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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비친 장애인이 사는 세상은 어떨까?

조회수 2019. 9. 9. 17: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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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가 참 많이 있죠.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을 통해 장애인과의 공존을 다루고 그들이 사는 세상을 잘 표현한 영화는 어떤 게 있을까요?


발달장애인 탈시설의 현주소 다큐 '어른이 되면'
영화 <어른이 되면>의 한 장면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부모가 죽거나 돌봄 인력이 없어 사망하는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그대로 담은 노랫말이다.
장애 동생 18년 만에 함께 살기

뮤지션이자 인기 유튜버인 장혜영 감독에게는 13세에 장애인 시설에 입소해 18년간 그곳을 집으로 여기며 살아온 동생이 있다. 유튜브 채널 이름을 ‘생각 많은 둘째 언니’로 지을 만큼, 동생을 자기 정체성의 중심에 두고 있는 장혜영은 어린 시절 늘 동생을 돌보는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동생이 시설로 보내지고, 부모의 이혼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동생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었던 장혜영은 성인이 된 후 다시 동생과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1년의 준비 끝에 동생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왔지만, 시설에서도 ‘다루기 힘든 장애인’으로 취급되던 동생과 함께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복지 프로그램은 ‘서울 거주 6개월 이상’이란 조건을 요구했다.

장혜영 감독은 모든 활동을 접고 6개월간 동생 돌보는 일에 전념하며, 자신도 몸소 부딪히면서 알게 된 장애인 ‘탈시설’의 지난한 과정을 다큐멘터리에 담았다.


장혜영 감독은 자기 삶을 희생하며 동생을 돌보겠다는 생각으로 동생을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발달장애인들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사회와 격리된 채 시설에서 일생을 보내는 것이 비인간적 조치이며, 탈시설과 자활을 통해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부딪혀보니, 우리 사회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


영화에는 활동보조인 지원서비스 판정을 받기 위해 면접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면접관은 신체장애를 기준으로 작성된 듯한 문답표에 의거해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지, 혼자 화장실을 가고 뒤처리할 수 있는지 묻는다.


발달장애인은 개별 동작들은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놔둘 수는 없다. 자매에게는 월 93시간(하루 3시간)의 활동보조인 지원이 주어졌지만, 왜 그런 판정을 받았는지, 그 외 시간에는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미국 영화 '스탠바이, 웬디' 의 다른 결말
영화 <스탠바이, 웬디>의 한 장면

미국 영화 <스탠바이, 웬디>를 보면, 발달장애인이 시민의 일원으로 지역사회에서 사는 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웬디는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발달장애인으로 지역 재활센터에서 살아간다.


그곳은 한국의 대형 시설과 달리, 6~8명의 장애인이 거주하는 그룹홈 형태로 운영된다. 입주자들은 일반 가정과 유사한 자신의 독립된 방에서 자기 스케줄에 맞춰 생활한다. 출퇴근하는 센터장 이하 직원들은 음식과 집 관리는 물론, 일자리 알선이나 상담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웬디는 빵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퇴근 후 매일 TV로 <스타트렉> 시리즈를 보는 ‘덕후’다. 영화는 웬디가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공모전에 출품하려고 샌프란시스코에서 LA까지 홀로 여행하는 과정을 담는다.


이 여행은 웬디에게 큰 모험이자, 기존 가족과의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센터에 오기 전 함께 살았던 언니는 결혼과 출산으로 새로운 가족을 구성했기에 더는 웬디와 살 수 없다. 더구나 언니는 분노 조절이 힘든 웬디가 젖먹이 조카에게 위험한 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영화는 웬디의 여정을 통해, 그가 다시 가족 안으로 편입되는 결론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과의 지지와 소통에 힘입어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가게 되는 결말을 보여준다. 언니도 웬디가 위험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풀고, 웬디가 언니와 한발 떨어진 채 재회하는 결말은 담담하고 따뜻하다.

서로 다르지만 같은 주장, ‘인간답게’ 

지난 2018년 11월 20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의 실질적 이행을 담보할 예산 증액을 촉구했다. 


영화 <말아톤>이 나온 해인 2005년에 결성된 장애인교육권연대의 대대적 투쟁으로 2007년 ‘특수교육법’이 제정되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장애인 교육이 의무교육으로 보장되면서, 장애인들은 어쨌든 ‘갈 데’가 생겼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장애인들은 다시 사회에서 내쳐진다.


그동안 장애인 특수학교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권침해 사례와 유명무실한 일반 학교의 통합학급 운영이 도마에 올랐지만, 이런 사건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발달장애인을 한 사람의 ‘시민’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들이 교육을 받더라도 장차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발달장애인들의 학교를 교육기관이 아닌 주간보호시설쯤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는 말로 어린 장애인들을 억압하고, 막상 어른이 된 후에는 시설 안에만 가둬둔 채 몰개성의 장애인으로 순육하는 현실에서 장애인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결코 어른이 되거나 어른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영화 <말아톤>,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 미국 영화 <스탠바이, 웬디>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모성이나 자매애를 강조하며 발달장애인의 삶을 가족에게 묶어두려 하지 말고, 이들이 가족으로부터 독립해 지역사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해법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장애인이 가족의 짐이 되거나 시설에 격리되는 악마적인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사회의 지원을 받아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면서, 가족과는 느슨하게 공존하는 삶을 원하는 것이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죽임당하거나 죽이지 않기 위해, 오늘도 분투하는 장애인과 장애인 가족에게 더 나은 세계가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황진미_영화평론가, 대중문화 평론가


소개해드린 영화를 즐기며 장애인 이슈에 대해서 좀 더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을 어떨까요? 더불어 소수자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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