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대한민국 U-20 축구대표팀!

조회수 2019. 9. 2. 13: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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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정정용(50)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신화’를 만들어간 과정은 그야말로 각본 없는 드라마였어요! 가슴 뛰는 그들의 이야기, 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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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서 기대로, 기대에서 경이로
2019 FIFA U-20 폴란드 월드컵 한국 대표팀이 6월 12일 루블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에콰도르와 준결승전에서 1대 0으로 승리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대한축구협회

팬들은 처음에 실망하고, 반신반의하다가 경이의 순간을 경험했고, 이제 찬탄과 칭송에 입이 마르는데요. 처음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연령별 대회는 이제 한국 축구의 좌표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제시할 것으로 보여요. 


선수 시절 프로에서 뛰지 못했던 정정용 감독의 지도력이 가져온 변화예요.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은 애초 우승 후보는 아니었어요. 아시아 대표로 한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가 출전했지만 국제적인 시선은 한국보다 일본에 쏠렸는데요.


가뜩이나 한국은 포르투갈, 아르헨티나, 남아공 등과 함께 ‘죽음의 F조’에 속해 16강 진출도 어려워 보였어요. 하지만 상전벽해처럼 한국 열세라는 전망은 모두 틀렸는데요. 


물론 조별리그 첫 경기 포르투갈전부터 수월한 것은 아니었어요. 포르투갈은 개인기와 스피드에서 한 수 위의 기량으로 한국을 농락했죠.


최용수 FC서울 감독은 “포르투갈 선수들이 마치 ‘피파 축구 게임’을 하는 것처럼 움직이더라”며 혀를 내둘렀어요. 포르투갈의 쉴 새 없는 공세에 골키퍼 이광연(강원 FC)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는데요.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어 팬들이 불안감을 보였던 이유예요.

막내 이강인 늘 "형들에게 고맙다"
한국 대표팀이 6월 9일 세네갈과 8강전 승부차기에서 승리한 뒤 그라운드를 달리고 있다.│대한축구협회

하지만 2차전 남아공전 승리 뒤, 조별리그 마지막 아르헨티나전 쾌승으로 승점 6을 따 16강에 진출하면서 팬들의 태도는 달라졌는데요. 


이어 펼쳐진 16강 한일전에서 후반 오세훈(아산 무궁화)의 헤딩 결승골로 8강에 오를 땐 전율했어요. “경기를 즐기라”며 선수들을 독려한 정 감독과 “우리는 하나”라는 정신으로 똘똘 뭉친 선수들이 합작한 작품이었죠.


8강 세네갈전에서 이강인(발렌시아 CF)과 이지솔(대전 시티즌), 조영욱(FC서울)의 맹폭과 승부차기에서 이광연의 세이브로 4강에 오르던 순간이 기억나시나요? 


이번 대회에 처음 도입된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은 결정적 순간마다 희비를 가르는 변수로 작용했지만, 잘 적응했어요. 4강전 에콰도르와 경기에서도 막판 상대의 골이 오프사이드 판정을 받았고, 종료 직전 이광연의 슈퍼 세이브가 팀을 구한 것 등에는 운이 따랐어요. 


하지만 운도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되는 것! 이광연은 에콰도르와 4강전 뒤 “마지막 막을 때는 정말 간절함 때문에 공이 걸린 것 같다”고 했는데, 진정성이 느껴지죠.  축구는 11명이 해요. 교체 선수 3명을 포함하면 14명인데요. 

그런데 20세 대표팀은 21명의 선수가 엔트리를 구성한답니다. 벤치에 앉아 있어야 하는 선수들은 죽을 맛이에요. 


팀 분란의 모든 문제는 뛰는 선수가 아니라, 뛰지 못하는 선수에서 발생하는데요. 신태용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벤치 멤버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고 말한 바 있어요.  


정정용호는 그 자체로 ‘원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요. 막내 이강인은 18세로 나머지 20명의 선수들보다 한두 살이 적은데요.


팀의 주력 선수로 결승전까지 중핵 구실을 한 그는 오랜 기간 스페인 무대에서 커 자유분방하지만, 경기 뒤에는 늘 “경기에 뛰지 못한 형들의 응원 덕분에 이겼다”고 말해요.


골키퍼 이광연도 “나 때문에 뛰지 못하는 박지민(수원 삼성), 최민수(함부르크 SV)에게 미안하다”고 고백하는데요. 사소한 불만이야 없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서로를 챙겨주면서 원팀의 분위기를 만들려는 노력이 강하게 엿보여요.

실전형 지침·빠른 판단 등 전술 탁월 
정정용 감독이 세네갈전에서 승리한 뒤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정정용 감독은 스타 선수 출신이 아니에요. 그를 선수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하지만 선수와 지도자의 길은 천양지차예요. 스타 선수가 좋은 지도자를 보증하지 않는다는 얘기인데요. 


대구 출신의 정 감독은 청구고와 경일대를 졸업했고, 실업축구 이랜드에서 6년간 뛰었지만 부상 은퇴 뒤 지도자의 길을 걸었어요. 그러면서 명지대 대학원과 한양대 박사과정을 거치며 스포츠 생리학 등을 공부했고요.


그는 대한 축구 협회가 유소년 축구선수 발굴 육성을 위해 2000년부터 도입한 전임 지도자 제도의 2세대예요. 2008년 대한축구협회 14세 이하 대표팀의 전임 지도자로 들어갔고, 중간에 잠시 대구FC의 유스팀인 현풍고 감독을 맡기도 했지만 10년 이상 유소년 축구에서 잔뼈가 굵었어요.


전임 지도자 1세대인 송경섭 15세 이하 대표팀 감독은 “온화하고 침착하고, 연구하는 지도자”라고 정 감독을 평가했는데요. 사실 정 감독의 인터뷰를 들으면 차분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죠. 


“새벽까지 응원해준 국민 여러분께 감사한다” “우리 선수들을 믿었다” “가족에게 감사하다”는 말은 평범해요. 카리스마형 지도자는 아니라는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선수들을 몰아붙일 수 없어요. 투혼과 정신력, 체력만을 강조해서도 안 돼요. 선수들도 과거의 복종적 태도와는 많이 다른데요. 


지도자는 소통하고 동기부여를 통해 선수들을 장악하고, 시스템과 공평한 기회 제공으로 선수를 움직여야 해요.

최준이 에콰도르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뒤 기뻐하고 있다. | 대한축구협회

‘상대를 한쪽으로 몰아 압박한 뒤 기회를 보려 했다’ ‘점유율을 내주더라도 후반을 노렸다’ ‘상대에 따라 전술을 준비한다’ 등의 실전형 지침과 빠른 판단은 선수들의 신뢰를 높이는 원동력이었어요.


일본과의 16강전에서 점유율에서 밀렸지만 이겼고, 세네갈전에서는 5명의 수비로 안정을 시킨 뒤 역공으로 제압하는 등 정 감독은 뛰어난 전술가로서 면모를 보였는데요. 섬세한 지도력은 풍부한 현장 경험에서 나와요. 


순간순간 임기응변식 판단을 하고, 자원 활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장단점을 완벽하게 파악해야 하는데요. 지도자가 선수와는 다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서 전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까닭이랍니다.


10년 이상 어린 선수들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축구 협회의 권역별 유소년 지도자로부터 자문과 조언을 구하면서 최강의 팀을 꾸릴 수 있었던 것은 큰 힘이었어요. 


사실 기술 측면에서 한국이 일본 유소년 축구에 뒤지지만, 지도자들이 선진 코칭 기법을 도입하면서 패스, 컨트롤 능력은 과거보다 많이 세련됐는데요. 


차범근, 황선홍, 이동국처럼 특정 영역의 전문가 선수들이 나오지 않는 문제가 있지만, 선수 자원의 디엔에이(DNA) 자체는 아시아 최강권으로 봐도 무방해요.

돈 주고도 못 살 경험, A대표팀의 미래
이강인(가운데)이 6월 10일 폴란드 카토비체 공항에서 전세기에 오르며 활짝 웃고 있다.│대한축구협회

여기에 프로축구연맹의 유소년 육성 정책으로 이른 나이에 프로에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늘면서 선수들의 대응력은 커졌어요. 실제 21명의 대표팀 가운데 18명이 프로 유스팀을 거쳤거나, 현재 프로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인데요. 


K리그 프로팀과 관계없는 선수는 영등포공고 출신의 정호진(고려대), 독일 동포인 골키퍼 최민수, 어려서 스페인으로 떠난 이강인 딱 3명이에요. 한국 남자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강에 든 적이 있기도 하죠.


여자축구의 경우 2010년 FIFA 20세 이하 월드컵 동메달, 2010년 FIFA 17세 이하 월드컵 우승컵을 챙긴 바 있어요. 정정용호가 이번 FIFA 20세 월드컵에서 남자부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내면서 한국 축구사도 바뀌게 됐어요. 


선수 시절의 이름값 못지않게,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며 지도 능력을 키워온 풀뿌리 현장의 감독들은 그동안 프로나 A대표팀에서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요.

하지만 ‘꿩 잡는 게 매’이듯 실력파 감독들에게 대표팀 감독의 문호가 열릴 가능성이 있어요. 정정용 감독이 지도자에 대한 평가 기준을 바꿀 계기를 만든 것이랍니다. 우승은 흔히 ‘간밤에 내린 눈’이라고 해요.  


하룻밤 자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뜻인데요. 하지만 결승까지 올라간 선수들의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에요.


송경섭 15세 이하 대표팀 감독은 “연령별 선수들이 우승하는 것도 큰일이지만, 장차 A대표팀에 들어갈 그들이 청소년 시절 국제무대에서 큰 경기 경험을 한 것은 대표팀 육성 차원에서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선수들의 심장이 두터워진 만큼 역량은 더 커진다”고 설명했어요. 무명의 팀에서 돌풍의 팀으로, 돌풍의 팀에서 핵폭풍을 일으킨 정정용호 선전의 참뜻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몰라요.


ⓒ 김창금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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