠게 돼요. <동의보감>에 소개된 송홧가루 소금은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 올리던 귀한 음식 재료였다고 해요.


애초 약 100만㎡(30만 평)의 염전 규모에 직원이 200여 명까지 있었으나, 지금은 약 50만㎡(15만 평)에 직원도 20명 남짓이에요. 과거에 비해 염전 일이 현대화되고 기계화됐죠. 소금도 컨베이어 벨트로 나르고, 염전 바닥도 친환경 세라믹 타일을 깔았어요.


경영학을 전공한 신정우 씨는 염전을 관광 명소로 개발하려고 하는데요. 이미 곰소염전은 ‘한국의 우유니 호수’로 유명해요.


우유니는 남아메리카 볼리비아에 있는 건조 호수로,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고 불려요. 낮에는 푸른 하늘과 구름이 투명하게 반사되고, 밤에는 하늘의 별이 호수 속에 들어 있는 듯한 멋진 모습을 연출하죠.


곰소염전도 주변의 산과 푸른 하늘이 염전에 비치며 사진 동호인들의 단골 출사지가 됐어요. 염전 속 맑은 바닷물에 비친 산과 하늘이 데칼코마니를 한 것처럼 선명해 어느 쪽이 실물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죠.


이날 염전에서 소금을 밀어내던 염부 이강연(47) 씨는 곰소염전에서 유일하게 2대에 걸친 염부예요. 아버지 이정근(85) 씨가 62년 전 고향 영광에서 이곳으로 스카우트돼 일을 시작했고, 아들도 9년 전부터 이곳에서 염부로 일하고 있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다 아버지를 이어 염부 일을 해요. 이 씨가 이곳에서 일하는 염부 가운데 가장 막내. 대부분 염부들은 나이가 많아요. 


“염부의 정년은 없어요. 욕심내지 않고 노력만 하면 스트레스 없이 생활합니다.”


푸른 하늘의 흰 구름과 이 씨가 밀어서 모은 흰 소금이 어우러져 마치 사방에 함박눈이 온 것 같아요. 한여름에 겨울이 찾아왔네요.


© 이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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