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가 허수아비를 우습게 보는 이유

조회수 2019. 10. 2. 11: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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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강화도로 휴가를 다녀왔어요.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 또는 네 번째로 큰 섬이죠. 제주도와 거제도가 첫 번째와 두 번째로 큰 섬인 것은 명확한데 셋째, 넷째로 큰 섬은 강화도와 남해도를 두고 의견이 분분해요. 자세한 내용 살펴볼까요?


위클리 공감 홈페이지 원문 보러 가기

참새가 허수아비를 우습게 보는 까닭

△덕수궁에서 노닐고 있는 참새 한 마리│한겨레

섬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리는 것 같아요. 어쨌든 강화도는 큰 섬이에요. 고려 때 몽골제국이 침략했을 때는 39년간이나 수도 역할을 한 곳이죠. 


강화도에서는 빗살무늬토기가 많이 발견되었어요. 삼엽충이 나오면 고생대 지층이고, 암모니아는 중생대의 표준화석이죠. 


마찬가지로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의 상징이에요. 강화도는 농사의 역사가 오래된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빗살무늬토기가 나왔다는 것은 농사를 지었다는 뜻이거든요. 지금도 넓은 평야를 볼 수 있는 곳이랍니다.  


요즘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20~30년 전만 해도 벼농사의 골칫거리는 피와 메뚜기 그리고 참새였어요. 


1990년대의 한여름 논에서는 피사리를 하는 농부를 많이 볼 수 있었죠. 벼와 함께 자라는 피를 뽑아내는 작업을 피사리라고 해요. 


요즘은 일손이 부족해서인지 피사리를 하지 않고 그냥 놔두죠. 그렇다고 피를 따로 수확해서 피죽이라도 끓여 먹으려는 것은 아니고요.

메뚜기는 어떤가요? 제가 어릴 적만 해도 메뚜기 잡으러 논에 많이 갔어요. 


벼를 갉아먹는 메뚜기를 잡는 일은 신나는 일이었죠. 간혹 메뚜기에 정신이 팔려서 벼를 짓밟아놓아 논 주인에게 혼쭐나는 경우도 있지만 메뚜기를 잡으면 대부분 칭찬을 받았어요. 그만큼 피해가 컸기 때문이죠. 


오죽하면 ‘메뚜기도 한철’이라는 역설적인 속담이 있겠어요. 실제로 수명이 6개월에 그치기는 하지만 메뚜기 피해도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위로의 말일 거예요.


하지만 이젠 메뚜기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어요. 해충과 병충해를 예방하려고 농약을 살포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히려 ‘우리 동네 논에는 메뚜기가 많아요’라는 문구를 내걸고 축제를 열기도 해요. 그만큼 친환경 쌀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쌀 포대에 메뚜기를 그려 넣기도 한답니다.

옛이야기에 제비는 좋게 묘사돼요. 제비는 반가운 여름 철새예요. 사실 제비도 크게 보면 참새죠. 참새목 제빗과에 속하니까요. 


농부들이 제비를 반긴 데는 이유가 있어요. 제비는 식물의 이파리나 곡물 대신 곤충을 잡아먹는 식충 조류이기 때문이에요.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속담이 있어요. 맞는 말이죠. 습도가 높아지면 몸이 무거워진 곤충들이 낮게 날거든요. 습한 날에는 제비도 곤충을 추격하느라 덩달아 낮게 나는 거예요. 


요즘은 제비 보기가 어려워요. 농약이 제비 몸 안에 쌓이면서 제비 알이 얇아져 부화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죠. 


문제는 참새예요. 참새도 여름에는 해충을 잡아먹어요. 그런데 참새는 텃새니, 사시사철 우리나라에 살죠. 


벌레가 적어지고 곡물이 무르익을 때가 되면 굳이 잡기 힘든 벌레 대신 잘 여문 곡물을 먹어요.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농업박물관 야외농원에서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허수아비를 선보이고 있다.│한겨레

참새 한 마리가 가을에 먹는 곡식은 무려 125g이나 돼요. 어떻게든 참새를 내쫓는 게 농촌에서는 큰일이었죠. 


참새 쫓느라 숙제를 못 하거나 아예 학교에 결석하는 친구들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아니! 그깟 참새를 쫓으려고 애를 학교에 안 보낸단 말이야! 그 동네는 허수아비도 없나!”라며 분개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요즘이야 큰비에 벼가 쓰러져도 다시 묶어 일으켜 세우는 일도 드물지만 당시에는 ‘그깟’ 참새가 아니었어요. 


벼농사에 온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허수아비 따위에 참새가 속을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요. 


허수아비에 습관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죠.

습관화는 모든 동물에게 일어나는 일이에요. 달팽이 실험이 잘 보여주죠. 


달팽이가 유리판 위를 기어갈 때 판을 두드리면 달팽이는 얼른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 몸을 숨겨요. 


겁이 난 달팽이는 한참 뒤에야 몸을 다시 드러내죠. 이때 다시 판을 두드리면 달팽이는 또 다시 집으로 들어가요. 하지만 이번에는 몸을 드러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처음보다는 짧죠.


같은 과정이 반복될수록 움츠린 달팽이가 다시 움직일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짧아져요. 


결국 나중에는 유리판을 아무리 두드려도 달팽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요. 유리판을 두드리는 자극에 달팽이가 익숙해졌기 때문이죠. 


달팽이는 유리판을 두드리는 자극 후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학습한 것이죠.


참새가 허수아비 따위는 무시하고 마음 편하게 벼를 쪼아 먹는 이치도 같아요. 


처음에는 허수아비가 두려웠지만, 허수아비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금방 학습했기 때문이죠.


이번 여름휴가 때 보니까 강화도 논에는 맹금류 연을 두었더군요. 멀리서 보면 정말로 솔개나 황조롱이가 논 위를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처음엔 저도 착각할 정도로 감쪽같았어요. 그렇다면 강화도 농민들의 작전은 성공할까요? 이미 결과가 나온 실험이 있어요.

인간 호모사피엔스가 배워야 할 참새

참새목 되샛과에 속하는 푸른머리되새에게 살아 있는 금눈쇠올빼미를 보여주었더니 달팽이 같은 반응을 보였어요.


맨 처음 올빼미를 발견한 되새는 동료들에게 경고신호를 보냈지요. 


하지만 올빼미가 아무런 공격을 하지 않자 되새들이 내는 경고음이 점차 줄었고 열흘이 지나자 아예 올빼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학습을 통해 올빼미가 습관이 된 것이죠. 


아마 강화도 농민들의 새로운 작전도 별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참새들이 얼마나 똑똑한데요. 


습관화는 동물에게 엄청난 이점이 있어요. 불필요한 걱정과 행동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덩달아 에너지 소비도 줄어들죠. 


쓸데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면서 삶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바로 습관이에요. 이게 습관의 본질이지요. 그런데요 우리 인간들은 오히려 삶에 방해가 되는 습관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쓸데없이 걱정하고 쓸데없이 참견하고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습관 말이에요. 걱정하고 참견하고 낭비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죠. 


인간 호모사피엔스가 참새 파세르 몬타누스(Passer Montanus)에게 배울 게 다 있네요.

ⓒ 이정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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