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휠체어 타는 앵커입니다."

조회수 2021. 4. 19. 16: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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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땀이 날 정도로 집중해서 뉴스를 읽었다. 긴장을 너무 한 탓인지 방송을 마치고 나니 눈물이 났다.

KBS 최국화 앵커의 첫 방송 소감입니다. 생활뉴스를 전하기 위해 최국화 앵커의 하루는 준비의 연속이었어요.


2006년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이후, KBS 앵커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평일 낮 12시에 시작하는 KBS 뉴스에는 특별한 점이 있어요. 뉴스 말미를 장식하는 ‘생활뉴스’ 진행자 때문인데요. 생활뉴스는 장애인 앵커가 진행을 맡고 있는 코너입니다.

생활뉴스를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됐는데요. 이 코너에서는 장애인 앵커의 이름을 당당히 내걸어요. 2021년 3월 29일부터 ‘최국화의 생활뉴스’로 코너의 명패가 바뀌었습니다.


KBS는 차별과 편견 없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2011년부터 2년마다 장애인 뉴스 앵커를 선발하고 있어요. 시각장애인 이창훈 앵커가 1기 장애인 앵커로 활약했고 이후 2기 홍서윤, 3기 임세은, 4기 이석현, 5기 임현우 앵커가 뒤를 이어 생활뉴스를 진행했죠. 현재는 2021년에 선발된 6기 장애인 앵커 최국화가 〈뉴스 12〉의 생활뉴스를 전하고 있어요.


생활뉴스의 시작을 알리는 화면부터 장애인 인식 개선 효과가 큰데요. 화면엔 휠체어를 타고 뉴스룸으로 들어오는 최국화 앵커의 모습이 나와요. 매일 방송되는 장면이죠.


“늘 당당한 장애인 앵커의 모습이 너무 멋있고 생방송 하는 여느 아나운서랑 다를 바 없었다. 그 모습이 나를 자극했고 마음을 뛰게 했다. 장애인 앵커에 지원한 계기다. 아직도 TV에 나오는 장애인의 이미지는 밝은 것보다 시혜와 동정의 시선으로 많이 비쳐진다.” 장애인을 향한 편견을 조금씩 줄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을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최국화 앵커는 말했어요.


최국화 앵커는 말끝마다 기분 좋은 웃음소리와 환한 미소를 지어요. 만개한 벚꽃으로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4월의 첫 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BS 본관에서 최국화(39) 앵커를 만났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입은 척수장애

최국화 앵커는 중국 유학 중이던 2006년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됐어요. “계단에서 추락하면서 척수 손상을 입었다. 중국에서 1차 수술을 했고 우리나라로 돌아와 병원 생활을 1년 정도 했다. 그 당시에 다른 척수 손상 환자들보다 재활 기간이 좀 짧은 편이었다.”


최국화 앵커를 빨리 일으켜 세운 힘은 가족과 그녀의 의지였는데요. “가족은 내게 항상 힘이 돼주었다. 한순간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남매를 혼자 키운 엄마에게 늘 죄송하고 감사하다. 다친 순간부터 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 ‘언니 멋있다, 최고다’ 늘 이렇게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매일 들으며 살다보면 진짜 내가 뭐라도 되는 사람 같고 무엇이든 하면 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우리 가족 팀워크가 장난이 아니다.” 불거진 눈시울에 말끝을 흐리며 최 앵커는 웃음을 지었습니다.

▶ 최국화 앵커가 서울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뉴스 진행에 대한 소감을 밝히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그의 밝은 에너지의 전파력을 빠르게 감지한 사람이 있는데요. 그의 담당 주치의입니다. 치료한 병원에서 내민 제안으로 최 앵커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어요.


“입원했던 병원이 국립재활원이었다. 지금은 원장인 당시 제 주치의 선생님이 ‘손상 예방 교육’을 처음 만들었다. 중국에 있을 때 한글 선생님으로 활동했고 한국에서 유아교육 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어서 강의를 제안 받았다. 은인이고 감사한 분이다.”


2008년 가을부터 시작한 강의 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열었어요. 장애인인식개선과 인권, 장애 이해 등 장애와 관련한 여러 강의를 10년 넘게 하고 있죠.


“강사계의 방탄소년단(BTS)이었다. 소화를 못할 만큼 강의 요청이 많았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대상자 연령과 특성에 따라 교육 내용과 커리큘럼을 다르게 준비한다. 국가인권위원회,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등 활동하는 기관도 다양하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후천적 사고 손상 예방 교육을 많이 했다. 이 교육의 반응이 정말 좋았다. 100번을 말해도 귓등으로 듣는 아이들에게 저를 통해 사고 손상을 눈으로 보여주고 예방할 뿐 아니라 어린이들의 장애인식개선도 같이 되는 걸 목격했다.”


강의는 또 다른 길을 열어주었어요. 2012년에 공익 채널인 복지TV에서 진행자 제의가 들어왔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장애인과 소외계층에 여행지를 소개하는 ‘배리어 프리 여행’ 프로그램인데요. 진행자 역할을 1년 정도 맡았습니다. 한국관광공사, 문화재청과도 일했죠. 또 척수장애인을 위한 앉아서 하는 운동법을 소개하는 재활스포츠 영상 모델, 장애인연금 홍보영상 모델, 삼성생명 광고에 목소리를 담기도 했어요.

첫 방송 마치고 나니 눈물이 주르륵

이런 일련의 도전들이 오늘의 최국화 앵커를 만들었어요.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들이 어느 순간 도움이 됐다. 매사에 어떤 일이든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중요하다. 심사위원들도 그 점을 좋게 봐준 것 같다. 아나운서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 아카데미를 다니지도 못했다. 많이 부족하지만 강의 활동이나 제 이야기에서 가능성을 좋게 평가해준 듯하다.” 앵커로서 앞으로 잘할 일만 남았다며 최 앵커는 또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힘주어 말을 덧붙였어요.


“준비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기회가 찾아 올 수 없고 이런 기회를 볼 수 있는 눈도 없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이든지 최선을 다하면 결국 모두 경력으로 남는다. 본인이 하는 분야에서 만큼은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면 좋겠다.”


KBS 보도본부로 출근한 지 2주 차에 접어든 새내기 앵커. ‘행복한 지옥’을 맛보고 있다는 그의 하루가 궁금한데요. “정규 아나운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아나운서 발성이 뭔지도 모르고 사투리도 남아 있었다. 6기 장애인 앵커로 선발되고 2주 동안 선배 아나운서가 가르쳐준 내용을 녹음해 듣고 또 들으며 연습했다.”


출처: KBS
▶ 최국화 앵커가 KBS ‘최국화의 생활뉴스’를 진행하는 모습

2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3월 29일 최국화 앵커의 첫 뉴스가 방송됐습니다. “쟁쟁한 선배들 사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없던 주눅도 생겼다. 폐만 끼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생방송의 무게감도 느꼈다. 멘토였던 이규봉 아나운서의 가르침대로 몸에 땀이 날 정도로 집중해서 뉴스를 읽었다. 긴장을 너무 한 탓인지 방송을 마치고 나니 눈물이 났다”며 첫 방송의 소감을 전했어요.


5분 남짓한 생활뉴스를 전달하지만 최국화 앵커의 하루는 준비의 연속이에요.


“오전 9시에 방송국에 도착한다. 출근하자마자 기사를 살펴본다. 책임 프로듀서(CP)가 그날의 뉴스 일정을 알려주면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고 시청자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앵커 멘트를 작성한다. 그다음 메이크업을 받고 복장까지 완벽하게 준비한다. 12시 뉴스가 시작되면 흐름을 파악하면서 순서를 기다린다. 12시 30분에 스튜디오에 입장한다.”

모든 가능성을 위한 끝없는 도전

최국화 앵커의 도전은 끝난 게 아니에요. 그는 2021년부터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데요. 국내에 장애학과의 문을 연 대구대학교 조한진 교수 밑에서 장애학을 배우고 있습니다. “뉴스가 없는 주말엔 대구에 내려간다. 남자친구와 함께 대학원에 다닌다. 남자친구도 사고로 척수 손상을 입어 휠체어를 탄다. 10년을 만났는데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항상 저를 채찍질한다. 친구이자 경쟁자다. 장애학은 사회 환경적으로 접근하는 학문이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진취적인 학문이며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박사과정까지 공부할 생각이다.”


최 앵커가 뿜어내는 밝은 빛에 주변도 환하게 밝아집니다. 인터뷰 당일 최국화 앵커 무릎에 첫 뉴스 진행을 축하하는 케이크가 올려져 있었는데요. 케이크 한가운데 투피스 정장 차림의 여자 모형이 서 있어요. “케이크에 있는 인형이 나다. 인형이 입고 있는 의상을 삼성물산과 내가 함께 만들었다. ‘트위드 투피스’를 좋아한다. 직업 특성상 자주 입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치마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옷을 입고 앵커 면접을 봤다. 나한테는 기운이 좋은 옷이다.”


최 앵커는 앵커가 되기 전에 장애인을 위한 전문 캐주얼 브랜드의 모델로 참여한 적이 있어요. 수익금 전액을 장애인 지원사업에 기부하는 사회공헌 프로젝트인데요.


“이 브랜드의 슬로건이 ‘모든 가능성을 위한 패션’이다. 손이 불편하거나 휠체어 타는 분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바지 같은 경우 찍찍이, 지퍼 대신 고리로 당길 수 있게 만들어 앉았을 때 엉덩이가 보이지 않게 길이를 길게 한다. 세상에 태어나 이만큼 편안한 옷을 입어보지 못했다.”


최국화 앵커의 활동에서 단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장애인의 패션 선택권, 장애인 의복문화 인식개선에 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소외된 분들이 저를 통해 행복 느꼈으면”

뉴스 앵커는 2년 계약직이에요. 이에 대해 최국화 앵커는 “정직원 채용으로 발전되리라 믿고 있다. 잘 닦아놓겠다”며 장애인 앵커로서 책임감을 보였어요. 또 “장애로 소외되거나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게 어려운 분들이 많다. 나를 보고 ‘저 친구도 하네, 나도 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라도 얻기를 바란다. 내가 어둠의 빛을 뚫고 나와 행복한 기분을 만끽한 것처럼 나를 통해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뉴스 앵커로서 포부도 덧붙였는데요. “많이 부족하다. 많은 사람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 전달할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는 앵커가 되겠다.”


최국화 앵커의 누리소통망(SNS)을 보면 여행 사진이 많은데요.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꿈이 세계일주다. 여행 경험이 제 인생에는 보물 같은 순간이다. 이곳저곳 많이 돌아보고 경험해보고 싶다. 앵커로서 많은 시청자에게 생생한 정보를 전해줄 수 있도록 그 순간들을 담아드리고 싶다.”


최국화 앵커가 뉴스를 넘어 여행 진행자로 활동을 넓힐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출처: 한국장애인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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