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의 올해의 인물 '표지'에 숨겨진 비밀

조회수 2019. 12. 31. 10: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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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는 그 책의 얼굴이며, 책의 내용과 성격을 나타낸다는 말이 있어요. 즉, 표지 디자인은 책을 보호하고 그 내용을 알리는 역할을 하므로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죠. 오늘은 <타임>지 올해의 인물 표지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을 함께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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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가 2019년 올해의 인물로 10대의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어요. 역대 <타임>지 올해의 인물 표지 이미지를 살펴보면, 대부분 선정된 인물의 얼굴을 크게 부각해요. 


몸이 나오더라도 상반신 정도가 최대한이죠. 반면 툰베리는 머리부터 운동화를 신은 발끝까지 화면에 모두 나왔어요. 왜 이런 연출을 했을까요? 


잡지의 이미지는 아무런 의도 없이 찍히는 경우란 있을 수 없어요. 반드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철저한 통제 아래 찍히고 디자인되죠.


인물 이미지는 찍히는 각도, 몸의 자세, 얼굴 표정 등 무수히 많은 변수를 통해 특정한 기호(sign)를 갖게 돼요. 앉는 것과 서 있는 것, 서 있더라도 다리를 벌리고 있는 것과 짝다리를 짚고 있는 것, 손의 위치와 움직임 등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죠. 


그런 인물 이미지의 기호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19세기까지 서양의 회화에서 체계화되고 꾸준히 재현돼왔어요. 예를 들어 교황의 인물화는 늘 앉아 있는 상태에서 오른손은 문서를 들고 있고, 왼손은 편안하게 팔걸이에 올려놓는 식이죠. 이런 자세로부터 교황의 강력한 권위가 만들어져요.

거대한 자연과 연약한 소녀의 대비

수백 년 동안 생산된 회화 이미지는 마치 언어처럼 특정 자세마다 기호를 만들어내요. 사진은 회화를 모방하면서 그런 기호가 다시 확대 재생산되죠. 


이렇듯 이미지의 끊임없는 생산을 통해 기호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돼요.


그레타 툰베리의 인물 사진을 보아요. 이 표지 이미지에서 편집진이 강조하려 한 것은 ‘대비’예요. 거대한 자연과 연약한 소녀를 대비하고자 했죠.


사실 그녀가 강력하게 싸우는 대상은 자연이 아니라 자본일 거예요. 그러니까 사진에서 그녀를 덮칠 것 같은 거친 자연은 그녀가 살려내려는 환경이자 그녀와 환경을 위협하는 어른이고 자본이기도 하죠.


이렇게 강력한 대상과 싸우는 주인공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강조하고자 그녀를 더욱 10대 소녀답게 후드티를 입히고 운동화를 신겼어요. 하지만 한쪽 발을 앞으로 내딛고 먼 곳을 바라보는 얼굴 표정에서 당당함을 느끼게 해주죠.


비호감까지는 아니어도 결코 호감이나 이상화와는 거리가 먼 올해의 인물 표지도 있어요. 2010년의 주인공인 마크 저커버그예요. 


저커버그 인물 사진의 특징은 세 가지예요. 하나는 지나친 클로즈업이죠. 얼굴의 주근깨와 눈의 빛과 그 디테일을 모두 살려냈어요.


두 번째는 얼굴 정면을 바로 비춘 조명이예요. 이 조명은 올해의 인물을 드라마틱하게 이상화하고자 한 의도가 전혀 없음을 증명하죠. 마치 수술대 위의 실험 대상처럼 정보를 낱낱이 밝혀줘요. 


마지막은 이 조명과 한 호흡을 이루는 정면 얼굴이에요. 대개 멋을 부리는 인물의 각도는 정면에서 벗어난 비스듬한 각도죠. 비스듬한 각도에서 역광으로 촬영하면 대상은 아무리 초라한 인물이라도 위대해지기 마련이죠.


일반적으로 얼굴의 정면은 실용적인 용도의 촬영 각도예요. 즉 무엇보다 얼굴의 정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죠. 비스듬한 각도는 정보보다 멋에 봉사해요. 그러니까 저커버그의 정면 얼굴은 멋을 포기하고 얼굴에 담긴 특이한 온갖 정보를 깨알처럼 담아낸 것이죠. 


그리하여 이 사진은 저커버그라는 20대의 젊은 경영인이자 엄청난 거부이며 온라인 세계의 거물을 외계인처럼 묘사하고 있어요. 기성 산업계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신인류인 것이죠.


이와 달리 2012년 올해의 인물인 버락 오바마는 대상을 이상화하려는 전형적인 스타일로 촬영되었어요. 그의 옆얼굴은 뒤쪽에서 비춘 조명을 받아 이마부터 코와 인중, 턱의 라인까지 하이라이트가 생김으로써 윤곽선이 뚜렷하게 부각되었죠. 


앞모습이 사람의 주관적인 표정을 담는 데 적합하다면, 옆모습은 그의 객관적인 형태를 담는 데 적합해요. 예부터 서양에서는 그런 옆얼굴 이미지를 ‘프로필(profile)’이라고 불렀어요. 


이 사진은 오바마 얼굴의 형태학을 객관적으로 잘 보여줘요. 다시 말해 인종적인 특성이 더욱 잘 드러나죠. 그러면서도 조명 효과로 미국 대통령으로서 위엄과 품위를 담았어요. 


저커버그의 사진과 달리 역광으로 촬영해 라인을 빼면, 얼굴 정보는 어둠에 많이 가렸어요. 신비화하고 있는 것이죠.

의도를 갖고 디자인되는 대중매체 인물 이미지

2016년 올해의 인물인 도널드 트럼프의 사진은 등을 보이고 앉은 상태에서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에요. 이것은 ‘뜻밖이다’라는 의외성을 표현한 것이에요. 


대개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심리는 호기심이에요. ‘저 등을 보인 자는 누구일까?’ 그러다 그가 얼굴을 돌려 뒤를 돌아보면 ‘아, 바로 그 사람이구나’라는 놀라움을 경험하죠. 


이것은 영화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에요. 궁금증, 기대감, 놀라움으로 연결되는 움직이는 영상을 하나의 정지 화면에 담았어요. 


왜 이런 연출을 했을까? 그것은 당시 대통령 투표 결과가 뜻밖이고 놀라웠기 때문이죠.


<타임> 올해의 인물 표지에서 사진이 아닌 회화 이미지를 쓴 경우가 최근 10년 동안 두 번 있었어요. 2015년의 앙겔라 메르켈과 2013년의 교황 프란치스코예요. 회화가 사진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대상을 좀 더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죠.


메르켈 그림은 거친 붓 터치가 눈에 띄어요. 메르켈을 강인한 여성 리더로 해석하고 있어요. 이와 달리 교황 프란치스코 그림은 부드러움과 인자함을 표현한 듯해요. 이는 과거 회화에서 나타난 엄격하고 권위적인 교황 이미지와 대비되죠. 대중매체의 인물 이미지는 이처럼 분명한 의도를 갖고 디자인돼요.

ⓒ 김신 디자인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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