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주간지 공감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의 한 요양원. 넓은 공간에 쾌적한 시설을 갖춘 이곳에 치매 환자인 하 아무개(77) 할아버지가 입원하셨어요. 친형과 둘이서 살았다는 하 할아버지는 형이 사망한 뒤 ‘치매 공공후견제도’의 도움을 받고 있죠. 

정상적인 의사 결정이 어려운 치매 어르신에게 든든한 지원군을 선임해드리는 '치매 공공후견제도', 어떤 제도인지 함께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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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연고 없는 어르신이 몇 분 계시는데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보호자가 없어 난감할 수밖에 없다.”

"하 어르신의 경우에는 후견인이 계셔서 언제든지 연락하면 받아주고 바로 뛰어와 주시니 너무 감사하다.”

- 요양원 신기산 원장

일상생활에서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의사결정을 대리하거나 권리를 대변하기 위해 시행된 ‘치매 공공후견제도’가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발 벗고 나서고 있어요. 

특히 현장 사회복지 매니저들은 “후견인을 통한 구체적인 행정 대행 업무가 이뤄져 치매 어르신의 생활 전반을 보호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죠.

10월 4일 의정부시 보건소 치매관리팀 소속의 김순주 팀장, 김만철 주무관과 함께 하 할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요양원을 찾았어요. 

할아버지는 3인 입원실의 창가 옆 침대에서 치매 공공후견인 김용배(64) 씨의 도움으로 혈압·체온 측정 등 각종 관리를 받고 있었어요. 

김 씨는 “일주일에 2번, 1시간 30분씩 할아버지 곁에 머무는데 처음에는 그냥 말벗만 해드리다가 시간이 지나자 좀 더 의미 있는 걸 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이후 책도 읽어드리고, 책도 선물하고 또 이렇게 혈압계와 체온계를 챙겨 다니면서 나름의 표도 만들어 기록하며 어르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의정부시 보건소 설명을 종합하면 할아버지는 2018년 병원에서 치매 진단을 받았어요. 

미혼으로 수십 년간 친형과 둘이서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형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충격을 받으셨죠. 술에 의존하는 나날이 계속됐어요. 

안타깝게도 할아버지를 돌봐줄 가족은 없었죠. 게다가 집 주변 노숙인들의 학대까지 이어졌어요. 노숙인들은 집 안에 난입해 구타와 갈취를 했고, 그 빈도와 강도는 점점 심해졌어요. 그러던 중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18년 8월 말, 할아버지가 갑자기 실종됐어요. 

행정복지센터에서는 경찰 신고를 통해 수소문하던 끝에 의정부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할아버지를 발견했죠. 크게 다친 할아버지는 누워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정신적인 충격이 커 대화도 거의 불가능했답니다. 

치매 진단까지 받은 할아버지가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위험에 노출될 게 뻔했어요.

행정복지센터는 곧바로 치매 관련 복지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했어요. 이 과정에서 몇십 년간 연락이 끊긴 하 할아버지의 친누나(84)도 찾을 수 있었죠. 하지만 고령인 누나가 할아버지를 보호하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어요.

이에 행정복지센터는 치매안심센터와 연계해 할아버지를 치매 공공후견제도의 피후견인 대상자로 분류하고 긴급 지원을 했어요. 

피후견인 대상은 만 60세 이상, 치매 진단을 받은 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및 차상위자 등 저소득자, 권리를 대변해줄 가족이 없는 경우, 후견인의 도움을 원하거나 의사결정 지원이 필요한 자인 경우 지원받을 수 있어요.

또 후견인으로 선정되면 치매 어르신에게 적합한 사회복지서비스 신청, 기초생활 수급비 등 재산 관리,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안전체계 구축 등의 업무를 맡게 돼요. 

2018년 9월 20일 시행 이후 1년 동안 공공후견인의 도움을 받는 환자는 24명, 활동 중인 후견인은 17명이에요.

이날 요양원에서 만난 후견인 김 씨는 교사 퇴직 공무원으로 현재 하 할아버지를 포함해 모두 3명의 치매 환자를 돌보고 있어요. 

10대 1 이상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여러 명의 전문가에게 치매 노인 관리를 위한 오프라인 연수와 온라인 수업 등 철저한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됐죠. 

김 씨는 첫 상견례 당시 요양병원에 입원한 하 할아버지의 상태를 살핀 뒤 노인장기요양보험(이하 요양보험) 등급에서 재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요양보험은 장기요양등급에 따라 환자 본인부담금 비율이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김 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하 어르신 앞으로 나오는 수급비는 한 달에 35만 원 정도에요. 한 달 요양병원 입원비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죠. 사정이 좋지 않은 친누님께서 본인 돈을 보태 매달 납부하시는 걸 보고 마음이 쓰였다”고 말했어요.

이후 김 씨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니며 진단서를 발급받고, 건강보험공단과 시청, 요양원 등을 백방으로 뛰어다녔어요. 관련 공무원, 관계자들과도 계속 통화하며 할아버지의 사정을 설명했어요. 

결국 김 씨의 노력으로 할아버지의 요양보험 등급은 환자 본인부담금 없이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3등급으로 상향 조정됐어요. 

김 씨는 요양병원에서 요양원으로 할아버지를 전원하는 과정에서도 친누나와 요양병원장, 간호사, 병원 직원들과 상담으로 설득하는 역할을 자처했어요. 또 침대와 틀니, 지팡이 등 의료기구 복지지원 등에서 할아버지가 미처 받지 못한 혜택을 찾아 대신 신청하는 수고로움도 마다치 않았어요.

그 결과 올해 7월 하순 지금의 요양원으로 옮긴 할아버지는 식사도 잘하고, 지팡이를 짚고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됐어요. 

신기산 원장은 “하 어르신이 이곳에 처음 오셨을 때만 해도 말씀을 전혀 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건강 상태를 즉각 알 수 없어 늘 불안했다”며 “이제 요양원에서 진행하는 실버 체조, 웃음 치료, 한글이나 그림을 통한 인지 수업, 실내운동 등 모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셔요. 

특히 노래수업 시간에는 마이크를 안 놓으려고 할 만큼 즐거워하시고 이제는 다른 환자분들께 도움을 줄 정도다”고 설명했어요.

김만철 주무관은 “치매 공공후견제도는 어르신들이 매우 좋아하신다. 한번은 피후견인이 입원한 병실 옆 환자분이 ‘가족도 이렇게까지 오지 않죠. 이렇게 열심히 돌봐주는 후견인이 어디 있냐’며 부러워할 정도였어요. 이 사업이 계속 진행돼야 할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어요.

김순주 팀장은 “모든 후견인이 치매 어르신을 잘 보살펴서 생명을 연장하고 또 삶의 질을 높여드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며 “다만 응급한 상황이면 갑자기 병원에도 모셔야 하고, 돌아가시면 장례도 치러야 하는 등 나열하기 힘들 만큼 많은 일을 해주고 계세요. 그런 만큼 후견인들의 처우도 더욱 개선되면 좋겠다”고 밝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