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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발전 프로세스, '지식견해'란?

조회수 2019. 9. 5. 17: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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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특징은 방황, 흔들림, 반항, 저항입니다. 기존의 관념이나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게 왜 필요한지, 과연 그게 맞는지 의심하고 질문하고, 자기 나름의 철학의 뼈대를 세우는 과정입니다. 


지식을 쌓는 과정 위클리 공감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위클리공감 홈페이지 원문 보러 가기

지식에 관하여

당연히 중심축에 지식이 있어야 하고, 지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보가 흔해지면서 지식이란 꼭 대학을 다녀야 생기는 것도 아니고, 학위를 따야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데요. 나름의 지식의 진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식이란 무엇일까요? 이를 아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는 어원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지식은 무언가에 대해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한 번 본 것이 아는 것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의 얘기를 들은 것이 아는 것인가요? 도대체 안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요? 내가 생각하는 아는 것의 정의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표현할 수 있으면 아는 것이고, 표현할 수 없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지식의 지(知)는 ‘화살 시(矢)+입 구(口)’입니다. 자신이 아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고 나는 해석합니다. 일 잘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거침없이 줄줄 얘기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의 핵심은 뭐고, 앞으로 이런 식으로 진행될 것이고, 이런 부분을 도와주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고…. 얘기를 들으면 머리가 맑아집니다. 그가 하는 일을 그림처럼 그릴 수 있습니다.


반면 일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데요. 횡설수설하고, 뭔가 얘기를 하는데 논리적이지 않고, 뭔가 미심쩍습니다.


설명을 들어도 자꾸 궁금한 것이 생기고, 저게 진실일까 의심하게 되고, 무슨 말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설명을 들을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내가 생각하는 지(知)는 아는 것을 제대로 말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말로 표현하고 글로 쓰기

둘째는 지식의 식(識)입니다. 식은 ‘말씀 언(言)+진흙 시(?)’, 혹은 새길 시입니다. 말을 진흙판에 새긴다는 의미인데요. 글쓰기를 뜻합니다. 배우는 것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글쓰기입니다. 


“이 조직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글을 잘 써야 합니다. 글을 쓰지 못하면 위로 올라갈 수 없어요. 중요한 건 절대 글쓰기를 남에게 시킬 수 없다는 겁니다. 윤리 규정에 어긋나지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 철학, 관점 등을 다듬고 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조직 경영진의 얘기입니다. 안다는 것은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아는 것이 아닌데요. 글은 아무나 쓸 수 없습니다. 아는 게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돼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개념이 점점 확실해집니다. 강의를 하는 난 이 변화를 자주 느낍니다. 관심 가진 분야를 처음에는 맛보기 삼아 설명을 합니다. 


처음엔 나도 긴가민가한데 자꾸 얘기를 하면서 개념이 뾰족해지는데요. 어느 순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개념이 확실하지 않아도 말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념이 불명확하면 글은 쓸 수 없는데요. 지식의 두 번째는 글쓰기입니다. 

셋째, 견(見)이입니다. ‘볼 견’이고, 의견의 견인데요. 지식의 결과물이 무엇일까요? 공부를 하고 책을 많이 보는 것이 사는 데 어떤 도움을 줄까요? 난 그게 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의 견은 다른 사람의 의견이 아닌 나만의 의견입니다. 


난 면접을 통해 사람을 평가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데 거기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자기만의 의견이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의견이 없습니다. 별생각 없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데요. 


그래서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자기 의견이 없다는 건 어떤 뜻일까요?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이고, 별다른 의문 없이 세상을 산다는 것 아닐까요? 그럼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아무 생각 없이 쫓아가게 될 것입니다. 


부화뇌동하고 곡학아세하고, 어디서 한 가지 배우면 그게 세상의 절대적 진리인 것처럼 추종하고, 다른 의견 가진 사람을 배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의견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배움의 결과로 얻어집니다. 


엄청난 양의 지식이 있으면 그 결과가 바로 견인데요. 식견(識見)이란 단어가 그걸 말해줍니다. 지식이 있어야 견해가 생긴다는 말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의견이 생기지 않고, 지식이 없는 의견은 일방적 주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 사회가 쉽게 냄비처럼 끓었다 식었다 반복하는 가장 큰 이유도 지식과 식견의 부족 때문입니다. 

독자적 관점으로 문제 풀기 

마지막은 해(解)입니다. ‘풀 해’이며, 문제를 푼다는 의미인데요. 우리는 왜 배울까요? 힘든 공부를 해서 왜 대학까지 가는가요? 대학을 나온 뒤에는 왜 계속 공부를 해야 할까요? 내가 생각하는 배움의 가장 큰 성과는 문제 해결 능력의 향상입니다. 


공부를 하면 복잡한 문제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능력이 있고 뛰어나다는 것은 결국 문제 해결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다양한 종류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문제를 해결하면서 살아야 하는데요. 


지식이 늘면 다양한 종류의 도구를 갖게 됩니다. 많은 경우의 수를 알고 해법까지 알게 됩니다. 당황하지 않습니다. 불안하지 않는데요. 반면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한두 가지 도구만을 갖게 됩니다. 당연히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문제 같지 않은 문제에도 걸려 넘어지고, 말이 되지 않는 사기도 당하고, 쉽게 현혹됩니다. 사리 분별력이 약해지는데요.

조지 오웰이 쓴 <1984>라는 소설을 보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생각하면 안 되고, 일기를 쓰면 안 되며, 표현하면 안 된다."입니다. 무엇보다 언어의 제한이 많은데요. 왜 그랬을까요? 표현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바보들은 다스리기 쉬운데요. 이것의 역이 바로 지혜로 가는 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지혜의 발전 프로세스는 지식견해(知識見解)의 네 글자입니다.


아는 것을 자꾸 말로 표현하고 글로 써보고, 그런 과정에서 나름의 의견이 생기고 마지막 해법이 다양해지는 것입니다. 시작은 말과 글이며, 표현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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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근태_한국리더십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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