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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살 때 동네 할아버지가 절 기름솥에 빠뜨렸어요."

조회수 2019. 12. 26. 16: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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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맹농아로 태어났지만 위대한 저술가, 그리고 사회 사업가로써 활동했던 위인, '헬렌켈러'의 명언이에요. 우리나라에서도 장애로 인한 아픔을 치유하고 이겨내기 위해 캄보디아로 봉사를 다녀온 단체가 있다는데요. 국내 첫 장애인 봉사단 '보다'의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위클리 공감 누리집 원문 기사 보러 가기

국내 첫 장애인 해외봉사단 ‘보다(VODA·Volunteers for Disability Awareness)’ 팀이 10월 31일부터 11월 9일까지 캄보디아에서 장애인식 개선 활동을 마치고 돌아왔어요. 


‘보다’는 장애인 단원을 보조하는 활동지원사 2명을 뺀 나머지 7명 전원이 장애인이에요. 6명은 현지에서 강사로 활동했고 홍보를 담당한 최혜선 씨도 지체장애, 지적장애인이죠.


‘보다’는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수행하는 인천전략 이행기금(유엔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가 2012년 11월 2일 인천 송도에서 개최한 정부 간 고위급 회의예요. 여기서 제3차 아·태 장애인 10년(2013~2022)간의 아·태 지역 장애인들 권익증진 방안을 담은 인천전략이 채택되었어요) 운영사업의 하나예요. 


아시아·태평양 지역 개발도상국 국민을 대상으로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인권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만들어졌죠. 


봉사단원은 공개 모집했는데 서류와 면접으로 심사했어요. ‘보다’ 단원들은 캄보디아 프놈펜에 있는 캄보디아 장애인재단, 프놈펜왕립대학 캄보디아-한국협력센터, 반티에이 프리업(‘평화센터’를 뜻하는 장애인 직업기술훈련센터)을 방문해 다양한 활동을 소화했죠. 


이 중 4명의 단원을 12월 3일 서울 여의도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만나 어떤 활동을 했는지 이야기를 들었어요.

“속마음 털어놓으니 공감하는 이들 많더라”

김대현(44·중증 지체장애) 강사는 프놈펜왕립대학에서 학생과 관계자를 대상으로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을 강의했어요. 김 씨의 말했어요.


“대학교 주차장에 오토바이가 많았어요.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내가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가 나서)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고 소개했더니 공감이 되었던 모양이에요. 


그렇게 강의를 시작했어요. 강의안을 짜는 것부터 힘들었어요. 유니버설 디자인이 캄보디아에서 생소하게 들릴 것 같았죠. 


유니버설 디자인은 사람 중심, 사용자 중심의 제품·서비스·도시 공간 디자인 철학이에요. 연령, 성별, 신체적 차이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이죠. 


어떤 사람에겐 이 머그잔이 불편할 수 있어요. 나 같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건물의 경사로 같은 것도 포함돼요. 서울과 프놈펜의 야경 사진을 나란히 보여주며 서울은 이미 다 발달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려면 힘과 시간이 많이 들 것이에요. 


상대적으로 프놈펜은 아직 발달 단계에 있어 지금 시작하면 훨씬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더니 공감하는 듯했어요.”


캄보디아 장애인재단에서 ‘나는 장애인이지만 장애인이 아닙니다’라는 주제로 강의한 김종숙(47·지체장애) 강사는 “캄보디아는 개발도상국이에요. 차도와 인도 사이에 턱이 있어 휠체어가 다니기 불편하죠. 장애인재단은 시멘트가 깔리지 않은 맨땅에 나무와 돌이 섞인 곳에 있어요”고 말했어요. 


래서 그곳에서 만난 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한국도 50년 전에는 장애인이 바깥출입을 할 수가 없었어요. 과거와 현재의 차이, 현재 한국 장애인 정책 소개, 장애인식 개선 강사로서 느낀 점, 법적 의무화 제도 등을 설명해줬죠.”

그러고는 그들에게 자신의 개인 경험을 들려줬어요. “4세 때 서울로 온 부모님은 구파발에서 튀김 장사를 했어요. 밤이면 시각장애인 오빠랑 마중을 나갔는데 동네 술 취한 할아버지가 귀엽다고 내 귀를 잡고 번쩍 들었다가 실수로 기름 솥에 빠뜨리고는 도망갔죠. 


아버지가 나를 꺼냈는데 숨을 쉬지 않아서 (살든 죽든, 살면 더 힘이 들까 봐)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어머니가 뒤늦게 와서 내가 숨 쉬는 것을 확인하고 한강성심병원으로 데려갔는데 의사가 (가망 없다고) 받아주질 않았어요. 


아버지는 죄책감도 있고 해서 사우디로 돈 벌러 갔고, 어머니는 낮엔 나를 절에다 맡겼어요. 밤이 되면 양잿물로 나를 씻겼죠. 그렇게 살아났으나 팔이 붙어버렸어요. 


중3 때까지 놀림을 받으며 살다가 어떤 독지가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어요. 아직 상처가 남아 있고 팔도 완전하진 않아요. 놀림받은 기억 때문에 그 후로는 긴팔만 입으며 장애를 숨기고 살았어요. 


고객만족(CS) 강사를 오래 했어요. 2018년에 직장 내 장애인식 개선 강사를 양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격증을 취득했죠. 


처음 강의하는 날 장애인식 개선에 대해 소개하며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더니 (강의를 들으러 온) 많은 분이 울었어요. 나는 담담했죠. 내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조금씩 극복이 되었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끝나고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약간 울컥했어요.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사는 것”

이번 ‘보다’의 캄보디아 봉사단 활동 지원을 위해 한국장애인개발원 대외협력부 직원들이 동행했어요. 대외협력부 박영순 부장은 봉사활동 지역으로 캄보디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죠. 


“동남아 여러 국가 중 캄보디아를 선정한 것은 오랜 내전을 거쳤고 1970년 크메르루주 정권의 대량 학살로 장애인 인구가 늘어났으며 사회복지가 열악하다는 점이 고려됐어요. 


사실 우려도 있었죠. 예를 들어 우리보다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영국, 호주 같은 나라에서 새로운 장애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강의하러 한국에 온다면 우리가 참여할까? 


우리가 캄보디아에 가서 장애인식 개선한다는데 현지 사람들이 올까? 유니버설 디자인, 비장애인 아이를 키우는 시각장애인 엄마 등 모두 좋은 강의에요. 


그런데 현지인들이 ‘우린 아직 배고픈 나라인데 무슨 소리냐’고 하면 어쩌지? 하지만 결과적으론 대성공이었어요. 강사들이 준비를 잘했죠. 


무엇을 가르치려 든 것이 아니라, 실패를 딛고 일어난 실제 경험을 이야기했어요. 비장애인이 얘기했다면 잘 안 됐을지도 몰라요. 


장애인들이 와서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니 통했던 것이죠. 첫날 강의 후에 입소문 나서 참가자가 더 늘었어요.”

비장애인 아이를 키우는 중증 시각장애인 민숙희(41·시각장애) 강사는 ‘장애는 창조와 혁신의 씨앗’이라는 주제로 현지에서 영어로 강의했어요. 


그는 7개월 조산으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산소 과다 공급으로 미숙아 망막증을 앓았어요. 현재 점자와 (음성 출력을 해주는) 컴퓨터 화면 읽기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죠.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민 씨는 다음과 같이 전했어요. “캄보디아 대학생들에게 장애 관련 철학과 관점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는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살았죠. 


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주변에서 ‘제 몸 하나나 간수하지 아이까지 낳아 힘들게 하냐’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렇지 않았죠. 모든 부모는 어떤 부분으로든 결핍이 있어요. 그런 결핍이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에요. 


모든 부모가 아이를 열심히 키우려고 해요. 장애인 부모도 마찬가지죠. 내 아이가 3세 때 깜깜한 방에서 배 위에 점자책을 올려놓고 책을 읽어줬어요.


공룡을 좋아하던 아이가 ‘우리 엄마는 공룡 파워’라며 엄마의 장애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죠. 불쌍한 것이 아니라는 걸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강의하러 가도 좋은지 물었더니 괜찮다며 허락했어요. 강의하면서 피아노 연주도 하는 등 내가 보여줄 것이 많았어요. 


아이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죠. 그림이 새겨진 초콜릿 과자 봉지를 뜯지 않은 채 내용을 맞히는 것을 보여줬더니 이번 캄보디아에서도 인기 폭발이었어요.”


민 씨는 “강의를 들었던 한 학생은 한국에서 산업연수를 하다 장애를 입었어요. 그 학생이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왔는데 장애를 갖고 어떻게 살지 고민하다 노력 끝에 캄보디아 최고 대학인 왕립대학교에 입학했죠. 


그러나 롤모델로 삼을 만한 학우가 많지 않은 학교생활 속에서 장애인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장애를 가볍고 긍정적인 태도로 다루는 제 강의를 듣고 표정이 밝아져 강의장을 떠났다고 하더라고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내가 감사했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어요.

캄보디아 장애인들 “내년에 꼭 다시 와달라”

희귀 유전질환인 골형성부전증을 앓고 있는 박승리 강사는 11월 6일 반티에이 프리업에서 ‘I HAVE A DREAM’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어요. 미술치료를 응용해 학생들의 꿈을 표현하는 것이죠. 


장애 학생 40여 명과 함께 실습했어요. “한국의 장애 학생과 다른 점을 봤어요. 우리는 꿈을 그리라고 하면 부모님이 원하는 꿈을 그려요. ‘엄마가 뭐 하래?’ 바리스타, 공무원. 두 가지밖에 없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찢어져요. 전문가들도 부모님도 그 두 가지 이야기밖에 안 해요. 캄보디아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그렸죠. 농사를 짓거나 휠체어를 수리하거나, 자기 브랜드의 제품을 만드는 등. 


물론 캄보디아는 아직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정형화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장애인 직업기술훈련센터를 수료하고 나면 대부분 집으로 돌아가 가내수공업 형태의 가정 창업을 해요.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더 다양한 것이죠.”


지원 업무를 위해 동행한 한국장애인개발원 대회협력부는 캄보디아 현지 교육생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여줬어요.

“캄보디아에서도 어릴 때부터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장애에 대해 이해와 공감할 수 있는 교육의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제가 많은 격려를 받았고, 포기하지 말고 더 열심히 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희망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장애인들에게 강사님처럼 용기를 내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장애인에게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비장애인들이 못 하는 일이지만 장애인들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입니다.”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이런 강의를 내년에 또 들을 수 있게 꼭 와달라”는 것이었어요. 수십 명의 교육생이 손 글씨로 이런 내용을 적어냈어요. 


최경숙 한국장애인개발원장은 “이번 해외봉사단 ‘보다’는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진행된 기존 해외봉사단 패러다임에서 장애인으로 이뤄진 봉사단의 역량을 증명하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이번 해외봉사를 계기로 더 많은 장애인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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