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핫한 스님의 정체.jpg

조회수 2019. 12. 5. 14: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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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에 둘러싸인 백양사로 정관스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전 세계적인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는데요! 지금 백양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함께 살펴볼까요?

위클리 공감 누리집 원문 기사 보러 가기

△ 정관스님이 잘 발효된 메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배고프다. 승영아, 네가 점심 준비해라.”


11월 21일 만추의 햇살을 받으며 볏짚 위 메주를 뒤집던 정관(63)스님이 큰 소리로 지시했어요. 


검푸른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메주를 코에 대고 깊숙이 숨을 들이쉬는 스님의 표정에 큰 만족감이 퍼졌죠. “아! 이 냄새가 너무 좋아.” 스님이 직사각형의 메주를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니 메주 특유의 뜨는 내음이 정겹게 다가왔어요.

△ 강원도의 한 스님이 보내준 더덕을 다듬던 정관스님이 더덕을 사랑스럽게 보듬고 있다. 3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의 아름다운 풍경



“넵, 스님. 시장 보고 오겠습니다.”


젊은 셰프는 즉시 바구니를 들고 나섰어요. 백양산 중턱에 있는 천진암에서 장을 보려면 차를 타고 읍내까지 가야 하나?라는 의문이 순간적으로 들었어요.

△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백양사의 아름다운 풍경



“장 보러 어디까지 가나요?” “바로 옆입니다.” “따라가도 되나요?” “그럼요.”


호기심에 따라갔죠. 셰프가 향한 곳은 암자 바로 옆에 있는 대형 저온 냉장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층층 선반에 잘 정리된 식자재가 마치 사열을 기다리는 병사들처럼 선택되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수백 개의 용기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어요. “오늘 점심 메뉴는 뭔가요?” “카레를 하려고 합니다.”


스님은 바구니에 식재료를 담기 시작했어요. 신선한 감자, 호박, 버섯…. 장승영(24) 셰프는 능숙한 칼질로 채소를 다듬었죠. 소리가 경쾌했어요.

암자 옆 저온 냉장고 수백 개 용기 빼곡

△ 정관스님의 보물창고인 장독대. 7년 묵은 옻된장의 맛을 보여주었다.



“현이는 밥을 지어라.” 스님은 주방 한쪽에 서 있던 또 다른 젊은 셰프에게 지시했어요.


“넵, 스님. 밥물 양은 어느 정도로 할까요?” “6대 4로, 충분히 넣어.” “넵, 스님.” 지시와 대답이 시원시원했죠. 왕현(26) 세프는 정성스럽게 쌀을 씻기 시작했어요.


스님은 더덕을 다듬기 시작했죠. 작은 과도를 잡고, 강원도의 한 스님이 재배해서 보내준 실한 밭더덕을 손질했어요. 젊은 셰프 한 명이 스님 옆에서 일을 거들었죠.


“헤이! 캔. 비 케어풀(Be careful).” 스님이 짧은 영어로 지시하니 홍콩에서 온 셰프 캔(31)은 순간 당황했어요. “소리, 소리(Sorry, sorry).” 캔이 더덕의 머리 부분을 다듬으며 크게 잘라낸 것이었어요.


스님은 더덕 머리 부분만 조심스럽게 잘라야 한다고 설명했어요. “중간 부분은 잘 다듬어 장아찌로, 뿌리는 갈아 먹으면 돼. 머리와 껍질은 말려서 차로 마시면 좋아. 더덕은 한 부분도 버릴 것이 없지.”

△ 도라지 고추장 장아찌를 만들기 위해 조청을 고추장에 부어 맛을 더한다.



스님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음식의 대가에요. 전 세계 1억 4000만 명이 가입한 유료 동영상 서비스인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 한국 사찰음식의 대가로 소개되었죠.


그의 출연분은 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컬리너리 시네마 부문에 초청됐고,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어요. 2015년 <뉴욕타임스>는 ‘정관스님, 철학적 요리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썼죠.


전 세계 유명 셰프들이 스님을 만나러 천진암에 왔었어요. 국내 요리사들과 요리사 지망생의 발길도 끊이지 않아요. 17세에 출가해 1975년 사미니계를, 1981년 구족계를 받은 스님은 대구 홍련암, 전남 망월사, 강원 신흥사 주지를 거쳐 현재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의 주지로 있어요.


“스님은 어떤 마음으로 요리를 하시나요?” “음…, 온몸을 연 채로 음식을 하지. 온전히 나를 내려놓고 식재료와 하나가 돼야 해.” 우문(愚問)에 선답(禪答)이었어요. 자연과 하나 된다는 말을 쉽게 들었는데, 식재료와 하나가 된다니….

고정관념 파괴, 배추 넣은 카레 찬탄

△ 젊은 셰프가 만든 카레의 맛을 조절하는 정관스님



“식재료를 보면 무슨 음식을 만들지 금방 알아차려야 해. 생각이 일어나는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치 착착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요리를 조화롭고 치밀하게 해야 해. 특히 식재료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


스님은 채소의 어떤 부분도 버리지 않고 모두 식재료로 써요. 몇 년 전 대학에서 스님이 요리 강의를 할 때 학생들이 식재료의 중간 부분만 사용하고 나머지를 생각 없이 버렸었죠.


스님은 수업 도중 쓰레기통을 모두 조리 테이블 위에 쏟아놓고 학생들에게 이 재료만으로 요리를 하라고 했었어요. 당황하던 학생들이 자신이 버린 식재료만으로도 훌륭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죠. 

△ 도라지 고추장 장아찌가 입맛을 돋운다.



천진암에 들어와 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지 6개월이 지난 장승영 셰프는 궁중음식이 전문이에요. 홍콩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요리만 하고 싶어 대학 진학도 포기했죠.


궁중음식연구원에 들어갔고, 20세 때 한 요리 경진대회에서 대상도 받았다. “스님은 수행하는 자세로 요리를 해야 진정한 사찰음식이 만들어진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산으로 들어왔어요.” 젊은 셰프의 표정이 좋아요. 


“지난여름, 수박을 반 통만 먹고, 나머지는 버리려고 했어요. 싱싱함이 사라진 수박이니까요. 스님은 그 수박 반통을 팔팔 끓여 맛깔스러운 수박차로 만드셨어요.” 스님이 준 감동은 이어졌어요.


“양배추를 다듬으며 곁잎은 버렸어요. 스님은 버린 양배추 곁잎을 다시 거둬 채 썰어 절임 반찬을 만드셨어요. 너무 맛있는 양배추 절임을 만났어요.”


카레 냄새가 진동하자, 스님은 카레 맛을 보더니 얼굴을 찌푸렸어요. “맛이 왜 이리 밍밍해. 카레는 맛이 강해야 해. 강황 가루를 가져와.” 스님은 강황 가루를 듬뿍 넣더니 배추 한 포기를 가져오라고 했죠. 


그리고 배추를 듬성듬성 손으로 잘라 카레에 넣기 시작했어요. “원래 닭고기를 넣으면 카레가 맛있는데 절에서는 고기를 안 먹으니 배추를 넣는 거야.” 


젊은 셰프는 옆에서 두 손을 다소곳하게 모은 채 스님이 시원하게 젓는 국자의 움직임을 바라봤어요. “카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시네요. 카레에 배추라…. 그런데 카레 속 배추는 시원하고 씹는 식감도 좋고, 너무 맛있네요.”

같이 밥 먹으며 깨알 같은 밥상머리 교육

△ 스님의 수행은 더덕을 다듬으면서도 계속된다.



소박한 밥상이 차려졌어요. 스님이 직접 밥을 푸고, 배추 카레를 듬뿍 얹어주었죠. 스님은 식사를 하며 가지 요리를 예로 들어 사찰음식의 본질을 이야기했어요.


“어리고 풋풋한 부드러운 가지를 요리할 때는 밑간으로 소금만 쳐도 맛이 있어. 영근 지 9일이 지나 젓가락이 살짝 들어갈 정도로 단단해지면 밑간 소금에 집간장을 넣어. 


조금 더 단단해진 가지를 요리를 할 때는 밑간 소금, 집간장에 깨소금을 뿌려야 하고, 완전히 껍질이 단단해지면 여기에 참기름을 넣어. 


씨가 완전히 아문 가지를 요리할 때는 씨앗 5~6개는 남기고 요리를 해야 해. 그것이 자연과 하나 되는 자세이지.”

△ 천진암 주방



덩치가 크고 수염이 인상적인 왕현 셰프는 식사를 마치자마자 스님에게 “따뜻한 차를 준비할게요. 무슨 차를 내올까요?”라고 공손히 이야기했어요.


스님은 “알아서 줘”라고 대답했죠. 왕현 셰프의 표정이 난감했어요. 왕 셰프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요리를 전공했죠. 각국의 다양한 요리를 접해보고 싶어 세계 일주에 나서 독일의 한 식당에서 주방 일도 했어요.


왕 셰프가 고심 끝에 끓여낸 차는 석류차. 한 모금을 마신 스님이 “아직 때가 안 된 차야. 담근 지 얼마 안 됐어.” 왕 셰프의 얼굴에 낭패감이 스쳤어요.


점심 공양을 마친 스님은 도라지 고추장 장아찌를 만들었어요. 6년째 스님 곁에서 시봉을 하며 사찰음식을 배우는 박송희(56) 셰프가 장아찌 만드는 것을 도왔어요. 


박 셰프는 늦은 나이에 궁중음식을 배우기 시작했고, 큰 국제 행사에서 쿠킹 클래스를 진행한 사찰음식 전문가에요.

곳간 통째로 내주며 마음껏 쓰게

△ 정관스님이 장독대에서 된장을 꺼내담고 있다.



“스님은 젊은 셰프들에게 곳간도 통째로 내주세요. 된장, 간장과 수많은 발효음식이 가득한 그곳을, 배우러 오는 셰프들이 마음껏 활용하게 허용하시는 거죠. "


정관스님은 레시피가 없어요. 스님은 사찰음식 책도 안 쓴답니다. 그때그때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식재료 상태에 따라 변화무쌍한 사찰음식이 그의 손에서 창조되는 것이죠.


스님은 홍콩에서 온 캔에게 묵직한 돌을 구해 오라고 했어요. 용기에 담긴 도라지장아찌를 눌러 보관하기 위해서죠. 홍콩 시내 중심가에서 7년 전부터 채식 전문 식당 요리사로 일해온 캔은 일주일 전에 천진암에 스며들었어요.

△ 정관스님과 제자들이 점심 공양에 앞서 기도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송희 셰프, 정관스님, 왕현 셰프, 장승영셰프



“식물도 생명이야. 이 귀한 생명을 다루려면 존중하고, 그 성품을 이해해야 하지.” 장아찌를 담그기 위해 예쁘게 토막 내 말리는 어른 주먹만 한 무가 지는 햇살을 붙잡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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