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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된 집에 사는 사람들

조회수 2019. 11. 6. 14: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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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생활하는 공간을 ‘집’이라고 부를까요? 이리저리 생각해봤어요. 문득 한자 ‘모을 집(集)’이 떠올랐죠. 가족이 뭉쳐서 산다는 의미에서 우리 조상들이 그리 붙이지는 않았을까요? 오늘은 500년 된 한옥이 있는 곳, 양동 한옥마을의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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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전 속으로 ‘어슬렁’, 그때 그 삶이 ‘오롯이’

△양동 한옥마을은 언덕의 지형을 그대로 살려 기와집과 초가집을 지었다



한민족의 고유한 집을 한옥(韓屋)이라고 부르죠. 현대의 한옥은 서양의 아파트 같은 구조물에 밀려 관광의 대상이거나 보존 가치가 있는 공간 혹은 복고 분위기 나는 생활공간으로 구분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편적인 우리의 집이었어요.


우리 조상의 의식은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었어요. 그런 의식의 흐름이 우리의 문화이고 사상이며 정체성이에요. 그리고 의식이 응축해 구체적으로 발현된 공간이 바로 한옥이죠.

△‘널리 배우고 뜻을 굳건히 한다’는 <논어>의 글귀를 쓴 액자와 태극기를 걸어놓은 고택



한옥의 특징을 볼까요? 우선 구들과 마루예요. 구들과 마루가 공존하는 집은 전 세계에서 한옥이 유일해요. 


구들은 북쪽 추운 지방의 난방시설이에요. 그래서 지극히 폐쇄적이죠. 마루는 고온다습한 남쪽 지방의 더위를 견디기 위한 시설로 매우 개방적이에요. 


이렇듯 이질적인 구들과 마루는 오랜 시간 조금씩 부딪치고 양보를 하며 적절히 접합했어요.

한옥의 마당을 보세요. 안마당은 나무나 화초를 심지 않고 비워뒀어요. 그곳에서 아낙네들은 김장도 하고, 고추도 말리는 등 집안 살림에 필요한 노동을 했죠. 때로는 잔치하는 공간이 됐고요. 뒷마당에는 화원을 꾸렸어요. 


마당은 단순한 열린 공간이 아니었어요. 지붕이 없는 실내 공간이었어요. 여름에 안마당과 뒷마당 중간에 있는 대청마루에 앉으면 시원해요. 시원한 이유가 있어요. 그냥 열린 공간이라 바람이 불어 시원할 수도 있지만 여기엔 과학이 숨어 있어요. 


여름에 아무것도 심지 않은 안마당의 땅은 햇빛에 뜨겁게 달아올라요. 공기가 상승하죠. 그 빈 공간에 뒷마당 그늘의 시원한 공기가 자연스럽게 채워져요. 


인위적으로 공기의 흐름을 만든 거예요. 거기에 뒷산에서 부는 시원한 산바람도 가세하니 금상첨화예요.


양옥은 용도 따라, 한옥은 사용자 기준

△양동 한옥마을의 문화해설사 10명은 모두 토박이 주민들이다. 그중 최고 연장자인 이지휴 씨가 두루마기를 입고 고택을 걷고 있다



처마도 한옥의 과학이에요. 처마는 서까래가 기둥 밖으로 빠져나온 부분이에요. 처마의 깊이는 건물 규모나 채광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한옥은 대개 기둥뿌리에서 처마 끝을 연결하는 내각의 크기가 28~33도랍니다. 


이 각도는 한여름 70도 각도로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을 막아내고, 한겨울 30도 각도로 내리비추는 따뜻한 햇빛을 받아들이는 최적의 각도예요. 재미있죠?


내친김에 조금 더 한옥의 마력(魔力)에 빠져볼까요? 추녀의 양쪽 끝부분이 버선코 모양으로 살짝 휘어 오른 것을 ‘앙곡(昻曲)’이라고 해요. 


지붕을 멀리서 보면 양쪽 끝부분이 무겁게 처진 듯 착시현상이 일어나요. 안구 구조 때문이에요. 추녀 끝을 살짝 올려 지붕의 육중한 무게감을 없앤 거예요.

△양동 한옥마을 곳곳에는 식수를 공급하던 우물이 있다



안쏠림도 한옥의 특징이에요. 안쏠림은 기둥을 똑바로 세우지 않고 중심을 향해 약간 안쪽으로 기울여 세우는 기술이에요. 


시각적으로 건물이 바깥으로 벌어지게 보이는 것을 막죠. 기둥의 중간을 위아래보다 약간 굵게 만들어 안정감을 주는 배흘림 기법과 비슷해요.


귀솟음도 있어요. 바깥쪽 기둥을 안쪽 기둥보다 높게 만들어, 중앙에서 바라볼 때 멀리 있는 기둥의 양 끝이 처져 보이는 현상을 방지한 지혜랍니다.


주춧돌도 특이해요. 자연석을 전혀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주춧돌로 사용했어요. 덤벙주초죠. 불안해 보이죠? 하지만 불규칙한 돌의 표면과 목조 기둥의 바닥을 서로 맞물리게 가공해서 붙여놓아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답니다.

서양의 집은 거실·침실·식당 등의 용도로 구분된 집 공간이라면, 한옥은 안채·사랑채·행랑채처럼 사용자를 기준으로 공간을 나눈 특징이 있어요. 


신분과 남녀노소의 구분을 명확히 한 거예요.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도 구분했죠.

위인 세 사람 탄생 전설 품은 서백당

△양동 한옥마을 뒷동산



이런 한옥의 특징을 직접 보고 싶으면 한옥마을로 가보는 건 어떨까요? 경주 양동 한옥마을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한옥 집성촌이에요. 


지은 지 500년 된 한옥에 실제 후손들이 살림집으로 살아요. 신기하죠. 500년 된 목조건물이 아직도 건재한 거예요.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 두 가문이 만든 양반 마을이에요. 마을 북쪽에 위치한 설창산의 산줄기가 물(勿)자 모양으로 내려와 능선을 이루고, 능선이 만나는 세 골짜기 사이사이에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죠. 


두 가문은 서로 다른 골짜기에 자신들의 종가와 서당, 정자 건물을 두고 있어요. 신분의 차이에 따라 지형이 높은 곳에 양반 가옥이 위치하고 낮은 곳에 하인들의 주택이 양반 가옥을 에워싸듯 형성되었어요. 


마을 가옥의 대부분은 ㅁ자형이며 부엌은 ㄱ자형, 서당은 ㅡ자형이 대부분이에요.

△세운 지 500년이 지난 서백당은 아직도 살림집으로 쓰이고 있다



2010년에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 됐어요. 1992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방문하기도 했어요. 


100년 이상 된 기와집 54호와 초가집 110여 호가 마을을 이루고 향단, 관가정, 무첨당, 서백당 등 국가 민속문화재 12점, 여주 이씨 수졸당파 문중 고문서 등 도지정문화재 8점이 있어요.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을 배출한 여주 이씨, 이조판서와 대사헌, 대사간을 지낸 청백리 우재 손중돈(1463~1529) 선생을 배출한 경주 손씨가 500년 동안 경쟁과 협력을 하며 마을을 이어오고 있어요. 


1984년 국가 민속문화재 제189호로 지정되었어요.

두 가문은 경쟁적으로 자손을 공부시켰어요. 조선 500년 동안 경주부윤 관내에서 과거시험 문과 급제자가 59명인데, 양쪽 가문에서 29명이 급제했다고 해요. 


진사과에는 87명이 배출됐는데, 이 마을 출신이 35명이었어요. 이 마을에는 1592년 발생한 임진왜란 이전에 건축한 가옥이 네 채 있어요. 그중 세 채는 보물이에요.

△녹이 슨 철제 문고리가 지난 오랜 세월을 이야기한다

경주 손씨의 종택인 서백당(書百堂)에 가볼까요? 국가 중요민속문화재 제23호예요. 이 마을에 처음으로 자리 잡았다고 전해지는 양민공 손소 선생이 1454년에 지은 집이에요. 이 집터는 설창산의 지맥이 응집된 곳으로 여기서 위인 세 사람이 태어날 것이라는 전설이 있어요. 


실제로 두 위인이 이 집에서 태어났어요. 첫 번째 위인은 손소의 둘째 아들 손중돈 선생이에요. 또 손소의 딸이 친정에 와서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동방오현의 한 분으로 불리는 이언적 선생이에요. 


이 가문에서는 마지막 한 위인이 손씨 집안에서 태어나길 바라는 뜻으로 딸이 시집간 후에는 친정에 들어와 출산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서백당의 ‘서백’은 하루에 백 번 참을 인(忍)자를 생각하며 살면 행복이 오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뜻의 편액이에요. 선비의 정신적 여유와 사상의 깊이가 묻어난다.

영화 '취화선', '내 마음의 풍금' 등 무대

△영화 <취화선>에서 주인공 장승업(최민식 분)이 올라갔던 고택 지붕



마당 끝에는 커다란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8호)가 서백당의 역사와 함께해요. 그 크기와 기품에 눈길을 뗄 수가 없어요.


여강 이씨의 종가댁인 무첨당(無添堂)은 서백당과 함께 풍수지리학적으로 가장 길지인 터에 지어져 있어요. 무첨당 사랑채에 걸려 있는 편액 좌해금서(左海琴書)는 흥선대원군이 죽필(竹筆)로 쓴 글씨예요. 좌해는 영남을 의미하고, 거문고와 책은 무첨당의 풍류와 학문을 높이 평가해 하사한 편액이라고 해요.


마을 한복판에 있는 거대한 회화나무 옆에 멋들어지게 생긴 누마루 한 채가 있어요. 심수정(心水亭)이에요. 심수정은 벼슬길을 마다하고 형인 이언적을 대신해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농재 이언괄(1494~1553)을 추모해 지은 정자랍니다.

△뒷마당으로 통하는 작은 문



양동 한옥마을은 여유 있는 마음으로 양반처럼 천천히 거닐며 이리저리 보는 재미가 있어요. 실제로 아직 전통 한옥에 사는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초가집의 정취도 느낄 수 있어요. 


고택에 걸려 있는 편액의 의미를 살펴보아도 힐링이 돼요. 훌쩍 조선시대 중기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기분이에요. 영화 <취화선> <내 마음의 풍금> <혈의 누> <스캔들>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어요.

△양동 한옥마을에는 외국 관광객도 많이온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관광객들이 전통 한옥을 구경하고 있다



이 마을의 문화해설사는 10명. 모두 토박이 주민들이에요. 이 가운데 가장 고참인 이지휴(71) 씨는 젊은 시절 은행원을 하다, 사업도 하다가 귀향했어요. 


그의 집은 우향다옥(054-762-8096)으로 민박과 식당을 겸해요. 하루 묵으라고 우향다옥의 사랑채를 소개했어요. 


좁은 방이지만 정갈해요. 구들장이 뜨끈뜨끈해요. “화장실이 밖에 있어 불편하지만, 그래도 대원군이 이 마을 유람 왔을 때 10일간 머물렀던 방입니다.” 느낌이 좋아요. 

ⓒ 이길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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