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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과 민주주의 100년 여정! 헌법 제1조의 탄생 비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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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탄생했습니다. 전날 밤 10시 29명의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임시의정원을 구성하고 정부 수립에 나섰는데요. 자세한 내용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밤샘 회의 끝에 ‘대한민국임시헌장’을 반포하면서 마침내 4월 11일 민주공화국이 수립되었습니다. 


임시정부가 세워지고 임시헌장이 민주공화정을 선포하자 ‘오래도록 민주주의를 사모해왔던 한인들이 미친 듯 취한 듯 기뻐했다’고 합니다. 


1941년 임시정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임시헌장에 대해 “다른 민족(일본)의 전제를 뒤집고 군주정치의 낡은 관습을 파괴하고 새로운 민주제도를 건립하여 사회계급을 소멸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입헌군주제 아닌 전제군주제 고수해 망국

출처▶<한성순보> 1884년 1월 30일 자에 나온 임시헌장 내용│한겨레

임시헌장은 임시정부의 헌법이었습니다. 헌법이란 ‘국가의 통치 조직과 통치 작용의 기본 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을 말합니다. 헌법에 대한 논의는 19세기부터 있었습니다.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 1884년 1월 30일자는 ‘헌법은 군주가 정하기도 하고, 혹 군과 민이 함께 정하기도 한다’라며 군주제와 입헌군주제 아래 헌법 제정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전제군주정인 대한제국은 1899년 8월 ‘대한국국제’를 반포했는데요. 대한제국이 자주독립의 황제국이고 전제국으로서 황제는 무한한 군주권을 가진다는 것을 만천하에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조항이 없어 헌법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종의 전제군주정 선포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들어와 지식인들 간에는 입헌군주제 논의가 활발해졌습니다. 입헌정치는 곧 헌법정치라는 인식도 퍼져나갔습니다. 


<제국신문> 1902년 12월 22일자는 입헌군주제를 ‘헌법정치’라 부르며 가장 바람직한 정치라고 주장했는데요. 1906년 청이 헌법을 제정하고 입헌군주제로 전환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지식인들은 비상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출처▶대한 민국임시정부 1920년 신년 축하 기념사진│독립기념관

일본이 1889년 헌법을 제정해 입헌군주제 국가로서 열강 대열에 낀 데 이어 청이 입헌주의를 천명했으니,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헌법에 대한 관심은 헌정연구회와 같은 학회가 등장하고 <헌정요의> <헌법> <헌법요의> 등의 서적이 잇따라 출간될 만큼 상당했습니다. 헌법에 대한 높은 관심은 곧 입헌정치로의 전환에 대한 열망을 대변했는데요. 


하지만 대한제국은 일본이나 청과 달리 전제군주정을 고수했습니다.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청의 지식인 량치차오는 전제군주정 때문에 망했다고 한탄했습니다. 


입헌군주제였다면 한일병합조약은 의회를 통과해야 성립되지만, 전제군주제였으니 황제가 도장을 찍는 순간 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1898년 독립협회의 의회 개설 운동을 시작으로 입헌군주제 요구가 이어졌지만, 고종이 전제군주제를 고수했기에 일어난 망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조선 멸망의 최대 원인은 사실 궁정에 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국내외 임시정부안들 모두 ‘공화제’ 

출처▶상하이 초기 임시정부 청사의 모습

3·1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가 반포한 임시헌장은 입헌군주제가 아닌 민주공화정을 선포했습니다. 


3·1운동 당시 등장한 한성정부, 조선민국정부, 신한민국정부, 대한공화정부, 대한민간정부, 고려임시정부와 같은 임시정부안도 하나같이 공화제 정부를 지향하고 있었는데요.

임시정부의 첫 번째 헌법인 임시헌장을 기초한 이는 조소앙이었습니다. 그는 1912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에 중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는 1917년 7월 상하이에서 14명의 독립운동가들이 해외 한인의 대표자회의를 열어 공화정체의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주장을 담아 발표한 ‘대동단결선언’을 작성한 바 있었습니다.


1919년 3월 11일 중국 지린에서 대한독립의군부 주도하에 독립운동가 39명의 명의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서’ 역시 조소앙이 작성했습니다.

그는 이미 두 선언에서 ‘조선 민족의 주권은 소멸하거나 다른 민족에게 양도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며 ‘대한민주의 자립’을 선포한 바 있었습니다. 


3·1운동이 확산되자 조소앙은 지린에서 상하이로 건너가 헌법을 기초하는 일을 주도했습니다. 조소앙은 임시정부 설립의 정당성을 한국인이 직접 행동으로 주권을 행사한 3·1운동에서 찾았는데요.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명시한 헌법인 임시헌장을 내놓았습니다. 제1조에서는 민주공화제를 선언하고 제2조에서는 대의제를 천명했습니다. 제3조의 평등권, 제4조의 자유권, 제5조의 참정권 등은 인민의 기본권에 해당합니다. 


제6조에는 교육·납세·병역 등 인민의 의무를 규정했습니다. 제9조에서는 사형, 고문과 더불어 공창제 같은 반인권적인 제도를 없앨 것을 규정했는데요. 


공창제란 일본에서 만든 정부 공인 성매매 제도를 말하는데, 식민지화와 함께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간결하지만, 민주주의 국가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빠짐없이 담은 헌법이었습니다. 

제1조에 등장하는 민주공화제는 대한제국기부터 등장한 정체였습니다. 일본 유학생들이 1907년에 만든 <대한유학생회보>는 미국을 ‘민주공화국의 개조’라 표현했는데요. 


계몽운동가인 원영의는 민주공화정을 가장 진화한 통치 형태라 불렀습니다. 1914년에는 대한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가 발간한 <국민보>가 ‘대조선 민주공화국 정부를 세울 기초’에 관한 논설을 내놓았습니다. 


임시헌장을 기초한 조소앙은 민주공화제를 ‘인민의 이익을 기초로 하여 정치적 권리를 균등화하고 국민을 균등하게 정치에 참여시키는 가장 좋은 제도’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1차 개헌 때 첫 주권 규정 등장 

출처▶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의 모습│한겨레

대한민국임시정부는 해방될 때까지 5차례에 걸쳐 개헌을 실시했습니다. 근대 국가의 3요소인 영토, 주권, 인민을 전제로 한 헌법에 기반한 헌정 체제를 꾸준히 유지했는데요. 


헌법이야말로 임시정부의 정당성과 합법성의 원천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임시정부의 헌법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주권 규정입니다. 


1919년 9월 제1차 개헌을 통해 공포한 ‘대한민국임시헌법’의 제2조에 처음으로 주권 규정이 등장합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있다’는 조항이 그것입니다.

  

1925년 제2차 개헌을 통해 공포한 ‘대한민국임시헌장’의 제3조에는 ‘대한민국은 광복운동 중에는 광복운동자가 전 인민을 대신함’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1927년 제3차 개헌을 통해 공포한 ‘대한민국임시약헌’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국권은 인민에게 있음입니다.

광복 완성 전에는 국권이 광복운동자 전체에 있음’이라 하여 임시정부의 주권이 원칙적으로는 인민에게 있으나, 독립하기 전에는 독립운동가가 이를 대리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1940년 제4차 개헌에 따라 공포한 ‘대한민국임시약헌’ 제1조 역시 ‘대한민국 국권은 인민에게 있되, 광복 완성 전에는 광복운동자 전체에 있다’라고 하여 1927년의 것과 대동소이합니다. 


제5차 개헌에 따라 1944년에 공포한 ‘대한민국임시헌장’ 제4조 또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인민 전체에 있음입니다. 국가가 광복되기 전에는 주권이 광복운동자 전체에 있음’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8조에서는 광복 이전에 주권을 갖는 광복운동자가 누구인지도 명확히 했는데요. ‘조국 광복을 유일한 직업으로 인정하고 간단없이 노력하거나 또는 간접이라도 광복사업에 정력 혹은 물력의 실천 공헌이 있는 자’가 바로 광복운동자였습니다.

이처럼 광복운동 기간에는 광복운동에 공헌한 광복운동자만이 대한민국 전체 인민을 대신해 주권을 행사한다는 논리는 인민 전체에게 주권이 있음을 전제하면서도 영토와 인민이 부재한 망명정부의 헌법으로서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1919년 4월 임시헌장에 처음 등장한 민주공화국은 5차례에 걸친 개헌을 거쳐 1948년 공포한 제헌헌법 제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규정으로 계승되었습니다.


1919년 9월의 ‘대한민국임시헌법’에 처음 등장하는 주권재민의 정신 역시 제헌헌법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담겼습니다.


즉, 임시정부가 존속했던 동안 민주공화국 이념과 주권재민의 정신은 헌법의 구성 원리로 확고히 뿌리내렸고 제헌헌법으로 계승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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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인_춘천교육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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