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하다', '공허하다'를 입버릇처럼 외친다면?

조회수 2021. 4. 2. 18: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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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일상생활에 많은 부분을 포기하게 되면서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 원장은 "우울하다"는 호소에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는데요. 세대에 따라 양상이 다르지만 중년 우울증 환자의 경우, "허무하다", "공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합니다. 우울증 증상과 극복 방법을 김병수 원장에게 들어봐요!


그의 이름은 알지 못하더라도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정신과 의사. 몇 권의 책을 쓴 저자.’ 블로그 대문에 적힌 소개처럼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병수 원장은 병원 진료를 넘어 방송과 연재, 저서, 블로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요. 거창하게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해소하거나 친근함을 높이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등의 목적은 아니에요. “순전히 그냥 재밌고 좋아서”라는 게 이유입니다.

출처: 김병수

1999년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전공의를 시작한 김 원장은 2018년 1월 자신의 이름을 건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개원했어요. 무엇보다 다른 병원에 비해 상담 시간이 긴 것이 특징이에요. 초진 환자가 오면 적어도 1시간은 상담하고 재진 환자도 기본적으로 15~25분의 충분한 시간을 들여 환자 얘기를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정신과에서 환자 이야기를 많이 듣는 건 당연한 일이다”라며 “개원하며 다짐했던 것 중 하나가 환자가 요구하는 만큼 충분한 시간을 내주자는 거였다”고 말했어요. 진심 어린 상담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싶다는 그에게 우울증에 관한 증상과 극복 방법 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출처: 교보문고
▶김병수 원장이 쓴 <사모님 우울증>, <상처는 한번만 받겠습니다>

Q.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실제로 상담 건수가 늘었는지요?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 수가 늘었습니다.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환자들의 호소 자체가 달라졌다는 게 더 인상적이에요. 감염병에 대한 공포로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전반적인 삶의 방식을 갑자기 바꿔야 하는데 그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특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환자 중 자영업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우울 등 증상이 더 심해졌죠. 코로나19로 상담 주제가 참 많이 바뀌었어요.

Q.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를 소개해 준다면요?

알코올의존증 치료제를 꾸준히 복용하고 있던 돈가스 전문 식당 사장님은 코로나19 때문에 매출이 10분의 1로 줄어서 매일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고 했어요. 중국에서 상품을 수입해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또 다른 업체 사장님은 이달 들어 폐점 상태라고 했죠. 그래서 평소 먹던 항우울제를 늘려야만 했어요. 감정 조절이 안 돼 치료 중이던 30대 주부는 요즘 들어 아들에게 짜증을 더 많이 낸다며 “내가 나쁜 엄마예요”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운동으로 우울증을 조절해오던 환자가 “체육시설이 문을 닫아서 운동을 못 했더니 자꾸 우울해져요”라며 재발을 걱정했어요.


집에 갇혀 있다시피 했더니 불면증이 심해졌다는 환자도 늘었습니다. 사회성을 훈련 중인 청년에게 “모임에 나가 친구를 사귀라”는 과제를 내줬는데 “선생님, 코로나19 때문에 숙제를 못 했어요”라며 당당하게 변명했어요. 마트에만 가면 호흡곤란이 오는 등 공황장애 환자는 코로나19가 무서워 마트에 더 못 가게 됐다며 한탄했어요. 이렇듯 세상 문제가 정신건강의 문제들을 압도해버렸습니다.

Q. 자신 혹은 주변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는지요?

“우울하다”는 호소에만 주목해서는 안 돼요. 우울증은 세대에 따라 양상이 다릅니다. 소아·청소년 환자는 우울증보다는 짜증이나 반항이 더 많습니다. 공부하는 데 문제가 생기고 신체적인 증상, 특히 두통이나 복통을 호소하는 게 흔하죠. 청소년의 행동 문제 또한 우울증이 원인인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중년 우울증 환자는 걱정 때문에 더 괴로워합니다. 건강염려증이나 죄책감 호소가 흔하죠. 우울보다는 “허무하다”, “공허하다”는 말을 더 자주 합니다. 화병처럼 속에서 뭔가 꽉 막힌 것 같다는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것도 흔한데 주로 “가슴에 불덩이가 있다”, “소화가 안 된다”, “답답하다”는 호소를 합니다.


노인 환자‘비특이적인 신체 증상’이 흔합니다. 아프다고 하는데 자세히 설명을 못 하거나 말이 자꾸 바뀌어요. 검사를 해도 이상은 없는데 픽픽 쓰러지고, 어지럽고 기운이 없다고 합니다. 딱 부러지게 아픈 것을 못 짚어내죠. 불면증이 특징적으로 흔하고 불안·초조가 동반됩니다. 기억력 저하도 특징입니다. 그래서 치매를 걱정하기도 합니다.

Q. 우울함과 스트레스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우울증만 예로 들면 우울증 환자는 당뇨, 고혈압, 고지질혈증 등의 대사장애가 더 잘 생깁니다. 심장병 유병률도 높아지죠. 이 밖에도 신체질환 중 우울증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질환이 없을 정도입니다. 뇌와 몸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지요. 스트레스호르몬, 생체주기의 변화, 염증 반응의 변화, 자율신경계의 변화, 신경전달물질의 변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경로로 뇌의 우울증이나 스트레스가 신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이것이 누적되면 신체질환의 유병률이 높아지죠.


신체질환으로 발병하지 않더라도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통증이 생기기도 하고, 신체적 증상이 생기는 일도 흔하죠. 공황장애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곤란을 느끼고 땀을 흘리고 떨리고 어지럽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화병 환자는 계속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된다고 하면서 심장내과, 소화기내과를 찾아다니지만 원인을 못 찾다가 나중에 정신건강의학과에 옵니다. 너무 많아서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네요.

Q. 우울감이나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답이 달라지겠죠. 저는 행동 활성화와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행동 활성화 치료는 생활 사건들이 긍정적 강화를 감소시키고 자기 비난을 증가시켜 우울감을 일으키고 사회적으로 위축되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 여기서 생활 사건이란, 일상생활의 어려움이나 지속적인 작은 스트레스부터 중대한 삶의 변화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기분장애는 라이프스타일 질환입니다. 저는 환자들에게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만이라도 하라고 합니다. 매일 아침 따뜻한 물로 샤워만이라도 하라고 해요. 우리의 기분은 힘이 셉니다. 기분에 내 행동과 생각이 좌지우지되죠. 기분이 먼저입니다. 생각보다 기분이 앞서고, 그 기분이 생각과 행동을 결정합니다. 생각을 바꾸면 기분이 바뀔 거라고 하지만 그것보다는 기분에 따라서 행동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걸 두고 ‘정서 우선주의’라고 합니다. 기분 때문에 우울한 생각을 하고, 덜 움직이게 되는데요. 기분에 따라서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다 보면 기분이 바뀌고 생각이 바뀝니다. 몸부터 살살 달래가며 활성화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부정적 생각도 몸으로 털어버려야 해요.

Q. 정서적·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진실은 단 하나예요. 그건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수용이라고 하는데요. 상처, 열등감, 실수와 실패의 기억,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자기의 못난 부분을 모두 끌어안는 것이죠. 자존감을 올려보겠다고 과거의 상처에만 파고드는 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가능하지도 않지만 콤플렉스를 말끔히 날려버린다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없애려고 애쓰지 않아야 합니다. 상처에만 매달려서는 상처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어요. 그저 묵묵히 그 아픔을 다시 거둬들이는 길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상처를 없애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벗어나 주어진 소명에 전념해야 자존감은 올라갑니다. 수용과 전념을 통해 나라는 사람은 어제보다 조금 더 성숙해져요. 자존감을 높여준다는 책을 읽고 연습 문제를 푼다고 자존감이 커지는 게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아프지만) 받아들이고 삶이 던져준 소명에 헌신할 때 자연스럽게 커지는 것이 자존감입니다. 자신을 사랑해야 행복해진다고 말하지만, 그것보다는 타인을 향해 사랑을 나눠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어요. 아름다운 삶이란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향해 멈추지 않고 행동할 때 일궈낼 수 있는 것입니다.

Q. 최근 젊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시나요?

우리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가치 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연결돼 있다’, ‘생존에 위협 없이 안전하다’라는 세 가지 느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면 심리적 건강에 필수적인 이 세 가지 성분이 충족될 수 없기 때문일 테죠.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연결성에 대한 욕구와 충족이 더 중요합니다. 관계 지향적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코로나 시대에는 관계성을 통해 충족되는 심리적 욕구가 자연스럽게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더 취약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불평등한 사회구조도 문제인데요. 똑똑하고 뛰어난 젊은 여성이 사회적 불평등 구조 속에서 자신의 일과 노력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여성을 보호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Q.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사회적 노력과 과제는 무엇인가요?

자살률은 쉽게 낮아지지 않습니다. 우울증을 잘 치료한다고 해서, 사회안전망을 잘 갖춘다고 해서 쉽게 줄어들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핀란드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이지만 우울증 유병률은 미국과 거의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자살 행동은 개인-사회-문화-가족-일 등이 복합적으로 연관된 문제라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비관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노력보다는 개개인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어야 해요. 자기가 원하는 바를 스스로 깨닫고, 그것이 존중받으며 삶에서 꾸준히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가 구축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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