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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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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에 인간의 얼굴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 넣는 사람이 있어요. 바로 김진식 대목수인데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장승의 수명은 10년

눈이 많이 내리면 깊은 산속의 오래된 나무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죠. 자연의 이치인데요. 사람이 나이가 들어 제대로 걷지 못하고, 먹지 못하면 자리에 눕듯이 고목도 때가 되면 쓰러져요. 봄이 되면 목수들은 자연에 순응해 쓰러진 나무를 거두러 산에 오르죠. 


쓰러진 나무를 잘 만나는 것도 인연이에요. 장승을 만들기 위해 목수들은 좋은 인연이 될 나무를 찾는데요. 장승은 나무인데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데요. 생명이 있을 때도 땅에 뿌리를 박고 움직이지 못하는 운명이었어요. 


죽어서도 인간의 얼굴을 하지만 역시 움직이지 못한 채 땅에 박혀 있죠. 땅에 박힌 나무는 밑동부터 썩는데요. 그래서 장승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쓰러져요. 10년을 못 넘기는데요. 쓰러진 장승을 대신할 장승을 다시 만들어 그 자리에 심죠. 장승은 그렇게 윤회해요. 


쓰러지고, 다시 세워지고, 쓰러지고, 다시 세워지고…. 우리 조상은 장승을 살아 있는 인간 취급했어요. 심지어 합방을 시켰는데요. 완성된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한 쌍은 한동안 포개져요. 그리고 헤어져 각자 자리를 잡고 땅에 박힌답니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이에 있는 고개는 죽령(竹嶺)이에요. 높이는 689m이죠. 예부터 영남 지방과 호서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였는데요. 


옛날 어느 도승이 이 고개가 너무 힘들어서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했죠. 그 죽령의 고개에 장승이 여러 개 서 있어요. 모두 한 사람이 만든 장승인데요. 바로 김진식(51) 대목수죠.


1991년부터 이 고개에 장승을 세웠어요. 장승이 쓰러지면 새 장승을 세웠죠. 장승의 표정은 다양해요. 가슴에 새긴 글자도 흔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아닌데요. 

조소과 학생, 대목수가 되다

‘花香千里, 人德萬里’(화향천리 인덕만리: 꽃향기는 천 리를 가고, 인간의 덕은 만 리를 간다)라는 한자 시구를 새긴 장승도 있어요. 그는 죽령장승보존협회 회장이에요. 손이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될 만큼 큼직하죠. 길게 자란 머리는 뒤로 묶었는데요. 


턱수염도 길게 자랐고, 콧수염도 자리 잡았답니다. 입은 옷은 어떤가요? 흰 광목으로 만든 옷은 마치 조선시대에서 툭 튀어나온 모습이죠. 말 그대로 조선시대 목수에요. 그가 죽령에 세워진 장승들 사이에 섰어요. 장승이 그이고, 그가 바로 장승같은데요. 


장승은 조선시대 역참제도에 의해 국가에서 10리와 30리마다 만들어 세우고 관리하던 이정표였죠. 장승의 가슴에는 자(自)~로 시작해서 현 위치와 인근 부락까지의 이정과 거리가 표현되어 있었는데요.

 

장승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부터 있어왔던 ‘국장생, 황장생’ 등 사찰의 경계를 표시한 석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여요. '장승백이’란 이름도 이정표 장승이 서 있었던 자리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장승은 1894년 갑오개혁 때 역참제도를 폐지하고 근대적 우편제도가 도입되면서 사라졌답니다. 김 대목수는 흔히 마을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장승은 사실 ‘벅수’라고 설명해요.


그는 대학 시절부터 장승을 깎았어요. 죽은 나무에 인간의 얼굴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은 셈이죠. 길거리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채 외롭게 서 있는 장승은 지역 간의 경계를 표시했고, 이정표 역할을 했어요. 마을의 수호신 역할도 했는데요.


그는 장승에 관한 논문으로 안동대 민속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박사과정에 있어요. 그리고 대목수로 장승도 직접 만드니 장승에 관한 한 전문가인 셈이죠.

민족의 얼굴을 담다

김 대목수는 오랫동안 전국의 장승을 찾아다녔고 장승을 만드는 과정을 살폈어요. 그가 7년 전 직접 본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검복리의 장승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보시죠. 이 마을에서는 2년마다 장승을 세우는데 우환이나 부정을 타면 건너뛰는데요. 

장승을 만드는 이는 계곡물에 몸을 정결하게 씻었죠. 그리고 장승을 만들 나무를 찾아요. 밑동 지름이 40㎝가 넘는 층층나무가 선택됐는데요. 마른 명태 한 마리와 막걸리 한 잔을 올리고 이장이 대표로 3번 절을 해요. 명태의 머리를 떼어서 나무 밑에 두고 전기톱으로 나무를 베었어요. 

잘린 나무는 길이를 맞춰 두 덩어리로 나뉘었는데요. 밑동은 천하대장군이 되고, 나머지는 지하여장군이 되죠. 장정 7~8명이 나무를 산 밑 개울가로 옮겨 껍질을 벗겨요. 본격적인 장승 만들기 작업이 시작되니 마을 사람 20여 명이 모였는데요. 

여자들은 숯불을 피워 삼겹살을 굽고 생태찌개를 끓이고 술과 안주를 준비했죠. 마을 사람들은 술을 마셔가며 작업을 했어요. 낫과 끌, 자귀를 이용해 껍질을 모두 벗긴 뒤 톱과 도끼로 몸체를 깎는데요. 경험 많은 이가 얼굴을 만들죠. 

오래돼 썩어 넘어진 장승을 옆에 뉘어놓고 그대로 본뜨는데요. 눈을 그릴 때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둥그렇게 말아 헌 장승 눈에 대고 본을 뜬답니다. 장승 머리에 붙일 사모도 만들고, 귀도 따로 만들죠. 전기 대패로 명문을 쓸 가슴 부분도 말끔히 다듬고 얼굴은 그라인더로 곱게 가는데요. 

유성 매직펜으로 눈도 그린 뒤 두 장승을 겹쳐놓고 합방시켰답니다. 그리고 천하대장군은 길 어귀에, 지하여장군은 300여m 떨어진 숲길에 세웠어요.  장승 세우는 일을 마치자 장승제를 지내는데요. 이 마을 제사의 특징은 향을 피우지도, 축문을 읽지도 않는 것이죠. 

생두부를 8각형으로 모를 내서 올려요. 제사가 끝나면 소지를 올리는데요. 첫 번째는 동네 소지, 두 번째는 이장 소지, 세 번째는 제주 소지이고 연장자 순으로 올린답니다. 제주가 소지에 불을 붙이면 “올해 장사 잘되고, 건강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소원을 빌어요. 이장은 불붙은 소지를 하늘 높이 올리죠.
영국에 우뚝 선 우리 장승

김 대목수는 임진왜란 때 왜병이 조선을 쉽게 함락한 이유 중 하나로 장승을 꼽았어요. “장승의 가슴에는 애초 ‘천하대장군’의 글자가 새겨진 것이 아니라 이정표가 새겨져 있었어요. 


근처 마을까지 거리가 정확히 새겨져 조선에 들어온 왜군들은 장승의 이정표를 보고 쉽게 진군할 수 있었지요.” 장승의 표정에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짙은 눈썹에 눈을 부라려요. 벌린 입 사이로 날카로운 이빨이 위협적이죠. 머리에는 저승사자가 쓰는 모자를 쓴답니다.


“임진왜란 후에는 백성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전염병이었어요. 특히 마마(천연두)가 공포의 대상이었지요. 그래서 무서운 얼굴을 한 장승이 전국에 자리 잡았어요.” 그는 어릴 때부터 미술 시간이 즐거웠고 찰흙으로 인형을 만드는 것이 좋았어요. 


영남대 조소과에 입학했고, 대학 졸업 뒤 풍기중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하다 3년 만에 그만두고, 대목수 일을 배우기 시작했죠. 우연히 만난 서경원 대목수에게 목수 일을 가르쳐달라고 간청해 본격적인 대목수의 길을 가기 시작했어요.


그의 삶에 장승이 자리 잡은 것은 대학 2학년 때인데요. 당시 독재정권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대학가에 장승 세우기가 유행처럼 번졌어요. 운동권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영남대 교정에 세울 장승을 만드는 책임자가 됐죠. 


도서관에 가서 장승에 대한 자료를 모아 시계탑 앞에 ‘민족통일대장군’ ‘민주해방여장군’ 한 쌍의 장승을 만들어 설치했어요. 


나중에 대목수가 되고 죽령에 장승을 세워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장승 연구에 들어갔는데요. 올해 3월에는 영국의 셰필드대학 교내에 장승을 만들어 세우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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