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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수산물 WTO 한국 상소심 승리 배경은?

조회수 2019. 9. 5. 17: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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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따른 일본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둘러싼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상소심에서 한국이 예상을 뒤엎고 승소했습니다. 자세한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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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수산물’ WTO 상소심

1심 패소를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는 안팎의 비관적 전망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우리 식탁의 안전을 지켜내고자 최선을 다한 정부의 노력이 결실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WTO 상소기구는 3월 11일(현지 시간) 일본이 제기한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 제소 사건에서 1심 격인 분쟁해결기구(DSB) 패널의 판정을 뒤집고 한국의 조치가 타당한 것으로 판정했습니다. 


국제무역 분쟁은 2심제로, 이번 상소기구 판결이 최종심입니다. 

국제무역 분쟁 2심제, 이번이 최종심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먹거리 안전’을 위해 2013년 9월 후쿠시마 주변 8개 현의 모든 수산물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은 2015년 5월 WTO에 한국을 제소했습니다. 


WTO 분쟁해결기구는 2018년 2월 한국의 수입 규제 조치가 WTO ‘위생 및 식물위생(SPS)’ 협정에 불합치한다며 일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는 2018년 4월 상소를 제기했던 것입니다. 


참고로 WTO의 분쟁 해결 절차는 ① 협의 ② 패널의 설치와 심의 ③ 패널 보고서 채택 ④ 분쟁국이 이의를 제기하면 상소기구 심의와 보고서 채택 ⑤ 상소기구 보고서 이행 ⑥ 분쟁국이 이행치 않으면 보상 등의 차례로 진행됩니다.


WTO의 ‘위생 및 식물위생’ 협정은 농수산물과 식품의 무역 때 위생·검역 조치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국제 규범입니다. 각국의 검역 제도가 무역 제한을 목적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이 위생 협정은 이해가 상반된 국가들 간 타협의 산물로 나온 탓에 규정이 모호해서 해석과 적용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합니다. 

잠재적 위험성 통제 초점, 1심 뒤집어 

그동안 위생 분쟁에서는 적정한 보호 수준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범위 안에서 규제 조치를 취했는지, 특정 회원국에 자의적이거나 부당한 차별이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어왔습니다. 


한국 정부는 우리의 수입 규제가 일본의 원전사고 인근 지역 수산물의 방사성 물질 오염을 우려해서 내린 정당한 사전 예방적 조치라는 입장입니다. 


반면 일본 정부는 한국이 수입금지 조치와 추가 검사의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WTO 패널 1심은 일본 식품의 표본을 검사해서 유해성 여부만 살피면 적정 보호 수준을 달성할 수 있는데도 수입금지와 방사성 추가 검사를 요구한 한국의 조치는 무역 제한이라고 판정했습니다. 


상소기구 판정을 앞두고 이러한 1심의 결론이 대부분 유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일본에 유리하게 판정됐던 핵심 쟁점이 줄줄이 파기됐습니다. 

상소심은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가 일본에 대한 자의적 차별에 해당하지 않으며 지나친 무역 제한도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환경이 식품에 미치는 잠재적 위험성을 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1심 판정을 파기한 것입니다.


다만 한국 정부가 수입금지와 관련해 일본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절차적인 부분만 일본의 주장을 수용했습니다.


정부는 “1심 당시 일본 측이 제기한 4대 쟁점(차별성·무역 제한성·투명성·검사 절차) 중 일부 절차적 쟁점(투명성 중 공표 의무)을 제외한 모든 쟁점에서 우리의 수입 규제 조치가 WTO 협정에 합치한다고 판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1심은 방사능 수치에만 집착해 판결 

상소기구가 수산물 수입금지 문제를 보는 논점을 1심과 달리한 데는 우리 정부의 치밀한 논리 개발과 설득 작업이 주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식품 400∼500개의 표본검사만 제대로 해 위험성이 없다면 괜찮은 것 아니냐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맞서 우리 전담 대응팀은 1심이 일본 식품 자체의 유해성만을 근거로 판결을 내린 점이 부당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환경이 일본 식품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검역 과정에서 걸러내는 것이 우리 정부의 정당한 권리임을 부각한 것입니다. 


정해관 산업통상자원부 신통상질서협력관은 “1심 패널이 자의적이고 일방적으로 판단한 부분을 조목조목 반박했다”면서 “상소기구가 낸 보고서 내용을 보면 우리가 주장한 환경과 식품 간 상관관계의 리스크 방지에 초점을 맞춰 법리적 판단을 내렸다”고 분석했습니다. 


1심은 방사능 수치에만 집착해 무역 규제라고 봤지만, 상소심은 일본과 가까운 지리적 특수성 등 환경적 요인을 종합해서 판단한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즉, 한국이 자국민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규제를 취한 것이지, 일본만 부당하게 차별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지요. 

교역 자유화-식품 안전 충돌 역사적 기록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분쟁을 ‘교역 자유화’와 ‘식품 안전’이라는 두 가지 가치가 충돌한 것으로 봤습니다. 통상 분쟁을 교역 자체만으로 보지 않고 환경적 요소를 고려해 판단했다는 점에서 이번 판정은 WTO 역사에도 중요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WTO가 수산물 방사성 오염에 관한 공중보건 관점의 가장 엄격한 기준을 인정한 매우 뜻깊은 판결”이라고 환영했습니다.


이번 승소로 2013년 9월 후쿠시마현을 포함한 인근 8개 현에서 잡힌 28개 어종의 수산물에 대해 내려진 수입금지 조치는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정부는 “이번 판정으로 일본 식품에 대한 기존 검역 절차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안전성이 확인된 식품만 국민 여러분의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더욱 촘촘히 검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일본에서 명태와 고등어가 2만∼4만t 수준으로 많이 들어오다가 최근에는 3000t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명태는 러시아산으로, 고등어는 노르웨이산으로 대체했습니다.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는 “후쿠시마 수산물 금지가 풀리면 전체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이 확대될 소지가 다분했고, 소비 침체로 어업인과 수산물 유통·음식점 등 전반에 악영향이 미쳤을 것”이라며 “WTO 승소 판정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인 정부의 노력에 감사한다”고 말했습니다. 

WTO 위생 분쟁 1심 뒤집힌 건 처음 

WTO의 판정은 어느 한쪽으로 무게추가 쏠리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제 논에 물 대기’식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본 언론들도 ‘패소’라는 표현을 쓰며 탄식했을 정도로 한국의 ‘완승’이었습니다. 


그동안 자국 농수산물의 안전성을 국내외에 강조하며 후쿠시마의 ‘부흥’을 노리던 일본 정부는 스스로 제기한 WTO 제소가 오히려 수출에 타격을 주는 결과로 끝난 것에 당황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당시 자국의 수산물에 수입을 금지한 54개국(현재는 23개국) 가운데 유독 한국만을 상대로 WTO에 제소했습니다. 주변국 중 한국보다 수입 규제 수위를 더 높인 중국, 대만 등은 제소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을 상대로 WTO에서 유리한 판정을 받으면 이를 계기로 다른 나라에서도 규제 해제를 끌어낼 심산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결과가 뒤집히면서 이들 나라의 수입금지 조치까지 정당성이 인정된 셈이 되어 일본 정부의 전략은 틀어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WTO 위생 관련 분쟁에서 1심 결과가 뒤집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통상 전문가들도 위생을 이유로 수입을 제한하는 경우 과학적 근거를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봤습니다. 


이렇듯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관계부처 분쟁대응팀을 구성해 승소를 이끌어낸 정부의 노력은 칭찬할 만합니다. 윤창렬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은 “쉽지 않은 소송이라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준비했고 관계부처와 10여 차례 회의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 변호사 특채해 제네바에 ‘워룸’ 

전문 변호사를 외부에서 특채해 이번 소송에 총력 대응한 것도 승소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정하늘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장은 미국 통상 전문 변호사 출신으로 2018년 4월 특채됐습니다. 


2018년 말 상소기구 변론을 앞두고 정 과장을 단장으로 한 정부 대표단 20여 명은 WTO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 호텔에서 3주 가까이 전략을 짰습니다. 


정 과장은 승소 직후인 3월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1심 패소를 뒤집기 위해 제네바 호텔에 워룸(War Room)을 차려놓고 거의 온종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시뮬레이션을 해가며 대응한 보람이 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는 “2심은 사실관계보다 법적 논리를 다투는 것이기 때문에 WTO 상소위원 3명을 최대한 설득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고 말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국 정부에 승소 소식을 알린 주인공은 제네바 대표부에서 분쟁 업무를 총괄하는 권혁우 참사관입니다. 


권 참사관은 “본부 담당 직원이 밤늦은 시간에 울면서 보도 자료를 고친다고 하는데 함께 울컥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습니다. 


질 것이라 예상한 분쟁이어서 대응 방안 위주로 언론 브리핑 자료를 준비하던 직원들은 이겼다는 소식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울먹였던 겁니다. 판정이 나오기 전날에는 패소 결정을 받는 ‘악몽’을 꾸다 새벽에 잠이 깨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민단체도 정보 수집으로 힘 보태 

미국 변호사 자격을 가진 권 참사관은 사법협력관인 노유경 부장판사, 윤영범 서기관과 함께 팀을 꾸려 현장을 지켰습니다. 2018년 말 정부 대표단이 제네바 호텔에서 전략을 짤 때 이들도 합류했습니다. 


호텔에서 예상 질문과 답변을 준비하며 실제 변론을 하듯 심리를 대비했습니다. 1심 패널은 두 번의 변론 기회가 있지만 상소기구는 단 한 번 변론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 한 번의 변론에 모든 걸 걸어야 했습니다. 


노 부장판사는 “1심 판정은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됐다”며 “힘의 논리가 우선하는 국제사회에서, 특정 기업이 아닌 모든 국민의 이해가 걸린 사안이라 부담도 컸다”고 말했습니다. 권 참사관은 “본부가 지휘하고 현장이 유기적으로 협조하면서 이뤄낸 성과였다”고 말했습니다.

 

정보를 다각적으로 수집하고 정부의 적극적 대응을 뒷받침한 시민단체들의 관심과 노력도 이번 승소에 큰 힘을 보탰습니다. ‘일본산 수산물 수입 대응 시민 네트워크’는 3월 12일 서울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 안전이 승리했다. 


1심 패소라는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 노력한 정부에 감사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일본산 식품을 포함한 방사능 검사를 더욱 철저히 시행하고 후쿠시마 원전 상황에 대한 모니터링, 방사능 오염 조사, 원산지표시제 개선 등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최준호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이번 승리는 시민사회와 정부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본다”며 “끝까지 우리 식탁의 안전을 지켜내기 위해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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