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세계를 '알고자 하면' 이 섬으로 가라!

조회수 2021. 3. 5. 15: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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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독특한 이름을 가진 섬, 통영 '욕지도'를 가보셨나요? 욕지도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고 해요. 이길우의 글로 욕지도 이름에 대한 궁금증도 풀고, 섬의 모습을 함께 둘러봐요.


연꽃은 진흙투성이의 지저분한 물속에 뿌리를 내리지만 맑고 순결함의 상징이다. 연꽃이 사는 연못은 고통의 공간이다. 더럽고 지저분한 환경은 인간이 사는 동안 벗어날 수 없는 고통과 절망의 굴레이다. 그 속에서 피어난 연꽃은 인간에겐 희망이다. 불교에서 연꽃은 극락이다. 신라 시대 의상과 원효, 자장 스님이 이 땅에 전파한 화엄종의 경전인 <화엄경>에서 묘사하는 이상적인 세계는 연꽃이다. 세계의 맨 밑에는 바람으로 채워진 풍륜(風輪)이 있고, 그 위에 향수의 바다가 있고, 이 향수의 바다에 한 송이의 큰 연꽃이 있다. 이 연꽃의 세계가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이다. 그러니 연꽃이 바로 극락의 세계이다.

▶욕지도의 일출 모습. 동쪽 바다가 붉게 물들었다.

통영에서 배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욕지도에 가면서 여객선 뒤의 푸른 바다에 화려하게 피어오르는 흰 포말을 바라보며 커다란 연꽃에 펼쳐지는 정토의 세계를 상상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욕지도라는 이름 때문이다. 매우 독특한 어감의 섬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욕지항 안에 또 하나의 작은 거북이 모양의 섬이 목욕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욕지라 했다는 설이 있고, 과거 많은 인물이 유배지인 이곳에서 욕된 삶을 살다 갔다 해서 욕지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설은 틀렸다. 욕지도 주변에 연화도, 두미도, 세존도가 있다. 또 미륵도와 반야도가 있다. 모두 불교 용어에서 따온 지명이다. 불교 용어 시리즈인 셈이다. <화엄경> 구절인 ‘욕지연화장두미문어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於世尊)’에서 따온 것이다.


즉 “연화장(극락세계)을 알고자 하면 그 시작과 끝을 부처(세존)에게 물어보라”는 뜻이다. ‘욕지’는 ‘알고자 하면’인 것이다. 아! 남해 다도해에 이렇게 지식욕을 지독하게 자극하는 섬 이름이 있다니….


연꽃에 둘러싸인 연화열도의 맏형

▶욕지도 대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욕지도와 다도해. 전망대까지는 모노레일로 이동할 수 있다.

욕지도 최고봉은 천왕봉(해발 392m). 그 천왕봉 바로 아래 대기봉(해발 355m)에 전망대가 있다. 섬을 온전히 감상하려면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 왜냐하면 섬은 사실, 산의 꼭대기인 셈이다. 육지의 산이 바다에 잠기며 간신히 숨을 쉬고 있는 곳이 섬이다. 그러니 산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듯, 섬에 가면 꼭대기에 올라야 한다. 욕지도에는 2019년 10월 개통한 모노레일이 대기봉 정상까지 친절하게 데려다준다. 다소 생경하긴 하다. 섬에 모노레일이라니…. 하지만 대기봉까지 2km 거리의 궤도를 16분 동안 천천히 오르는 동안 서서히 드러나는 다도해의 절경에 누구나 환호성을 지른다. 마치 연꽃으로 둘러싸인 불교의 극락정토를 보듯, 아래 사바세계에서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던 전혀 다른 감동이 밀려온다.

▶욕지에 관광 온 중년 부부가 바닷가 의자에 앉아 상념에 잠겨 있다.

연화도와 우도, 외초도, 내초도 등과 멀리 아스라이 매물도와 소매물도, 거제도 등이 푸른 바다 위에 유혹하듯 자리 잡고 있다. 욕지의 의미를 알고 나니 눈앞의 바다는 더 이상 바다가 아니다. 붓다의 심오한 가르침이 확 펼쳐진 불경이다. 저 멀리 수평선이 만드는 하늘과 바다의 구분도 의미가 없다. 이런 장소에서는 사진 찍는 것도 부질없이 느껴진다. 그냥 무심히 오랫동안 멍하니 멀리 바라본다.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은 희미해지다가 결국은 사라지는 것. 무엇이 아쉬워 사진으로 남겨 억지로 기억하려고 애를 쓸 것인가. 그냥 추상(抽象)으로 두루뭉술하게 뇌리 한쪽에 잠시 보관해두자.


연화열도의 맏형 격인 욕지도는 남쪽 끝 먼바다에서 거친 풍랑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 욕지도는 큰 섬이다. 해안선 31㎞를 일주하는 도로가 있으니 자동차를 갖고 가는 것이 욕지도를 ‘욕지’하기에 편하다. 차가 없다면 투어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대기봉에서 내려와 해안가를 돌아본다.

비렁길을 걷다 마주하는 황금빛 일몰

▶욕지도의 일몰

욕지도의 해안가 트레킹 코스는 ‘비렁길’. 벼랑길의 현지 말이다. 부두에서 5분 정도 차를 달리면 3개의 출렁다리가 있는 비렁길에 도착한다. 욕지도를 유명하게 만든 해안가 해식절벽의 절경이 장엄하게 펼쳐진다. 태평양을 마주한 절벽답게 높고 크다. 멀리 삼여(三女)도가 보인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섬이다.


물론 전설이 등장한다. 900년이 넘은 이무기가 도술을 부려 멋진 청년으로 변신했다. 용왕의 아름다운 세 딸은 다 함께 청년을 사랑했다. 용왕은 화가 났다. 세 딸을 하나의 바위로 만들어버렸다. 절망한 이무기는 산을 부숴 그 옆에 2개의 섬을 만들어 바다를 막아버렸다. 이루지 못한 젊은 남녀의 사랑이 하염없이 파도로 흩어진다. 애틋한 마음으로 비렁길을 걷는다. 동백나무로 울창한 비렁길은 바닥의 부드러운 흙이 마치 카펫처럼 나그네들을 정겹게 받아준다.


욕지도의 일몰은 장관이다. 서쪽 해안도로의 일몰 전망대에 도착해 해 떨어지길 기다린다. 나무 데크에 앉아 편한 마음으로 황금빛 일몰을 즐긴다. 이달균 시인은 <연화열도를 지나며>라는 시에서 욕지의 일몰을 이렇게 노래했다.

남으로 달려오던 소백은 허기져/욕지도 인근에서 그예 드러누웠다/열도의 지치고 지친 등뼈가 외롭다//벗이여 옹이 맺힌 노래를 어쩔거나/찢겨 우는 바람의 생채기를 어쩔거나//… 봄 간다 섬섬옥수, 썰물도 쓸려 간다/절창의 가락 속에 꽃 진다 하염없이/심해에 닿을 수 없는 저 일몰의 낙화여
▶부둣가에 건조시키고 있는 생선

이제 욕지도의 특산물인 고등어를 마주해야 하는 저녁 시간이다. 서울 등 육지에서 먹는 국내산 고등어는 대부분 욕지도에서 보낸 것이다. 욕지도 바다에는 고등어를 키우는 가두리 양식장을 흔히 볼 수 있다. 욕지도는 일찍부터 어업이 발달했다. 워낙 어장이 풍성했다. 욕지도는 일제가 식민지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았던 어업 이민지 중 하나였다.


욕지도에 고등어 파시가 열리곤 했다. 1915년경에는 조선인 2만여 명, 일본인 2000여 명 등 섬 인구가 2만 명을 넘을 정도로 번창했다. 당시 욕지도에는 자부랑개 마을에 기생(게이샤)을 둔 술집 40곳이 생겨났다. 밤마다 지친 뱃사람들의 술에 취한 노랫소리가 넘쳤다. 지금은 근대문화역사거리로 흔적만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당구장, 목욕탕 등이 있다.


<도덕경> 구절을 딴 이름의 유일한 빵집

▶욕지도 특산품인 양식 고등어 회

10년 전부터 양식에 성공하며 욕지도의 고등어는 사철 싱싱한 횟감이 됐다. 부둣가에 있는 해녀포차 식당에 들어갔다. 벽에 주의 사항이 적혀 있다. 주인이 목소리가 크더라도 놀라지 말라는 것이다. 화가 나서 목소리가 큰 것이 아니라 오랜 물질로 청각 기능이 떨어진 탓이니 양해해달라는 것이다. 주문받는 주인의 목소리가 크긴 크다. 잠시 후 식탁에 놓인 고등어회는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을 뽑는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그대로 썰어 내온 두툼한 회는 껍질의 푸르고 흰색과 육질의 붉은색이 뒤섞이며 침샘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고소한 회는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사르르 녹아 사라진다. 아쉽다. 고등어회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욕지도 유일한 빵집인 무무 베이커리의 이동열 사장

식당 옆에는 욕지도에서 유일한 빵집이 있다. 간판이 무무(無無) 베이커리이다. 디저트를 먹을 겸 들어간다. 부부가 운영한다. 부산이 고향인 주인장 이동열(50세) 씨는 아내의 고향으로 이주했다. 20세 때 결심했다고 한다. 20년 뒤에는 자연에서 살겠다고. 부산에서 먹거리 소비자운동과 농민운동을 하다가 애초 결심한 대로 40세에 욕지도에 와서 빵집을 차렸다.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인 ‘위무위 사무사(爲無爲 事無事)’에서 무무를 따왔다. 농부는 행함이 없음을 실천하고, 일 없음을 일삼아 하늘이 하는 대로 손만 보탠다고 했다. 욕지도 특산물인 고구마를 빵에도 넣고 고구마 라테도 만들어 판다. 빵 진열대 아래 여행용 가방이 여러 개 있다. 육지에서 여행용 가방에 책을 가득 넣어 보내면 섬 주민들이 그 책을 돌려본다. 여행용 가방 주인의 마음이 예쁘다.


ⓒ이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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