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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정서에 적합? 밀레의 만종에 숨겨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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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등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예술 작품들. 그중에서도 유독 한국인의 정서에 적합한 작품이 있다는 사실, 알고계셨나요? 바로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라는 작품입니다. 자연주의적 농민 풍경화의 걸작으로 유명하죠. '만종'의 어떤 점이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걸까요? 그 비밀을 파헤쳐보도록 해요.


이발소는 남자들이 머리를 깎는 곳이에요. 미용실이나 세련된 헤어숍을 이용하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는 낯선 이름이겠지만, 중장년 남자들에게 이발소는 아련한 추억을 불러오는 장소에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곳곳에 흔한 게 이발소였으나, 지금은 변두리 지역에서나 드문드문 볼 수 있을 정도니 세월이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어요.

이발소 전성기 시절, 그곳에 가면 눈길을 끄는 복제 그림이 하나둘 걸려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밀레의 그림이에요. 작가 이름이나 제목은 몰라도 ‘아하, 이 그림’하고 맞장구칠 정도로 너무나 친숙한 작품이에요. 바로 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에요. 밀레가 1857년부터 1859년 사이에 그린 이 그림은 가난한 농부가 아내와 함께 해 질 무렵 들판에 서서 교회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맞춰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에요. ‘씨 뿌리는 사람’ ‘이삭줍기’와 함께 밀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실주의적 또는 자연주의적 농민 풍경화의 걸작이에요.


자연 주의적 농민 풍경화의 걸작

밀레는 1814년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의 그레빌 아그에 위치한 작은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농부의 아들로 농촌에서 나고 자란 밀레는 누구보다 농민들의 삶을 진한 애정의 눈길로 바라보았고, 이런 성장 과정은 훗날 그가 ‘농민의 화가’로 명성을 쌓는 데 소중한 토양이 되었어요. 밀레는 파리 교외의 한적한 시골 마을인 바르비종을 중심으로 사실적 풍경화를 그린 화가들을 지칭하는 바르비종파의 핵심 인물이었어요.

19세기 중엽 밀레와 함께 테오도르 루소, 카미유 코로, 프랑수아 도비니, 쥘 뒤프레, 샤를 자크 등 수십 명의 화가들이 이 마을에 모여 살았는데, 인근에 퐁텐블로 숲이 있어 퐁텐블로파로도 불려요.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눈앞에 보이는 숲과 자연 등 자연 친화적이면서 사실적인 풍경화에 탐닉한 것과 달리 밀레는 농민들의 삶과 농촌 풍경을 소박하지만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건한 필치로 묘사한 점이 차이에요.

20대 초반, 파리 땅을 밟은 밀레는 국립 미술학교인 에콜데 보자르에 입학해 미술 공부에 매진하는 한편 루브르박물관에서 대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화가로서 내공을 다져나갔어요. 밀레의 또 다른 걸작인 ‘이삭줍기’도 ‘만종’을 그리기 시작하던 해인 1857년에 탄생했어요.

저물어가는 노을빛 아래 드넓은 들판에서 추수 후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아낙네들의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은 자연주의를 지향한 대표적인 그림으로 평가돼요. 반 고흐의 초기 작품과 클로드 모네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끼친 밀레는 두 번의 결혼으로 9명의 자식을 두었으며 1875년 결핵으로 61세에 사망했어요.


노동의 신성함 느끼게 하는 경건한 분위기

▶장 프랑수아 밀레 '만종', 캔버스에 유화, 55.5cm * 66cm, 1857~1859년,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 ⓒ 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농촌 출신으로 농부의 삶을 꿰뚫고 있는 밀레는 아마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화가 중 한 명일 거예요. 밀레의 대표작 ‘만종’도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정도로 친숙한 그림이에요. 그림의 주인공이 농부와 그의 아내라는 점, 노을이 지는 황혼 무렵 들판을 배경으로 설정한 점은 한국인의 정서와 맞닿아 있어요.

저 멀리 교회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맞춰 생명의 원천인 대지의 축복에 감사 기도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도 마찬가지예요. 하루 농사를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 나아가 흙을 만지고 밭을 일구는 노동의 신성함을 느끼게 하는 평화롭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때문이에요. 남자의 왼편으로 금방이라도 흙냄새가 날 것 같은 생명력 넘치는 땅에 꽂힌 쇠스랑과 부부 가운데에 놓여 있는 감자 바구니, 여자 뒤에 보이는 곡식을 실어 나르는 손수레도 가난하지만 결코 비루하지 않은 농민의 정직한 삶을 대변해요.

이 작품의 착상은 일을 하다가도 종소리만 들리면 늘 기도했다는 밀레 할머니의 모습에서 비롯됐어요. 밀레가 실제로 밝힌 얘기에요. 작품의 제목을 해 질 무렵 교회나 절에서 치는 종이라는 뜻의 ‘만종’으로 정한 것도 그럼 점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워요.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이 그림은 보는 순간 편안하고 은은하게 가슴에 와닿아요.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그림이에요. 한국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거예요. 프랑스 국민의 ‘만종’에 대한 애정은 더 말할 필요도 없어요. 프랑스인들의 각별한 ‘만종’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실제 사례가 있어요.

미국인 부호의 주문으로 그리게 된 ‘만종.’ 그러나 의뢰인은 완성된 그림을 구매하지 않았어요. 1875년 밀레가 죽은 뒤 밀레의 작품은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고 ‘만종’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전시 후 경매에 부쳐졌어요. 프랑스와 미국, 두 나라는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를 펼쳤고 미국 미술협회의 승리로 끝났어요.

그러나 이듬해 프랑스 유통업계의 실력자 알프레드 쇼사르가 당시 80만 프랑이라는 거금을 투자해 ‘만종’을 프랑스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어요. 이후 “‘만종’은 프랑스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쇼사르의 바람에 따라 1909년 루브르박물관에 기증된 데 이어 1986년부터 오르세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어요.

‘만종’과 관련된 또 다른 화제 하나.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달리(1904~1989)는 ‘만종’을 처음 본 순간, 그림 속 감자 바구니는 감자 바구니가 아니라 죽은 어린아이를 담은 관(棺)이며 부부는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에요. 달리의 이 주장은 사실일까요? 1932년, 한 정신이상자가 ‘만종’ 작품에 칼질을 하는 바람에 복원을 위한 X선 검사가 시행됐어요.

그 과정에서 감자 바구니 밑에 관처럼 생긴 이상한 물체가 밑그림으로 발견됐어요. 호사가들은 달리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증거라고 호들갑을 떨었으나 땅속에 묻힌 밀레가 증언하지 않는 한, 입증 자체가 불가해 달리 특유의 초현실적 감상평 정도로 회자되고 있어요. 세로 55.5cm, 가로 66cm의 아담한 크기로 캔버스에 유화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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