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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텔'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

조회수 2019. 9. 6. 11:2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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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누구도 들일 수 없다. 화분도 키울 수 없고, 개와 고양이도 키울 수 없다. 이 방을 그대로 떼어내면 관짝이 된다. 그저 비감스럽기만 하다. 여길 벗어나고 싶은데 꼼짝없이 붙들리고 말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다. 여기서 생활이 이어진다면 어느 순간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 미쳐버릴지 모를 심리적 상태를 사진 속에서 지그시 눌러주는 것이 심규동 사진의 바랜 듯한 색감이다.'
- 신현림 시인

사진 전문 출판사 ‘눈빛사진가선’ 시리즈에 <고시텔>로 데뷔한 심규동(31) 작가, 그는 1년 가까이 머무른 고시텔을 사진으로 찍었어요. 


흙수저라고 비관하는 청춘들의 생존 현장이자 오갈 데 없는 중장년층의 집인 고시텔, 어쩌면 감추고 싶었을지 모를 공간과 인물 사진이 독자의 눈길을 끌었죠. 심규동 작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자세한 내용 살펴보시죠!


위클리 공감 홈페이지 원문 보러 가기

버려져 있던 고향 집 2층에 스튜디오 마련

△7월 24일 강릉시 교동 자택 2층에서 만난 심규동 작가│박유리 기자
그간의 고시텔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곳에 10년 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내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했다. 결혼을 안 할 것이고, 그럼 자녀도 없을 것이고,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인생,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내 미래였다. (중략) 사진에 나의 주관을 최대한 빼고 싶어서 구도는 부감으로 통일하고 촬영 과정을 모두 동일하게 하려고 했다. 본인의 방에 카메라 설치 과정을 지켜보도록 했고, 타이머를 맞춘 후 나는 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 그러자 모델들은 개성 있는 포즈를 취했다. 필름 한 롤에 10컷을 찍을 수 있었고 마지막 컷에는 카메라를 보라고 요구했다.
- 심규동 사진집 <고시텔>

그곳에서 사진을 찍던 심 작가는 고시텔 사람들 간에 시비가 붙어 경찰이 출동했을 때 현실감을 느꼈죠. 비슷한 나이의 경찰관이 ‘그저 고시텔에 사는 사회 부적응자에 범죄 위험인물’로 자신을 경멸하듯 바라본 순간이었어요. 


“그곳 사람들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이 처참히 무너졌다”고 작가는 고백해요. 심 작가는 2017년 5월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전시회를 열고 수많은 신문과 방송에 노출돼 화제를 모았답니다.


그가 최근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공모한 지역생활문화 기반 청년창업자로 선정된 심 작가는 필름카메라로 찍는 인물 사진 스튜디오를 열었어요. 


그가 서울로 떠나 고시텔을 전전하는 동안 골동품이 가득한 채 버려져 있던 주택 2층을 스튜디오로 만든 것이죠. 가족들과 어린 시절부터 살던 주택의 방과 방 사이를 뚫고, 표면이 노출된 거친 콘크리트를 심 작가가 페인트로 칠했어요. 


버려진 자재를 주워 바닥에 깔았죠. 심 작가가 돌아오면서 그가 읽은 책들이 스튜디오 중앙에 놓인 테이블에 쌓여있었답니다. 필름카메라로 찍은 인물 사진들도 벽에 걸렸죠. 왜 하필 필름카메라 사진관일까요? 


과거 심 작가가 찍은 고시텔 사진이 모두 디지털카메라가 아닌 필름카메라로 찍은 작품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아날로그가 부활한다는 말을 하지만, 그가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과정에는 경제적 이유가 작용했어요. 심 작가를 7월 24일 강원도 강릉시 교동에 자리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답니다.

△심규동 작가의 인물 사진 스튜디오│심규동

-다큐 사진을 찍다가 어떻게 인물 사진 스튜디오를 열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큐 사진을 찍고 나서 고민이 많더라고요. 꼭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되기 위해 사진을 찍은 게 아니라 삶,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제 사진을 찍고 싶었던 거였어요. 


사진전을 열고 책을 내고 작가로 불리게 됐어요. 사람들이 다음 작업을 기대하게 되었고요. ‘나는 이걸 왜 하고 있지?’ 그런 고민을 엄청 했던 것 같아요. 2년 정도 제가 고시텔에서 했던 작업이 서울과 다른 지역에서 계속 돌았어요. 


기사나 영상으로 나오고, 인터뷰도 하게 됐고요. 고시텔 작업에 대해 책임지는 시간을 가졌어요. 여자 친구가 갑자기 생기면서 정신을 차리고 돈을 벌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다 ‘내가 살던 집에 이런 공간이 있었지’ 발견하게 되고 스튜디오를 만들 생각을 했어요. (고향인) 강릉에 자리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에 한 일이 강릉아트센터에서 진행한 청년 아티스트 공연에 참여한 거였어요. 예술가들 얼굴 사진을 찍는 일이었죠.

-필름카메라로 작품을 찍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쓰는 게 고시원에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돈이 많으면 원룸 보증금 1000만 원을 내겠지만 보증금이 없으니까 비싼 월세를 내고 고시원에 사는 거잖아요. 


제 사진은 고시텔 공간과 그곳에 누운 사람이 전체적으로 나오도록 위에서 찍은 것인데요. 이 정도 화각이 나오려면 4000만 원이 넘는 디지털카메라, 렌즈를 써야 해요. 이보다 저렴한 소형 디지털카메라로 찍으면 사람이 훨씬 작게 나오죠.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이 훨씬 저렴한 중형 필름카메라였어요. 찍을 때마다 필름값이 컷당 2000원 정도 나와요. 필름 사고 밥 안 먹고. 필름값으로 돈이 더 나갔던 것 같아요. 디지털카메라나 필름카메라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집중도가 달라요. 


디지털로 찍으면 많이 찍을 수 있고 보정도 용이하니까 집중도가 덜하죠. 필름은 돈이 나가고 보정도 어려우니까 진짜 몰입하게 돼요. 대신 디지털로 찍으면 생동감은 더 살아 있을 수 있습니다.


-사진 한 장마다 작가의 몰입감이 느껴집니다. 

=디지털카메라는 잘 나오고 찍는 순간 바로 확인할 수 있잖아요. 필름카메라는 여러 제약이 있는 데다 직관적이에요. 그 제약에 맞게끔 다루게 되는 거죠. 


필름값 때문에 집중해서 찍었는데 현상했더니 망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당시 사진 찍을 때의 빛과 상황, 내가 조정했던 것을 기억하게 되더라고요.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니까 사진이 늘었어요.

“필름카메라 디카 비해 제약 많지만 그만큼 몰입”

△작가가 찍은 배우 사진과 2017년 발간한 <고시텔>│심규동

-지역생활문화 기반 청년창업자로 선정됐는데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의 공모 과정은 어땠어요?

=공모해서 붙었을 때 좋았어요. 사진 스튜디오로 공모를 한 청년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1500만 원 예산이 나오면 절반은 자산 취득을 할 수 있어요. 이 금액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사려고요. 


사업자 등록을 아직 안 내서 곧 할 예정이에요. 명함도 만들어놨어요. 사실 이 공간에서 뭘 하려면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안 되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모아야 하는 건가?’ 고민했어요. 


이 정도의 지원금이면 큰 금액으로 느껴지고 바로 스타트업을 할 수 있죠.  지원금을 받기 전 강릉 재단에서 청년 예술가들에게 주는 상이 있는데 상금이 500만 원이거든요. 그 정도 받으면 (스튜디오를 차리고) 누구를 불러서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상을 못 받았어요. 


하지만 공모를 통해 1500만 원 지원금을 받으면서 카메라를 살 수 있게 됐죠. 지금도 필름카메라로 찍는데 디지털카메라는 없거든요. 

인물 사진 스튜디오인데 특히 배우 프로필을 전문적으로 하려고요. 배우들의 경우 영상도 찍어야 하니까 그때는 디지털카메라가 필요하죠. 스튜디오에 크게 간판도 세우지 않을 거고 붐비는 걸 원하지도 않고요.

-필름카메라를 쓰는 스튜디오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필름의 특성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책도 나왔고 뉴트로가 유행하기도 하잖아요. 필름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요. 필름을 찾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예전에 찍었던 추억이 될 수 있고 필름이란 물성이 남죠.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어요. 조금은 흐릿한, 뭐라고 해야 할까요? 요즘은 모든 것이 디지털화돼 있어서 ‘0 아니면 1’ 수식으로 끝나지만 필름의 입자에는 0과 1 사이에 수많은 것이 있음을 보여주잖아요. 


<아날로그의 반격> 저자 데이비드 색스는 아날로그가 다시 유행하는 이유에 대해 “만져지는 물건과 감각적인 경험이 점점 사라져가는 영역에서 손으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 소유하는 기쁨”이라고 설명해요.


레코드판이 꽂힌 서가에서 앨범을 골라 디자인을 꼼꼼히 들여다보다가 턴테이블의 바늘을 정성스레 내려놓는 행위, 레코드판의 표면을 긁는 듯한 음악 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오기 직전 1초 동안의 침묵 같은 경험이 즐거움을 선사하죠. 


경제적인 이유로 필름카메라 사진을 찍었던 작가는 제한이 많은 장비 덕에 집중력과 실력을 얻었어요.

“찍히는 인물과 일정한 거리 유지해야”

△심규동 작가의 인물 사진 스튜디오│심규동

-앞으로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을 예정인가요?

=그런 마음도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우선은 내려놓고 있어요. 얼마 전에 사진 커뮤니티에 노숙자 사진 찍고 싶다는 글이 게시되니까 ‘빈곤 포르노’라는 말들도 하더라고요. 


과거 제가 한 작업에 대해 지금도 잘했다는 생각은 해요. 그런데 이런 작품들에서 오는 문제점도 있잖아요. 빈곤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작가에게 인물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요?

=인물 사진이 정말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흥미가 있죠. 내가 바라보는 사람이 ‘그 사람’ 맞을까? 그렇게 보면 정말 어려워요. 친한 친구 둘이 이 공간에 들어온다고 가정하면, 친한 친구와 형성돼 있는 그 사람의 모습만 보일 수 있죠. 


그런 측면에서 웨딩 사진은 찍기 쉬워요. 행복한 모습, 신부로서의 모습, 신랑은 신랑의 입장을 찍으면 되니까요. 개인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한 나의 판단이 들어가요. 

예전에 고시텔 작업하면서 공간과 사람을 같이 찍었는데요. 한 사람의 물건과 옷들, 공간이 그 사람을 대변해준다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색이 주는 편견을 빼고 싶어서 얼굴을 흑백으로 찍기도 하고 무표정하고 마네킹 같은 모습으로 사진에 담기도 했죠. (인물과) 저와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려고도 하죠. 이 사람과 너무 친하면, 제가 찍는 것이기에 더 친한 모습이 찍히거든요.


제 또래 인스타 작가들은 색감이 나고 그런 사진들을 찍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사진에 반발심이 있어요. 건물에도 무표정이 있거든요.


과거 고시텔 작업에서 위에서 찍은 사진만 모아 보면 앵글이 다 똑같아서 무표정한 사진이기도 해요. 비어 있는 의자, 텅 빈 방, 담기지 않은 빈 그릇, 비어 있는 사물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죠.


누군가 앉았다 떠났을지 모를 의자, 어떤 이가 문을 열고 들어올 방, 밤늦게 퇴근해 밥솥에서 한 주걱 밥을 떠서 담을 그릇처럼요. 무표정한 인간의 얼굴에는 지금 이 순간이 아닌, 그가 살아온 시간이 흘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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