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안 먹으면 후회할걸?" 통영 '서호시장'의 숨겨진 맛집

조회수 2020. 5. 28. 10:36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펄떡펄떡 뛰는 활어, 시끌시끌 흥정하는 상인과 소비자들의 소리, 어디인지 상상이 가시나요? 바로 이른 새벽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활기 넘치는 어시장의 모습이에요. 


그중에서도 오늘은 통영의 새벽 어시장으로 유명한 '서호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서호시장의 생생한 현장 모습과 숨겨진 맛집까지 놓쳐선 안 될 정보를 알려드릴게요!

공감 누리집 원문 기사 보러 가기


새벽 4시. 이미 해산물 경매장은 파장 분위기예요. 남해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은 통영항 근처 경매장에서 3시부터 경매사의 손길을 거쳐 팔려나가요. 도다리, 복어, 삼치, 아귀, 도미, 광어, 장어 등 대부분 자연산 해산물이에요. 경매를 마친 해산물은 근처에 있는 서호시장으로 옮겨져요. 서호시장은 막 경매를 마친 해산물을 일반 소비자들이 직접 살 수 있는 수산시장으로 유명해요.

▶ 새벽4시 서호시장은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근처 경매장에서 직접 산 생선을 할머니들이 밀대에 싣고 시장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방은 아직 어둡지만 시장 안에는 낮은 조도의 불빛이 좌판을 준비하는 시장 상인들의 손길을 밝혀요. 이곳에서 파는 생선은 크게 세 종류. 살아 있는 활어와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선어, 그리고 해풍과 맑은 햇빛에 말린 건조어예요. 


상인들은 선어를 더욱 신선하게 보이려고 물을 뿌리고 얼음을 채워요. 아직은 이른 시각. 손님은 없어요.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길다방’이 커피를 배달해요. 길다방은 끄는 매대에 각종 차를 싣고 파는 이동식 카페. 500원에 커피 한 잔. 뜨거운 물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위장을 자극해요.


활어시장 할머니들의 강인한 삶의 역사

서호시장을 대표하는 활어시장은 새벽 5시가 되면서 슬슬 손님이 오기 시작해요. 빨간 고무 대야에 담긴 활어들이 물을 튀겨요. 살려고 애써요. 이곳은 좌판이 따로 없어요. 일찍 와서 앉는 곳이 바로 가게예요. 좌판은 활어를 담은 빨간 고무 대야. 흔히 ‘다라이’로 불리는 큰 플라스틱 그릇이에요. 그 대야에 낙지, 장어, 우럭, 도다리 등이 삶의 끝자락에서 거친 숨을 헐떡여요.

▶ 서호시장 할머니들은 빨간 고무 대야에 활어를 담아 판다. 좌판이 따로 없고, 앉은 자리가 바로 좌판이다.

생선을 파는 이들은 대부분 할머니예요. 40~50년을 이곳에서 생선 팔아 자식들을 가르쳤고 손주 용돈을 줘요. 대야가 바닥에 있으니 허리를 펼 틈이 없어요. 흥정할 때도 손님 얼굴을 보지 않아요. 아니, 볼 틈이 없어요. 허리를 굽힌 채 주문을 받고, 허리를 굽힌 채 생선을 손질하고, 허리를 굽힌 채 비닐봉지에 담아 손님에게 줘요. 시간이 남으면 스티로폼을 깔고 구부리고 앉아 멍게를 따고, 굴을 까고, 새우 껍데기를 벗겨 팔았어요. 그래서 할머니들의 허리는 굽었어요. 굽은 허리는 그녀들의 강인한 삶의 역사이고 흔적이에요. 애잔해요.

▶ 이른 새벽, 좌판대에 선어를 진열한 할머니는 물을 뿌리며 신선도를 유지한다.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싱싱한 활어를 구입할 수 있어 서호시장을 찾아요. 통영시민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서호 새벽시장을 찾아요. 서호시장의 역사는 오래됐어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요. 1906년 서호시장이 있는 통영항 일대는 원래 바다였는데 흙으로 메워 땅으로 만들었어요. 예전 서호만 터를 매립한 새 땅에 자리한 시장이라 서호시장, 새터시장으로 불려요. 그곳에서 항구가 생겼고, 항구 노동자들을 위한 먹거리 좌판으로 시작해 점차 시장으로 발전했어요. 통영에 있는 ‘중앙시장’, ‘거북시장’과 함께 3대 시장으로 꼽혀요. 그 가운데 서호시장은 통영항과 바로 붙어 있어 신선한 해산물을 살 수 있는 시장으로 유명해요. 330여 개 점포 중 200여 곳이 수산물 점포예요.


아침이 되자 북적이는 사람들, 살아나는 분위기

욕지도, 사량도, 비진도, 장사도 등 수많은 유·무인도가 분포해 있는 통영은 섬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식재료들이 다 모였어요. 그래서 통영은 해산물 애호가들의 낙원이에요. 한려수도의 경관만큼이나 화려한 멋과 맛에 대한 통영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했어요. 소설가 박경리는 <토지>에서 통영을 “사또보다 높은 수군통제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표현했어요. 통영의 자부심이에요.

▶ 막 잡아올린 까나리가 쟁반에 담겨 손님을 기다린다.

조선시대에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수군을 통제하던 삼도수군 통제영이 있던 곳이 통영이에요. 한양 조정에서 파견된 관리와 식솔들, 8도 각지에서 모인 장인과 병력이 만든 도시예요. 궁중 요리를 비롯해 8도 요리가 어우러졌고, 동해나 서해에 비해 풍성한 해산물은 맛의 고장 통영을 만들었어요. 통영에서 예술인이 많이 배출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이 큰 역할을 했어요. 소설가 박경리, 화가 이중섭, 음악가 윤이상, 시인 유치환 등이 모두 통영 바다가 길러낸 예술가예요.

▶ 경남 통영시 도남동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내려다 본 통영 앞바다 | 한겨레

섬사람들은 활어보다 건조한 생선을 더 즐겨요. 생선 살의 단맛이 말린 고기에서 더욱 살아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서호시장의 건조어는 전국에서 유명해요. 말린 생선은 마르는 과정에서 비린내가 사라지고, 생선 살 자체 효소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더욱 감칠맛을 내요.


서호시장 한가운데의 골목에는 말린 생선이 가득해요. 말린 박대가 가지런해요. 박대는 찜으로 요리하거나 껍질을 벗겨 말린 것을 양념구이로 먹어요. 박대의 껍질로 묵을 쑤어 먹기도 해요. 건조 물메기도 유명해요. 물텀벙, 꼼치, 물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물메기는 탕으로 주로 먹지만 겨울에는 말려서 찜으로도 먹어요.


“여기는 안 나는 고기도 뭘 해 무도(먹어도) 맛있다. 찌(쪄) 묵고 회로 묵고 꾸(구워)도 묵고 탕도 끓이고….”

▶ 섬과 바닷가에서 나는 각종 나물과 채소도 서호시장 한쪽 골목길에서 손님을 기다린다.

고무 대야에서 퍼덕이는 생선을 들어 올린 할머니의 입에서 구수한 사투리가 줄줄 쏟아져요. 활어시장 옆 골목에는 섬에서 나온 각종 나물과 채소를 파는 노점상들이 자리를 차지해요. 방풍나물과 고사리, 톳 등 각종 채소가 조그만 그릇에 담겨 손님을 기다려요. 아침 7시가 되자 시장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여요. 코로나19로 위축되긴 했지만 조금씩 분위기가 살아나요.


허기를 채워주는 시락국과 졸복국

▶ 졸복맑은탕은 미나리와 콩나물이 들어있가 숙취해소에 좋다.

서호시장은 ‘맛집의 보고’로도 불려요. 전국 식도락가들의 단골집이 곳곳에 있어요. 시락국은 서호시장의 대표 음식 중 하나예요. 이른 새벽부터 생선을 내리고 장사를 시작하는 어시장 사람들의 아침을 든든하게 채워줘요. 시락국은 시래깃국의 경상도 사투리. 무청을 말려 장어나 잡어로 낸 육수에 끓여요.


서호시장 서쪽 입구에 있는 ‘원조시락국집’은 서호시장 시락국밥집 중에서도 원조 격이에요. 주로 섬사람들이 아침 배를 타기 전에 많이 찾았지만, 지금은 관광객이 더 많이 찾아요. 이 집의 비결은 육수에 있어요. 장어 머리만으로 육수를 내요. 싱싱한 장어 머리만 10여 시간 푹 고아낸 뒤 체로 걸러요. 그렇게 걸러진 국물에 시래기를 넣고 다시 다섯 시간을 진득하게 끓여요. 음식을 고를 것도 없어요.

▶ 원조 시락국집은 장어머리로 육수를 내고, 10가지 반찬을 뷔페식으로 차려 새벽 시장 상인들뿐만 아니라 식도락가의 발목을 잡는다.

테이블 중앙에는 김치, 멸치볶음, 콩자반, 젓갈 등 10여 가지 반찬을 뷔페식으로 진열했어요. 손님들은 자신이 원하는 반찬을 먹을 만큼 접시에 담아요. 한 그릇에 6000원. 통영에서 시락국을 먹는 법이 따로 있어요. 제피 가루와 김 가루, 부추무침을 넣어 먹어요. 시락국과 어깨를 겨누는 서호시장 먹거리는 졸복국이에요. 


졸복은 10㎝ 안팎의 작은 복어로 작고 볼품없어 30년 전만 해도 먹지 않고 버릴 정도였어요. 졸복은 다른 복 종류보다 강한 독을 품고 있어 조금만 잘못 먹어도 입술과 혀가 바로 마비되요. 졸복 내장을 깨끗이 손질해 미나리, 콩나물, 무를 넣어 맑게 끓여내면 숙취 해소에 그만이에요. 졸복국을 먹을 때 식초 한 방울 더하면 복어의 독성을 눌러준다고 해요. 서호시장의 복 전문집은 여러 집. 송이식당 주인은 시아버지가 하던 복집을 물려받아 언니와 함께 운영해요. 졸복 맑은탕과 함께 내놓은 멸치회가 입맛을 돋워요.

ⓒ 이길우_칼럼니스트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