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간판이 바뀐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비밀

조회수 2019. 9. 2. 10: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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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만남의광장 휴게소 내 즉석간식 코너, 오후 8시가 되자 ‘청년희망 나이트카페’(이하 나이트카페)라는 간판에 불이 켜지는데요. 간판 불이 켜지면서 가게 주인과 메뉴도 바뀌어요. 


'규제 샌드박스'제도를 통해 '공유주방'이라는 사업모델이 가능해졌기 때문인데요. 일정 조건 아래 기존 규제를 면제 혹은 유예해주는 제도를 '규제 샌드박스'고 한답니다. 자세한 내용 살펴볼까요? 


위클리 공감 홈페이지 원문 보러 가기

청년희망 나이트카페

서울 만남의광장 휴게소 내 즉석간식 코너. 오후 8시가 되자 나이트카페 간판 불이 켜졌다.│한국도로공사

6월 20일 오픈한 나이트카페의 운영자는 변혜영(33) 씨인데요. 임상병리사로 일했던 그는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됐어요. 재취업은 녹록지 않았죠. 낮엔 네 살배기 아들을 돌봐야 해서 저녁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일자리라도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카페 등 창업도 고려했으나 초기 투자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는 게 부담이었어요. 그러던 중 한국도로공사의 ‘청년희망 Night-cafe 청년창업매장 창업자 공모’(이하 공모)를 보게 됐어요. 


고속도로 휴게소의 매장 공간 및 조리설비 등을 주간시간대 사업자와 공유해 야간시간대에 매장을 운영할 청년 창업자를 뽑는 내용이었는데요. 공모에 선정돼 운영하게 된 곳이 바로 나이트카페에요. 


4년 만에 다시 일자리를 찾은 변 씨는 “요즘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어요. 낮에는 아이를 돌보고, 저녁엔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를 맡긴 뒤 일터로 향하죠. 매장 운영 시간은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인데요. 

제1호 공유주방 청년창업가로 선정된 변혜영(왼쪽) 씨와 엄태훈 씨

드립 커피, 소떡소떡(소시지와 떡을 차례로 꽂아 만든 꼬치), 핫도그 등을 판매해요. 문을 연 지 이제 한 달여 남짓, 보통 오후 7시 30분경 휴게소에 도착해 주간시간대(오전 8시~오후 8시) 운영업체 직원에게 인수인계 등 설명을 듣고, 오픈 준비를 하느라 바쁜 요즘이랍니다.


이 매장 메뉴판 위에는 ‘규제특례 공유주방 1호점’이라고 적힌 특별한 문패가 걸려 있어요. 한 공간을 두 사업자가 나눠 쓰는 ‘공유주방’은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가능해진 사업 모델이죠.


규제 샌드박스란 기존 시장에는 없었던 창의적·혁신적인 새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기존 규제에 발목 잡혀 지체되거나 무산되는 일이 없도록, 일정 조건 아래 기존 규제를 면제 혹은 유예해주는 제도에요.


‘샌드박스’라는 명칭은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게 만든 박스 형태의 모래놀이터(sandbox)에서 유래했어요. 

“경력 단절 뒤 다시 일자리 찾아 행복”

서울 만남의광장 휴게소 내 나이트카페를 운영하는 청년창업가 변혜영(왼쪽) 씨가 주간시간대 운영업체 직원에게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한국도로공사

공유주방은 주방 하나를 정해진 시간만큼 임대하거나, 대형 주방을 여러 사용자가 동시에 나눠 쓰는 것을 뜻하는데요. 임대료나 인테리어 비용 등 초기 투자비용 부담이 적어 창업의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죠. 


자금이 부족한 청년들에게 창업 도전의 기회를 주는 등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장점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현행 식품위생법에 따라 1개 주방에 2인 이상의 사업자가 영업을 하는 건 불법이죠. 


1개 주방을 여러 사업자가 함께 사용하면 교차오염 등 위생관리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인데요. 미국(시카고 등), 인도 등에서 공유주방과 관련한 다양한 사업 사례가 나오고 있는 것과는 다른 상황이죠.

  

4월 29일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의 일환으로 규제 적용 없이 서비스의 실험을 허용하는 실증특례 대상에 한국도로공사가 신청한 공유주방을 포함하기로 했어요. 


이로써 2년 동안 2곳의 고속도로 휴게소 매장을 공유주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는데요. 그중 한 곳이 서울 만남의광장 휴게소에 있는 변 씨의 나이트카페에요. 


변 씨는 무엇보다 초기 투자비용에 대한 부담을 덜고 창업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손꼽았어요. 통상 초기 투자비용 4600만 원이 필요했지만, 도로공사가 임대료를 면제해줘서 오로지 식자재 비용만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답니다.

나이트카페의 메뉴판│ 문화체육관광부 스토리랩 기자 임경연

기존 영업자의 영업관리 노하우 및 식품안전 기술을 습득하는 등 일종의 ‘테스트베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공유주방의 장점이에요. 


변 씨는 “낮에 근무하는 직원분들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셔서 배워나가며 일하고 있다”고 고마워했어요. 나이트카페 덕에 저녁 시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커피나 간식거리를 찾던 운전자들도 반색하고 있죠. 


여름 휴가철 고속도로 이용자가 늘면서 매장을 찾는 이들도 그만큼 늘어나는 분위기인데요. 변 씨는 “가장 반응이 좋은 메뉴는 ‘소떡소떡’”이라며 “문패를 보고 공유주방에 대해 물어보는 손님들께 설명해드리면, ‘그런 좋은 정책이 있었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어요.

  

우리나라 최초로 휴게소 내 공유주방 매장을 운영하게 된 변 씨에게 이번 기회는 특히 더 소중해요. 변 씨는 “그동안 사회생활에 정말로 복귀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며 “돈을 번다는 사실도 좋지만 다시 사회로 나와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존감도 크게 향상되는 것 같다”고 말했죠.


또 “이런 사업이 더 확장돼 나처럼 창업을 하고 싶어도 초기 투자비용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이나 육아 등으로 풀타임 근무가 어려운 이들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어요.

“사업 노하우 익혀 내 가게 창업 목표”

즉석간식 코너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기존의 휴게소 운영업체가 운영한다.│문화체육관광부 스토리랩 기자 임경연

경기도 안성시 안성휴게소(부산 방향)에 가면 또 다른 나이트카페가 오후 8시부터 불을 켜요. 대학교 4학년생 엄태훈(26) 씨가 운영하는 매장이죠. 그는 변 씨처럼 커피에 관심이 많아 커피매장 창업을 알아보다 공모를 보고 지원했어요. 


엄 씨는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청년들 입장에서 창업을 하는 게 여러모로 부담이 큰데, 이번 기회를 통해 창업 경험을 해볼 수 있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처음엔 핸드드립 커피 판매만 생각했는데 낮에 인기 있는 메뉴 몇 가지를 함께 팔면 좋겠다는 생각에 추러스, 핫도그, 소떡소떡 등도 판매하고 있는데요. 엄 씨 역시 공유주방의 매력으로 초기 투자비용에 대한 부담이 없다는 점을 꼽았죠. 


엄 씨의 경우 650만 원 정도의 통상 초기 투자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어요. 매장 운영 시 위생관리 등에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어요. 엄 씨는 “주간시간대 휴게소 운영업체 측과 저 모두 위생교육 등을 받고, 매일매일 위생 점검 일지도 적는다”고 말했죠.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공유주방과 관련해 안전관리 대책 등도 마련했어요. 먼저 공유주방 설치 운영자 측에서는 식품 분야 대학 졸업생이거나 자격증 소지자 또는 2년 이상 종사자 등 ‘위생관리 책임자’를 두고 주방시설, 조리시설 등의 위생관리 상태를 매일 점검해야 해요. 

공유주방 사용자는 교차오염 방지, 위생적인 제품 생산 등을 위해 식약처에서 제공한 ‘공유주방 운영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하죠. 식약처와 지방자치단체는 주기적으로 현장 지도, 운영상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등 관리를 해야 한답니다. 


엄 씨는 “2년간 실증특례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큰 책임감을 안고 일하고 있다”면서 “2년 동안 열심히 운영해서 돈도 모으고, 사업 노하우도 익히고 싶다. 이 경험을 밑천 삼아 내 가게를 창업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어요.

 

7월 11일에는 제1호 공유주방인 나이트카페에 이어 ‘제2호 공유주방 시범사업’이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 주관)의 최종 심의를 통과했죠. 


심플프로젝트컴퍼니(위쿡)가 신청한 이 공유주방은 제1호 공유주방(고속도로 휴게소)과 달리 1개의 주방을 여러 명의 영업자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받아 다양한 제품이 한 공간에서 생산될 수 있는 형태에요. 제1호 공유주방처럼 앞으로 2년간 영업신고 규제특례를 적용받게 돼죠. 


한편 심의위원회는 공유주방에서 생산된 제품을 유통기한 설정 실험·자가품질검사·식품표시 등 안전 의무를 이행한 경우에 한해 유통·판매(기업 간 거래-B2B)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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