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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을 세상에 알리는 사람들

조회수 2019. 9. 9. 17:2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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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서관 꿈새김판에 걸린 2·1 독립선언서 초고와 2·8 독립선언서 사진 | 한겨레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 3월 1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봉기해 일본 제국의 한반도 강점에 대해 저항권을 행사하고, 한민족의 독립을 외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3·1 만세운동’인데요. 기미년(己未年)에 일어났다 해서 ‘기미 독립선언’이라고도 하는 이 만세운동은 대한민국의 시초가 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됐습니다.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100년 전 독립을 외쳤던 이들의 뜻을 지금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또 다른 100년을 함께 쓰자고 제안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각자 자리에서 100년 역사의 의미를 곱씹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시죠.


위클리공감 원문 기사 보기


우리 역사 가슴으로 만나 새 역사 쓰는 '정상규 작가'
독립운동가 앱과 책 만든 정상규 작가 | 곽윤섭 기자

‘오늘의 독립운동가, 노백린 선생.’ 지난 1월 22일 오전, 휴대전화 푸시 알람이 울렸습니다. ‘독립운동가’ 앱을 설치하면 이렇게 그날 서거한 독립운동가의 정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앱은 김구, 유관순 등 잘 알려진 인물뿐 아니라 우리가 잘 몰랐지만 알아둬야 할 독립운동가 500여 명의 이름과 활동상을 담고 있는데요.

  

앱을 만든 이는 사회공헌 사업을 하는 포윅스의 대표 정상규(32) 씨입니다. 그는 지난 2015년 앱 개발 후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잃어버린 영웅들> 등의 책을 쓰며 독립운동가의 삶과 역사를 알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과서 안 나온 얘기에 참 많이 놀라

정 씨는 원래 미국 오리건대학에서 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던 유학생이었습니다. 미국 영주권자였지만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한국으로 달려왔고, 공군에 자원입대했는데요.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전방 초소(GOP), 군에서 어려운 환경 탓에 공부를 제때 못했거나 방황했던 이들을 대상으로 ‘GOP 영어마을’을 열었던 게 지금 하는 일의 계기가 됐었습니다.

  

“영어 가르쳤던 친구들 한 명씩 면담을 하며 사연을 다 알게 됐어요. 그중 두 친구가 의열단 후손이었죠. 


당시 군복을 입어서 더 그랬을까요. 굉장히 몰입되더라고요.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교과서에는 없던 이야기들에 참 많이 놀랐어요. 


안중근 의사의 조력자였던 유동하 선생, 당시 나이 아세요? 17세. 그걸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거리더라고요. 이런 분들을 조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연락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심증은 확실한데 물증이 없거나 형평성·객관성 문제로 서훈을 받지 못한 이들. 정 씨는 후손들을 도와 독립운동가 자료를 찾는 일도 합니다. 


광복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자료 검토를 요청하고 문제가 없다고 확인되면 정보를 추가하는데요. 


“이런 일은 단순히 개인적인 집안 명예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분들은 개인을 넘어서 역사를 쓴 인물들이니까요. 독립운동가 앱에 정보를 올리면 최소 30만 명이 받아봐요. 이렇게라도 기억해야죠.”

  

정 씨가 공익적인 활동을 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유학할 때 경제적 환경이 어려워 사회적 약자가 된 친구들을 보다 못해 교육 엔지오(NGO)를 만들었어요. 


그때 닉이라는 친구가 했던 말이 제겐 지금도 큰 울림이자 힘입니다. 부모님도 있고, 외국에 나와 이렇게 공부도 하는 네가 부럽다고 했어요. 덕분에 사회문제에 관심이 싹튼 것 같아요.” 

영화 게임 패션쇼 등 다양한 채널로

정 씨는 현재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미래희망분과 위원이기도 합니다. 


독립운동가 게임 제작을 비롯해 다큐멘터리 영상 소설 <1919 유관순, 그녀들의 조국> 각색, 대외 홍보 등을 하며 3·1운동 역사가 다양한 콘텐츠로 알려지도록 돕고 있는데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그냥 보기만 했는데 가슴이 뜨거워지고, 나도 모르게 자료를 찾아보는 경험을 한 분들 있을 겁니다. 


문화 콘텐츠의 힘이죠. 내가 일방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면 사람이 수동적으로 바뀌죠. 


많은 사람이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패션쇼 등 다양한 채널로 우리 역사를 가슴으로 만나보고 능동적으로 새 역사를 쓰는 경험을 하면 좋겠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200명 시로 쓴 이윤옥 시인
잊힌 그들 지금이라도 기억해야죠라고 말하는 이윤옥시인 | 김청연 기자

“천안 아우내장터를 피로 물들이던 순사놈들/ 함경도 화대장터에도 나타나/ 독립을 외치는 선량한 가슴에/ 총을 겨눴다/ 그 총부리 아버지 가슴을 뚫어/ 관통하던 날/ 열일곱 꽃다운 청춘 가슴에/ 불이 붙었다” 


시인 이윤옥 씨(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가 시를 읽다 목이 메었습니다.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 ‘동풍신 편’에 쓴 ‘남에는 유관순, 북에는 동풍신’이라는 시의 일부인데요.


북한 출신 독립운동가 동풍신 열사는 유관순 열사와 공통점이 많습니다. 3·1운동 당시 10대였고, 여성이었는데요. 지역은 달랐지만 장터에서 만세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동풍신 열사를 아는 이는 많지 않은데요. 그분뿐일까요. 100년 전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 중에는 여성도 많았지만 그들에 대한 기록을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 현장도 찾아가

1997년경, 일본어문학을 전공하고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로 지내던 때, 일본을 자주 오가며 여성 독립운동가들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관련 자료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이 씨는 그때부터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2010년부터 올해까지 총 10권(완간)의 책에 여성 독립운동가 200인의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과 활동상을 형상화한 시 한 편과 그들의 업적을 소개한 글을 담고 있습니다. 이 씨 개인 돈과 후원금으로 출판한 책입니다. 

“독립운동 활동지였던 러시아 하바롭스크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어요. 벤치에 러시아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앉아 계시는데 그분들 보며 ‘100년 전 저 자리에 이인순, 이의순 선생이 계셨을 수도 있었겠지…’ 상상해봤어요. 


경상북도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에 가면 남자현 선생 시댁 생가가 복원돼 있어요. 그곳 툇마루에 앉아 100년 전 선생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을까도 생각했죠. 그러면서 시를 썼어요.” 

여력 되면 20권까지

젊은 나이에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목숨을 잃은 이들에 대한 글을 쓸 때는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고합니다. 


“수원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선경 열사, 노동자 출신 고수복 열사, 대구 신명여학교 교사 임봉선 열사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일제 침략만 없었으면 죽을 일도 없었을 아까운 청춘들…. 지금이라도 기억해야죠.”


2018년 기준,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357명. 허은, 이은숙 선생은 서훈을 받지 못했지만 반드시 넣어야 할 인물이라 판단해 책에 실었는데 이분들이 2018년 서훈을 받아 정말 기뻤다고 했습니다. 


이 씨는 “후원금과 개인 돈으로 책을 쓰는 게 쉽지 않았다”며 “출판에 대한 경비 후원이 이루어지고 개인적으로도 여력이 된다면 20권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100년 동안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조명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올해를 기점으로 음지에서 독립을 위해 애쓴 분들의 공적이 널리 알려졌으면 합니다.” 

여성 독립운동가 연구하는 김채운 씨
고2 때 논문 쓴 김채운 씨 | 곽윤섭 기자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모하는 여성 독립운동가는 357명입니다. 전체 독립유공자(1만 5180명)의 2.4%에 불과하죠. 앞으로 발굴해야 할 여성 독립운동가는 2000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강원대학교 사학과에 재학 중인 김채운(21) 씨가 여성 독립운동가 연구에 적극적인 이유인데요. 김 씨가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서입니다. 


“이윤철 항일 애국지사와 그 아내 민영애 여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민영애 여사는 식물인간 상태로 요양원에 입원 중이셨어요. 


그러나 이윤철 지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고 한국독립당 소속이었던 민영애 여사는 서훈을 받지 못한 상태였죠.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에 이것이 아쉽다는 이윤철 지사의 말에 울분이 끓어올랐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김채운 씨는 사학과 진학을 꿈꾸고 있습니다. 

발굴해야 할 인물 2000명 추산

도산 안창호 선생이 졸업한 고등학교를 다닌 김 씨는 고2 때 ‘여성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경신학술제에 참여했습니다. 


“주변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가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 설문 조사를 실시했고 이를 토대로 논문을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심옥주 소장님을 만났어요.”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와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6년 가까이 학생 신분으로 논문을 몇 편 쓰고, 토론회에 패널로 수차례 참석하면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와 발언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는데요. 그러나 김 씨는 아직도 멀었다고 말한다. 


“<암살> <밀정> <미스터 션샤인> 등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에 관심이 주목되기도 했습니다. 


소극적인 이미지에서 적극적인 이미지로 인식도 많이 바뀌었죠. 하지만 여전히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여성 독립운동가를 위한 토론회에 학생 패널로 참석한 김채운 씨 | 김채운

김 씨는 독자적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도 했는데요.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가 위치한 강원도부터 살폈습니다. 


최초의 여성 의병장인 윤희순 지사와 양양에서 만세운동의 불씨를 지핀 조화벽 지사, 그리고 강릉 기생으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강주룡 지사. 


“윤희순 지사는 <미스터 션샤인>의 실제 모델로 조금은 유명해졌어요.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의병으로 활동하다 중국으로 넘어가 조선독립단 설립에 참여하고 노학당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을 몇이나 알까요?” 

사학과 진학해 직접 흔적 답사도

윤희순 지사가 유교 집안의 여성이라면, 조화벽 지사는 신여성인데요. 


“호수돈여학교 학생이었던 조화벽이 개성에서 품고 온 독립선언서는 양양에서 거대한 투쟁의 불길로 번져갔습니다. 그러나 찾아간 양양교회에는 그의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어요.”

 

“현재 대부분의 기록은 남성 중심으로 남아 있는 상황입니다. 조금 남아 있는 자료를 엮어 작업하는 과정이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남겨야 할 일이죠.” 김 씨가 여성 독립운동가 연구자가 되려는 이유입니다.

'독립운동가 웹툰' 작업하는 이루다 작가
가네코 후미코의 신념에 반했다고 말하는 이루다 작가 | 곽윤섭 기자

독립운동가들이 웹툰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총 33인이 주인공인 ‘독립운동가 웹툰’은 성남문화재단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인데요. 


<타짜> <식객>의 허영만, <바람의 나라>의 김진 등 33명의 만화가가 참여합니다. 그중 독립운동가인 박열 의사의 부인인 ‘가네코 후미코’를 주인공으로 작업 중인 웹툰 작가 이루다(36) 씨를 만났습니다. 

허영만 등 만화가 33명이 33인 그려
가네코 후미코의 웹툰 캐릭터 이미지. | 이루다

“성남문화재단으로부터 역사 고증과 콘텐츠, 스토리 자문 등을 받았다”는 말에 순간 어릴 적 봤던 만화 <홍길동> 같은 영웅담이겠구나 싶었는데 이루다 작가가 허를 찔렀습니다. 


“지금까지가 꿈이었는지, 아니면 마지막 그 순간이 꿈인지 혹은 미래인지 결론을 내지 않고 판타지인 듯 아닌 듯 접근하려 해요.” 알쏭달쏭한 대답에 줄거리를 캐물었는데요.


“아직은 시작과 끝만 정해졌어요. 가네코 후미코의 일생을 같이 겪고 느끼면서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알아간다는 게 큰 줄거리입니다.” 


나비 소녀가 가네코 후미코 자신일까라는 의문에 이루다 작가는 “나비 소녀와 가네코 후미코를 닮은 얼굴로 그렸다”며 호기심을 자극한다고 했습니다. 

가네코 후미코는 어떤 이미지로 등장할까요? “화나면 버럭 하고 울면 대성통곡하는, 요즘 애들처럼 감정 표현이 솔직합니다.” 


옥중 수기 <나는 나>를 통해 느낀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이루다 작가의 첫인상이라고 합니다. 


수기와 논문(<가네코 후미코의 아나키즘 수용과 활동>)에서 공통되게 발견한 글귀에서 이루다 작가는 가네코 후미코가 세상을 대하는 자세와 방식을 대면했다고 했는데요.


학대에 못 이겨 자살 시도를 하려 할 때 가네코 후미코가 주변 자연 풍광에 작별 인사를 하다가 문득 깨달으며 떠올린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할머니와 고모의 무정함과 냉혹함과는 이별할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사랑해야 할 것들이 무수하게 남아 있다. 아름다운 것이 너무 많다. 내가 사는 세상은 할머니와 고모네 집만이 아니다. 세상은 넓다.” 

영화 <박열>은 일부러 보지 않아
영화 <박열>의 한장면

“무엇보다 오직 나로부터 파생된 신념에 반했다”는 이루다 작가는 현재와 연결하는 지점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연결 고리가, 지금의 독자가 가네코 후미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재미 요소라고 판단했는데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여인입니다. 가네코 후미코를 알면 알수록 요즘 20대 같아요. 젊은 친구들에게 가네코 후미코처럼 자기답게 사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자기 주도적인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이루다 작가는 가늘고 날렵한 눈썹과 치켜 올라간 눈꼬리로 가네코 후미코를 묘사했습니다.

가네코 후미코 하면 영화 <박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루다 작가는 “그래서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화 스토리에 묻어갈까 봐 관람을 미뤘다”고 대답하며, 연재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 중심으로 흘러가다, 각각의 인물에 감정이 조금씩 쌓이는 중반부터 가네코 후미코의 독립운동을 펼쳐 보일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웹툰에서 가네코 후미코의 불행한 어린 시절과 박열과의 만남, 무정부주의자로서 활동 등을 순차적으로 만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총 24화로 구성될 웹툰은 하반기에 연재가 시작될 예정이고, 웹툰의 상상이 어디까지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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