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주간지 공감

코로나19 이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기술과 산업, 채용 동향까지 바뀌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첨단 로봇이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일본에서는 로봇이 사람들을 응대하고 커피를 만드는 카페부터 투숙객을 맞는 로봇 호텔까지 등장했습니다. 로봇을 이미 잘 활용하고 있는 나라로 유명하죠.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로봇의 천국’ 일본,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알아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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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문 부탁드립니다."

키 120㎝ 정도에 귀여운 외계인처럼 생긴 로봇이 큰 눈을 깜박이며 말을 했어요.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라고 주문을 하니, 로봇은 눈에 파란 불이 들어온 채 얼굴을 바라본 뒤 “알겠습니다.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며 말을 이었어요. 

몇 분 후 쟁반에 커피를 담아 온 로봇은 커피를 건네며 “어디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물었어요.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의 말에 로봇은 일본어투가 묻어나는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어요.

일본 인공지능(AI) 로봇 산업을 조망하기 위해 도쿄를 찾은 기자가 시부야의 카페 ‘페퍼 팔러(Pepper PARLOR)’에서 접한 풍경이에요. 여러 대의 로봇이 카페 곳곳을 바삐 움직이며 고객을 맞이해요. 

로봇은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날씨가 좋네요” “즐거운 일 있나요?”라고 인사를 건네요. 자리에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게임을 즐기고 주문도 받아요.

2019년 12월 문을 연 이 카페는 로봇과 직원이 함께 일하고 손님을 맞으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어요. 이곳은 일본 최대 정보기술(IT) 업체인 소프트뱅크 그룹에서 로봇 사업을 담당하는 소프트뱅크 로보틱스가 운영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사람 대신 손님을 맞이하는 로봇은 이 회사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페퍼’예요. 

페퍼는 최근 자율주행과 AI 기반의 대화형 서비스 등 한층 고도화된 기술을 탑재해 실로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어요. 호기심에 가득 찬 손님들의 질문도 농담을 섞어가며 척척 받아냈어요. 카페에 울려 퍼지는 음악에 맞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두 팔을 아래위로 흔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손님들은 감탄사를 연발했어요.

페퍼팔러 관계자는 페퍼의 AI 기술에 대해 “사용자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음성이나 표정을 통해 페퍼가 감지하면 페퍼 역시 그 감정을 느껴 반응하게 된다”고 설명했어요. 그는 “기술 혁신으로 로봇이 우리 삶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얼마나 빠르게 실생활에 적용되고, 사람에게 조화롭고 안전하게 쓰이느냐가 관건”이라며 “로봇이 곧 생활의 일부가 되고, 삶의 질을 높이리라 확신한다”고 말했어요.

일본의 경제지 <니혼게이자이>는 최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어려운 환경을 헤치고 로봇 기술 분야의 최고가 되려는 ‘신(新)기업가 정신’이 꿈틀댄다고 보도했어요. 청년들이 로봇 관련 신생기업(스타트업) 창업으로 눈을 돌리고 정부와 대학, 기업은 다양한 육성 프로그램과 투자 생태계를 마련해 이들을 뒷받침해요. 

일본에서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로봇 기술이 한자리에 전시된 도쿄 미나토구의 ‘TEPIA(Technological Excellence Promoting Innovative Advances) 첨단 기술관’은 청년들의 창업 열기를 한 눈에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전국 각지의 젊은이들이 로봇 분야 창업에 도전하기 위해 줄을 잇고, 일본을 넘어 외국인 인재들까지 한데 어우러져 힘을 키우고 있어요.

TEPIA 첨단 기술관 홍보 담당자는 “미래의 로봇은 아이들과 함께 즐기며 노래도 하고 노인이나 치매 환자의 말벗이 될 것”이라며 “TEPIA 첨단 기술관은 이런 미래를 미리 점쳐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어요. 이곳에는 세계 최고 수준인 일본의 로봇 제조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 스튜디오’가 마련돼 있어요. 이뿐만 아니라 로봇과 3D 프린터를 배우는 초보자 입문교실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어요. 건물 내벽 곳곳이 투명판으로 돼 있어 로봇 기계가 움직이는 게 고스란히 보였어요. 일상에서 시민들의 로봇에 대한 호기심을 끌어내기 위한 세심한 배려로 느껴졌어요.

TEPIA 첨단 기술관에 도착하자 거대한 로봇 모형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어요. 낮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버스 한 대가 이 로봇 앞에 섰어요. 차 문이 열리자 20대 남녀 수십 명이 차에서 내려 TEPIA 첨단 기술관으로 향했어요. 군마현의 군마대학 기술연구센터에서 온 견학생들이었어요. 이들을 따라 2층 로봇 체험장으로 들어가니 첨단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로 시끌벅적했어요.

이곳에서 만난 노무라 가큐(21·군마대학 4학년) 씨는 “대학 졸업 뒤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은 유혹도 있지만 이곳에서 첨단 로봇 기술을 접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TEPIA 첨단 기술관에서 같은 꿈을 꾸는 청년들을 만나 함께 정보를 나눌 수 있어 더 좋았다”고 말했어요. 일본 북단 홋카이도부터 남단 규슈의 젊은이들까지 로봇 관련 창업을 위해 가장 먼저 이곳을 찾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이에요.

‘이상한’ 바리스타(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사람)를 만나기 위해 도쿄 시부야의 한 백화점을 찾았어요. 이 바리스타가 일하는 지하 1층 카페에 들어서자 인기 아이돌의 팬 미팅이라도 열린 듯 수십 명이 바리스타를 에워싸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어요. 

이곳은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만드는 ‘헨나(変な, 한국어로 ‘이상한’이란 뜻) 카페’예요. 사람의 도움 없이 로봇 스스로 아메리카노, 카페라테, 카페모카 등 7종류의 커피를 만들어요.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은 마치 화려한 ‘로봇 춤’을 보는 것 같아요. 손님이 발권기에서 티켓을 산 뒤 주문대 QR코드 인식기에 대면 “사람보다 더 맛있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핸드드립 (종이 필터를 사용해 커피를 내리는 것)이 시작되요.

집게손가락 2개로 커피콩을 갈고 물을 부어 5분 남짓 만에 일사불란하게 커피를 내와요. 주문이 밀리자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양해를 구하고, 손님이 뜸하면 “따뜻한 커피 한잔 어떻습니까”라며 ‘호객 행위’도 서슴지 않아요. 이렇게 만든 아메리카노 한 잔의 가격은 320엔(약 3200원)이에요. 

이 로봇 바리스타는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미국산 팔 모양 로봇 ‘소여’로 7개의 관절을 활용해 커피를 만들어요. 커피를 만드는 일뿐 아니라 필터를 씻는 일도 로봇이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람 없이 운영되요. 커피콩을 채워 넣고 필터를 교체하는 일 정도만 사람이 해요.

이 카페는 일본 여행업체 ‘H.I.S’가 운영하고 있어요. 업체 관계자는 “로봇바리스타는 물의 세기, 온도, 물의 양 등을 섬세하게 조정해, 사람보다 균일한 맛의 커피를 만들어낸다”며 “손님들 반응이 좋아 로봇 카페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어요. 

이 업체는 일본 전역에 로봇이 투숙객을 맞는 ‘로봇 호텔’도 운영하고 있어요. 이 호텔에선 입퇴실 절차는 물론 바닥이나 유리창 청소도 로봇을 활용해 비용을 크게 낮췄어요.

로봇의 도움으로 다른 도심형(비즈니스) 호텔의 4분의 1 수준인 5명 안팎으로 호텔을 운영해요. 객실에도 로봇이 설치돼 있어 음성 인식으로 조명이나 냉난방기 작동을 지원해요. 업체 관계자는 “정보통신기술(ICT)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ICT가 접목된 호텔이나 카페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로봇을 활용하는 것은 비용 감소 효과도 있지만 손님들의 흥미를 불러 구매 욕구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어요.

일본의 인공지능(AI) 로봇 기술을 조망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전파탑인 도쿄 스카이트리 예요. 이곳 8층에는 지바공업대학이 개발한 최신 로봇 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스카이트리타운캠퍼스’가 있어요. 이곳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거대한 ‘로봇의 눈’이 기자를 맞았어요. 로봇의 눈은 정교한 인식 능력으로 입장객 수를 정확히 파악해요.

로봇의 눈을 뒤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이번엔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투입된 구조로봇이 눈길을 잡아끌었어요. 이 로봇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원자로 건물에서 데이터를 얻어내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줬어요. 특히 다른 로봇보다 월등히 빠른 30㎝/s 이상의 속도로 자율주행이 가능해요. 또한 탑재한 검사 장비를 이용해 사용후핵연료를 자동으로 인식·검사할 수 있어 사람의 방사선 피폭 우려도 덜어줘요.

주말이면 이곳의 구조로봇 기술을 확인하려는 젊은이들이 줄을 이어요. 이 때문에 <아사히신문>은 이곳을 ‘구조로봇의 성지’라고 정의했어요. 단순히 구조로봇을 구경하는 것을 넘어 관련 기업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공간이기도 해요. 전국 각지의 구조로봇 업계 관계자와 로봇 오타쿠(특정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람이란 뜻의 일본어)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곳을 찾아와 새로운 기술 아이템을 찾아요.

지바공업대학처럼 일본 대학들이 로봇 기술 개발에 관심을 보이는 점도 눈에 띄어요. 지바공업대학을 비롯해 일본의 주요 대학들은 로봇 기술 개발을 위해 자체 프로그램을 만들고 벤처펀드 조성에도 나섰어요. 관련 신생기업(스타트업) 양산을 위한 교과과정 개발에도 적극적이에요. 지바공업대학은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2019년 한 해 동안 5개의 신생기업. 창업을 도왔어요. 

스카이트리 타운 캠퍼스 홍보 담당자는 “그동안 산업용 로봇이 인간보다 수천 배 강한 근육, 수백 배 빠른 팔로 공장의 효율을 극대화했다면 이제는 AI 기술에 힘입어 더 빠른 두뇌까지 탑재했다”고 설명했어요. 그는 “생물이 다세포로 진화한 것처럼 로봇도 진화하고 있다”며 “대학이 앞장서서 기술 개발에 나서고 기업들의 협업이 더해지기 때문에 일본 로봇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