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열지 말까?" 화가들 울리는 '코로나 가격'

조회수 2020. 5. 18. 11: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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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면에서 타격을 준 코로나19. 대한민국 문화 1번지 인사동도 피해 갈 수 없었어요. 바로 '코로나 가격'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얼마 전 전시회를 연 화가는 그림을 팔면서 씁쓸한 상황을 맞이했다고 하는데요. 어떤 사연인지 함께 확인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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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코로나 가격’이란 말이 나온 거구나

화가 예조국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기도 모르게 이런 혼잣말을 내뱉었어요. 며칠 전 전시회장을 찾은 지인에게서 ‘코로나 가격’이란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남의 얘기 거니 하고 웃어넘겼어요. 하지만 막상 스스로 겪고 보니 아픔의 여진이 계속 가슴을 눌러요. 대한민국 미술 1번지 인사동에 ‘코로나 가격’이 새로운 유행어가 되고 있어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갤러리를 찾는 사람이 크게 줄어든 데다, 가끔 방문하는 사람들마저 그림 사기를 주저하고 있어요. 4개월 가까이 이어지는 코로나19 국면으로 경제마저 곤두박질치면서 예술가도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어요. 코로나19의 먹구름이 인사동 화랑가에도 짙게 드리우고 있어요.


구매자시장 vs 판매자시장

예조국의 사연은 이랬어요. 코로나19 속에서도 어렵사리 전시회를 열었어요. 불행 중 다행으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0명 안팎으로 줄어 전시회장을 찾는 사람이 제법 됐어요. 비록 평상시보다는 적었지만, 마스크를 끼고 찾아주는 이들이 참으로 고마웠어요.

다만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작품이 참 좋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꿈을 찾을 수 있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기운을 얻는다…”는 덕담을 하면서도 선뜻 구매 의사를 비추지 못하는 것을 민망해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두 손을 마주 잡지도 못한 채, 눈빛만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나눌 뿐이었어요.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었어요.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전시회장을 찾아준 지인이 작품 한 점을 사겠다고 했어요. "얼마냐?"라고 물었을 때 평소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했어요. 의식 반, 무의식 반으로 ‘코로나 가격’을 염두에 두고 자진 할인을 했어요. 그는 흔쾌히 승낙했어요. 참으로 고마웠어요.

그런데 이튿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미안하지만, 어제 얘기한 가격에서 좀 더 할인한 수준으로 하자"라는 것이었어요. 순간적으로 ‘안 됩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어요. ‘이게 바로 코로나 가격이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어쩔 수 없이 “미안하긴요, 어려운 시기에 작품을 구입해 주니 제가 감사하지요”라고 말했어요. ‘처음에 자진 할인 없이 평상시 가격을 제시했으면, 크게 할인해 주고도 원래 받으려 한 수준에서 마무리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어요.

예조국이 겪은 것처럼 물건을 사고팔 때 구매자가 판매자보다 우위에 서서 거래 조건을 결정짓는 경우를 구매자시장(Buyer’s Market)이라고 해요. 반대로 판매자가 우위인 조건은 #판매자시장(Seller’s Market)이에요. 구매자시장과 판매자시장을 결정짓는 요소는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수 ▲상품의 희귀성 ▲경제 상황 등 무수히 많아요. 대형 할인점에서 구매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며 ‘1+1 행사’를 하는 대부분의 소비재 상품이 대표적인 구매자시장의 품목이에요. 작품을 팔려는 화가는 많고 구매하려는 사람은 적은 미술품도 마찬가지예요.

반면 중국의 희토류와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 등은 정반대예요. 파는 사람이 힘을 갖고 가격과 판매량 등을 일방적으로 정해요. 구인 구직 시장에서도 모든 회사가 원하는 능력을 갖춘 소수 인재는 판매자시장으로서 떵떵거릴 수 있지만, 누구나 갖고 있는 능력만 보유한 사람들은 취직하려고 아무리 애써도 원하는 일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구매자시장의 높은 벽에 좌절하기 쉬워요.


노력은 화가가 하고 돈은 액자 상이 번다

예조국의 가슴 앓이는 구매자시장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아쉽지만 고마운 이에게 작품을 보내려고 액자를 맞추면서 또 한 번 씁쓸함을 맛봐야 했어요. 작품을 멋지게 꾸미는 액자 값이 생각했던 것보다 비쌌어요. 땀 흘리며 애써 창작한 작품은 구매자시장에 직면했지만 액자는 판매자시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액자 없이 작품을 전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작품과 액자처럼 한 상품이 거래(소비) 되면 덩달아 소비(거래) 하는 상품을 #보완재 라고 해요. 커피와 설탕, 자동차 여행과 휘발유(경유), 등산과 등산용품 등이 대표적인 보완재예요. 액자 만드는 사람은 미술 작품이 거래되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작가들이 찾아와 작품을 맡겨요. 보완재라는 성격으로 앉아서(물론 그들 나름대로 어려움은 많다) 돈 벌 수 있는 거예요. 보완재의 반대는 대체재예요. 쌀과 보리쌀, 은반지와 금반지처럼 소득이 올라가는 등 여건이 좋아질 때 소비가 줄어들고 더 좋은 상품으로 옮겨가는 것을 가리켜요.

구매자시장과 판매자시장, 보완재와 대체재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히 겪는 경제 현상이에요. 힘들더라도 되도록 판매자시장에서 보완재를 다루는 게 더욱 여유로운 삶을 가능하게 해요. 구매자시장에서 대체재를 다루는 사람은 외부 환경에 쉽게 좌우되어 늘 불안정한 삶을 하소연하게 돼요.

ⓒ 홍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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