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잘 잡힐까?무엇이든 물어보살!

조회수 2020. 2. 14. 12: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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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동과 바다'를 보면 우리의 식탁과 먹을거리가 바다에 얼마나 많이 기대있는지 알 수 있어요. 어부들은 매년 만선과 안전을 위해 '풍어제'굿을 올린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진행되는지 함께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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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릿한 바람이 불어와요. 어디서부터 시작된 바람일까요? 어디에서 시작된 바람인지 모르지만 바다에서 오는 바람이에요. 너른 바다에서 불어온 바람은 풍요로운 갯벌을 지나 어촌의 생명체에 생기를 불어넣어요. 바다는 어민들에게 보배로운 삶의 현장이며, 생선과 해초 등 많은 먹거리와 생활비를 제공해요. 하지만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해요. 


거친 파도와 바람은 사정없이 생명을 앗아가요. 그래서 인간은 바다의 절대자에게 제물을 바치고, 춤과 노래를 하며 안녕을 갈구해요. 또 물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도록 기도해요. 그것을 '풍어제'(豊魚祭)' 라고 해요. 


음력 정월 초하루가 지나면 곳곳에서 풍어제가 열려요. 가장 먼저 열리는 것이 충청남도의 ‘황도 붕기풍어제’에요. 음력 정월 초이틀부터 1박 2일로 진행되는 이 풍어제는 ‘마을굿’이에요. 주민들이 무탈하고, 생업이 번성하게 해달라고 비는 마을 잔치인 셈이지요.


날카로운 징 소리로 시작된 풍어제

▶태평소의 구성진 가락은 황도 붕기풍어제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쟁 쟁 쟁 쟁~.” 멀리서부터 풍어제가 한창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날카로운 징 소리가 마을 전체를 휘감아요. 1월 26일 오후,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 한복판에 있는 마을회관에서는 신명나는 풍어제가 벌어지고 있었어요. 회관 입구에 차린 제사상 앞에 붉은 옷을 입은 만신(무당)이 춤을 추며 신(神)을 부르고 있는데, 세경굿 이라고 해요.


 신을 부르는 청신(請神)의 과정으로 제주의 집에서 지내는 굿으로 마을 가정마다 평온과 풍어를 기원해요. 굿의 주관은 김혜경 만신인데 2019년 타계한 김금화 만신의 제자에요. 김금화 만신은 생전에 이곳 풍어제를 30년간 주관했어요. 이날 아침에는 피고사가 열렸어요. 황도 풍어제의 제물은 돼지가 아닌 소에요. 


소는 농경사회에서 매우 귀한 동물로 농사와 운반 수단으로서 절대적인 존재이지요. 그럼에도 왜 황도 어민들은 그 비싼 소를 제물로 바쳤을까요? 애초 이곳 어민들이 모신 신은 뱀이었어요. 뱀이 이무기가 되고 용이 된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뱀은 돼지와 상극이에요. 그래서 이곳 어민들은 돼지를 키우지도 먹지도 않아요. 


제물로 선정된 소는 제당에 올라오기 전 샘물로 깨끗이 몸을 씻기는 정화라는 과정을 진행해요. 제당 앞에서 희생시키고, 각 부위의 고기를 조금씩 떼어내요. 소의 심장, 허파, 간과 피를 그릇에 담아 피고사를 지내요.

▶바닷가에 정박 중인 어선에는 풍어를 바라는 오색기가 나부낀다.

‘풍어의 신’ 임경업 장군이 앞장

▶‘풍어의 신’ 임경업 장군 깃발을 앞세운 행렬이 본굿이 열릴 제당을 향해 가고 있다.

 세경굿을 마친 뒤 마을을 지나 본굿이 열리는 제당으로 행렬이 움직여요. 맨 앞에는 임경업(1594~1646) 장군을 그린 커다란 깃발이 앞서는데, 임경업 장군은 서해 어민이 모시는 신으로, 중간계(中間界)의 신인 셈이에요. 


임 장군은 병자호란 때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기 위해 청나라로 가던 중 선원들의 식량이 떨어지자, 연평도에 배를 대고 얕은 바다에 가시나무를 촘촘히 박아 썰물 때 나무 빗살에 걸리는 조기를 잡는 어설법을 가르쳤다고 하여, 임 장군이 풍어의 신으로 모신다고 해요. 


뒤에는 서리화 가 따르는데, 긴 장대에 삼단으로 흰 종이꽃을 장식한 것으로, 뿌리 없이 눈 위에 피어난다는 상상의 꽃이에요. 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이 서리화를 타고 내려온다고 믿어요. 


행렬이 마을을 돌고 제당에 도착하면 황도의 선주들은 오색 깃발을 잡고 달리기 경주를 해요. 제당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긴 배 기를 두 손으로 잡고 온 힘을 다해 뛰기 시작해요. 먼저 제당 앞 깃발 꽂는 곳에 자신의 깃발을 꽂기 위해서예요. 가장 먼저 도착해 깃발을 꽂아야 신의 보살핌으로 1년 동안 무사고와 만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놀이에요.붕기풍어제의 붕기(鵬旗)는 하루에 수만 리를 난다는 붕새에서 따온 말로 글자에 걸맞게 큰 깃발이 제당 앞에서 계속 휘날려요.


충남 무형문화제 제12호로 보존·전승

 제당에서 본굿이 시작되면 막걸리와 함께 대나무에 소고기 살코기를 줄줄이 꿴 꼬치를 주민들에게 나눠줘요. 오전에 희생된 황소의 살점이에요. 장작 모닥불에 익힌 소고기는 잔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켜요. 황도의 황자는 누를 황(黃)이에요. 이곳에 보리를 많이 심어 봄에 멀리서 섬을 바라보면 누렇게 보인다고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제당의 주변에는 오래된 회화나무가 자리 잡고 있어요. 한 나무는 벼락을 맞아 가운데가 갈라졌지만 신령스러움을 유지하고 있어요. 


충남 무형문화재 제12호로 보존·전승되고 있는 황도 붕기풍어제는 안개가 자욱한 어두운 밤에 출어한 황도리 어선들이 항로를 잃고 표류할 때 제당이 있는 산에서 밝은 불빛이 비쳐 무사히 귀항할 수 있었어요.이때부터 자신들을 보살펴준 신성한 곳이라 하여 당집을 짓고 제신을 모시기 시작했어요. 


한때 황도에는 돈이 넘쳤으나 새만금 방조제가 바다를 가로막으면서 어획량이 크게 줄었고, 제방 일부를 허물자 갯벌에 바지락 등 조개들이 살아나며 그나마 어촌의 명맥을 유지하게 됐어요. 현재 황도에는 142명의 주민이 살고 42척의 어선이 근해에서 어업에 종사해요.


만신들과 주민들은 어울려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신을 즐겁게 만드는 오신(娛神)의 과정이에요. 인간과 신이 어우러져 즐거워야 복이 깃든다고 하며, 인절미도 나눠줘요. 영혼과 육체가 찰떡같이 하나로 붙어 떨어지지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지’라는 말이 있을 만큼 굿과 떡은 붙어 다녀요.

▶황도 붕기풍어제는 밤이 깊도록 진행된다. 제당 주변의 신목들이 인상적이다.

새벽녘 풍어 타령이 흐르며 막 내린 풍어제

굿은 새벽까지 계속됐어요. 어떤 만신은 삼지창을 흔들고, 한 박수무당은 칼을 휘두르며 신과 인간의 거리를 좁혀주었어요. 중력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린 듯 만신의 육체는 허공을 춤춰요. 김혜경 만신이 물동이에 올라섰어요. 물동이 안은 깨끗한 물로 채워졌고, 지폐와 사과 등이 둥둥 떠 있어요. 물동이에 올라선 만신은 공수를 내려요. 접신한 신이 인간의 목소리로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고 축복을 내리는 과정이에요. 


마당의 장작불은 어두운 밤하늘을 화려하게 파괴했어요. 굿을 구경하는 주민들은 희생된 소의 내장과 뼈를 우리는 큼직한 가마솥 주변에서 추위를 잊었어요. 다음 날에는 어민들이 자신의 배에서 풍어를 기원하는 배 고사를 지냈고, 김혜경 만신은 다른 다섯 명의 만신과 함께 바닷가에 나가 강변용신굿을 지냈어요. 


바다에 떠도는 원혼을 달래는 굿으로, 신을 떠나보내는 송신(送神)의 과정이에요. 김혜경 만신은 양손에 서낭대를 들고 빙빙 돌아요. 서낭대는 가는 대나무 막대에 백지(한지) 여러 가닥을 술처럼 길게 묶은 도구에요. 바람에 백지가 흔들리며 굿춤이 더 율동적으로 보이고, 신과 이별을 아쉬워하는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요.

미끄런 조기야 코코에 걸려라
에이야 술배야
껄끄런 박대야 코코에 걸려라
에이야 술배야
선주에 마누라 술동이이고
발판 머리에 엉덩이춤 춘단다
걸렸구나 걸렸구나
우리 배 망자에 걸렸구나
이놈의 조기야 어디 갔다가 이제 왔냐…

풍어 타령이 흐르고, 바람이 차요. 비린내가 정겨워요.

©이길우_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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