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현상'이 만든 또 다른 파급효과

조회수 2021. 4. 14. 11: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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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BTS, 블랙핑크 등 K-팝 성공은 어떤 의미인가요?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몇 년만 지나면 없어질 유행이라는 국내외 미디어들의 회의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K-팝의 상승세는 폭발적"이나, "놀라움보다는 응당 그럴만한 결과라는 반응"이 많다고 언급했는데요. "우리에게도 BTS가 있었지" 기고문으로 자세히 알아볼까요?


필자가 유학 차 미국으로 처음 건너갔던 2007년 무렵의 일이에요. 조교를 맡았던 수업의 첫 강의가 끝나고 대여섯 명 정도의 여학생들이 강단 앞으로 몰려왔죠. 수줍은 표정을 짓던 그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를 듣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러 왔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그 반가움의 이유가 참 신기했어요. 자신들을 K-팝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힌 그들은 내가 굳이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들의 ‘최애’ 가수들을 읊기 시작했는데요. 소녀시대, 동방신기 그리고 빅뱅…. 한국계도 아닌 아시아계도 아닌 학생들의 입에서 어설픈 발음으로 K-팝 아이돌의 이름이 불리는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중에서 한 여학생의 말은 한동안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죠. “태양(빅뱅의 멤버)은 너무 섹시해요!” 단 한번도 ‘성적으로 매력 있는’ 존재로 여겨진 적이 없었던 아시아계 남성이 K-팝이라는 유행을 타고 ‘섹시한’ 존재로 재인식되기 시작한 것이에요. 정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죠.


K-팝의 국제적 성공에 무신경해진 우리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흘렀어요. 몇 년만 지나면 없어질 유행이라는 국내외 미디어들의 회의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K-팝의 상승세는 폭발적인데요. 산업·인종·지역적인 한계를 생각한다면 실질적인 지배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몇 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자연스럽게 대중의 안목이나 기대 수준도 올라갔죠. 방탄소년단(BTS)이 내놓는 신곡들이 빌보드 차트 정상에 잇달아 오르고 있는 요즘, K-팝 아이돌의 전 세계 아이튠즈 성적에는 그 누구도 특별히 놀라움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블랙핑크 로제의 신곡이 1주일도 안 돼 유튜브 1억 뷰를 달성했지만 놀라움보다는 응당 그럴 만한 결과라는 반응이죠.

싸이의 ‘강남스타일’ 열풍에는 조형물을 만들어주고 길을 새로 만들 만큼 호들갑을 떨던 우리지만 이제 이런 소식들은 흘러가는 뉴스의 토막기사 정도로 언급될 뿐인데요. 그만큼 K-팝의 국제적 성공이 흔해진 것이니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현대 가요 70여 년 동안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성취 앞에 우리가 너무 무신경해진 것은 아닌가 싶어 야속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에요.


최근 있었던 그래미 시상식의 결과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인데요. BTS가 아시아 팝 역사상 최초로 ‘최우수 팝 듀오/그룹’ 부문에 올라 테일러 스위프트나 레이디 가가 등 미국 최고의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심지어는 아시아 팝 가수 역사상 최초의 단독공연 무대도 성공시켰지만 어째 돌아오는 반응은 미지근하죠.


K-팝에 많은 애정을 가진, 그리고 미국에서 K-팝이 오늘의 결과를 얻기까지 걸어온 그 치열한 싸움의 과정을 아는 평론가로서 과민반응을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언론의 보도는 어떠했나요? 그래미 시상식이 열린 당일 BTS의 수상 ‘실패’를 부각하는 기사들이 쏟아졌어요. 물론 수상을 하지 못했으니 그 말도 틀린 건 아니죠. 그런데 BTS의 아시아권 팝 음악 최초의 그래미 후보 지명이 과연 ‘수상 실패’라는 결론으로 마무리지어져 기록돼야 하는 하찮은 사건일까요? 이것은 사실 이전에 관점과 태도의 문제인데요.


BTS 현상이 만든 또 다른 파급효과

출처: 방탄소년단 공식 트위터
▶<제63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팝 듀오/그룹’ 후보에 오른 방탄소년단(BTS)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총격사건 등 아시아인 혐오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흑백 인종차별 금지 인권운동과는 또 다른 어찌 보면 사각지대에 놓여 그 누구도 관심 두지 않았던 아시아계를 향한 인종차별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공분을 자아내고 있죠.


누리소통망(SNS)을 중심으로 ‘아미’(BTS 팬클럽)를 비롯한 수많은 K-팝 팬이 규탄의 목소리에 동참하는 모습은 흥미로워요. K-팝이 일군 공동체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 반대에 맞서는 중요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는 증거죠. 이 또한 ‘BTS 현상’이라 말할 수 있어요.


독일 공영방송 진행자의 인종차별 발언, 아직 보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그래미에 대한 서운함 등에서 누적된 이들의 분노는 서구 및 미국 사회 주류의 변함없는 기득권과 우월의식, 차별주의에 대한 한층 더 매서운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BTS 현상이 만들어낸 파급효과는 이렇게 엄청나죠.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BTS의 그래미 후보 지명이 아닌 ‘수상 실패’에 초점을 맞춰 그것이 마치 당연히 가져와야 하는 올림픽 효자종목의 금메달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건강이 나빠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봉주 선수를 보며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당시 그의 선전이 떠올라요. 마라톤 올림픽 은메달이라는 금자탑을 세웠지만 그의 은메달은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의 그늘에 가려 한동안 ‘실패’로 회자됐죠. 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최근까지 우리 마라톤의 마지막 ‘은메달’이었어요. 그 누구도 그 비슷한 기록조차 내본 적이 없죠.


K-팝 붐의 화려함에 둔감해진 우리는 당분간 중요한 가치를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는 서글픈 생각이 들어요. 먼 훗날 지금을 떠올리며 이렇게 생각할지도 몰라요. ‘우리에게도 BTS가 있었지’라고요. 우리는 역사를 목격하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김영대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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