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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 죽기 전 그린 그림에 담긴 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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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오래오래 기억되고 있는 화가,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고흐' 아닐까요?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카페 테라스' 등의 그림이 유명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그린 최후의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고흐는 자신의 생의 마감을 이 그림으로 예견한걸까요?


37세의 피 끓는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빈센트반고흐 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불우한 천재화가예요. 지금이야 고흐라는 이름이 전 세계적인 우량주(블루칩)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리지 않아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야만 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어요. 지하에 있는 고흐가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요?


2020년은 고흐가 사망한 지 130년 되는 해예요. 고흐가 묻혀 있는 곳은 파리 북쪽 교외의 작은 시골 마을인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공동묘지. 그곳에 자신보다 네 살 아래의 동생 테오 반 고흐(1857~1891)와 나란히 잠들어 있어요.


 테오는 동생이라기보다 평생 고흐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였어요.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일까, 테오도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후인 1891년 1월 만성신장염으로 고흐 곁으로 갔어요.


오베르쉬르우아즈는 고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정착했던 곳이에요. 광기와 정신병을 앓았던 고흐는 1890년 5월 중순 생 레미의 요양병원을 떠나 이곳으로 와 7월 29일 숨을 거둘 때까지 머물렀어요. 2개월 남짓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예술혼을 불사르며 70여 점의 위대한 작품을 빚어냈어요. 놀라운 투혼이자 엄청난 다작이에요.


고흐가 죽기 전 그린 최후의 작품

흔히 고흐의 자살 직전 최후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까마귀가나는밀밭’도 이때 나온 그림이에요.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밀밭, 그 위로 금방이라도 폭풍우를 몰고 올 듯 무시무시한 기세의 검푸른 하늘, 암청색 하늘 위에서부터 밀밭 가운데로 날아오는 일련의 까마귀 떼, 밀밭 중앙과 양옆으로 뻗어 있는 탁한 핏빛을 닮은 세 갈래의 길. 7월에 그린 것으로만 알려졌을 뿐, 이 작품이 고흐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인지는 확인된 바 없어요. 


그럼에도 그림 전반에서 엄습해오는 암울하고 우울하고 칙칙하고 슬픈 기운, 불길한 징조인 까마귀 떼의 등장, 사망한 달에 그린 제작 시기로 인해 여전히 고흐의 자살을 잉태한 그림으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려요.


고흐의 원래 꿈은 목사였어요. 신학대학 입학 대신 전도사로 방향을 튼 고흐는 1878년 벨기에 남부의 탄광촌 보리나주에서 가난한 주민들을 상대로 선교 사업을 펼쳤으나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전도 방식이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이마저도 포기해야 했어요. 


1880년 어느 날, 고흐는 결심한다. 비록 목회 활동의 포부는 접게 됐지만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인간을 구원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선교는 일맥상통한다는 깨달음 아래 화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예요.


순전히 독학으로 창작의 발걸음을 내디딘 고흐는 네덜란드 에덴과 헤이그, 드렌터, 누넨에 이어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그림 공부에 전념하다 1886년 2월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로 날아가 그곳에서 1888년 2월까지 머물렀어요. 


이때 툴루즈로트레크 등 기성 작가들과 교류하며 회화적 시각에 눈을 뜬 고흐는 돌연 프랑스 남부의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 아를로 향했어요. 고대 로마 유적으로 유명한 아를에서 고흐는 15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해바라기’ 연작, ‘별이 빛나는 밤’ ‘카페 테라스’ 등 명작이 쏟아져 나온 곳이에요.


“나의 슬픔과 고독을 표현한 것”

10년 동안 8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고흐가 자살을 감행할 무렵에 그린 유화 그림으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돼 있어요. 고흐의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가로(103cm)가 세로(50.5cm)보다 두 배가량 길어요.


 아를 시대 후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1년 가까이 요양을 끝내고 생애 마지막 정착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본능적으로 내재된 고독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은유(메타포)의 방식으로 드러낸 작품이에요. 소수설이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삶에 대한 희망의 의지를 암시한 그림이라는 해석도 있어요.

▶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50.5×103.0cm, 캔버스에 유화, 1890,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거친 바람에 몸 둘 바를 모르고 휘청거리는 황금빛 밀밭이 화면을 압도하고 밀밭을 가득 채운 줄기들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위태해요. 밀밭 위로는 폭풍우를 몰고 우리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 기세로 위압적인 검푸른 하늘이 버티고 있어요.


 그림 오른쪽 위 암청색 하늘 높이에서부터 밀밭 가운데로 날아오는 수십 마리 검은 까마귀 떼의 모습에서는 몹시 불길한 징조가 느껴져요. 모두가 죽음을 눈앞에 둔 공포감의 엄습이에요. 하늘 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두 조각의 흰 구름도 외롭고 쓸쓸해 보여요.


그뿐만 아녜요. 밀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지평선을 지향하는 길과 밀밭 양옆 가장자리로 뻗어나가다 힘에 부친 듯 끊어진 길. 길의 색깔이 마치 죽음을 예고하듯 응고되기 직전의 탁한 핏빛을 연상시켜요. 


밀밭, 하늘, 길, 세 장면의 묘사에서 한결같이 거칠고 역동적이면서 굵은 붓질이 역력한데, 광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고흐의 천재성과 동시에 그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에요. 


길은 모두 화면 아래쪽 감춰진 부분에서 시작해 세 갈래로 나뉘었어요. 왜 하필 세 갈래일까요? 그것은 무산된 목회자의 꿈과 평생 마음의 빚을 진 동생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화가로서 절망감을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에둘러 보여주려 한 게 아닐까요.


반면 가운데 길이 지평선, 즉 미래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는 점, 평소 밀과 사람의 생명력을 동일시한 고흐가 밀밭을 그림의 주제로 애용한 점을 들어 삶에 대한 희망을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울림이 작아요.


 고흐가 이 그림과 관련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토로한 내용을 보면 더욱 그래요. “폭풍우가 쏟아질 듯한 하늘 아래 밀밭을 그린 이 그림은 나의 슬픔과 고독을 표현한 것이야.” 많은 사람들이 애써 이 작품을 죽음과 연관 짓는 이유예요. 

ⓒ 박인권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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