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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담벼락 벽화가 불러온 '반전'?

조회수 2021. 2. 5. 18: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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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해 묵호항의 논골담길 가보셨나요? 동해 해안가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아기자기한 벽화가 가득이라고 합니다.


이길우의 '골목 담벼락에 추억 새기니 마을이 되살아났다' 기고문으로 함께 묵호항 구경 가볼까요?


묵호(墨湖) 앞바다는 유난히 검다. 말 그대로 진한 먹물[墨]을 뿌려 놓은 듯하다. 수심이 깊어서일까? 아니면 이름을 의식해 검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마도 걱정이 깊어서일 것이다. 묵호 앞바다가 환히 보이는 논골담길 마을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바람의 언덕’에는 ‘만복이네 식구들’이라는 동상이 있다. 아이를 업은 아낙네가 먼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옆에는 바둑이가 꼬리를 치켜들고 역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로 힘차게 떠난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애잔하다. 그 남편은 돌아왔을까? 기다리다 지친 아내는 그대로 망부석이 된 것은 아닐까?


한 시인은 바람의 언덕에 이런 시를 남겼다.

바람 앞에 내어준 삶
아비와 남편 삼킨 바람은
다시 묵호 언덕으로 불어와
꾸들꾸들 오징어, 명태를 말린다
남은 이들을 살려 낸다
그들에게 바람은
삶이며 죽음이며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간절한 바람이다.

아비와 남편을 삼킨 바람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하지만 그 바람은 육지로 되돌아와 오징어와 명태를 말려 남은 가족을 살렸다. 삶과 죽음이 바람결에 윤회(輪回)한다. 검은 바다에 바람이 분다.

1960~1970년대 풍경 그대로 남은 달동네

▶논골담길 골목길에는 묵호 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벽화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금은 바로 옆에 동해항이 생기며 초라한 항구가 된 묵호는 한때 동해안 최고의 번화한 항구였다. 1941년에 개항한 묵호항은 1964년 국제항으로 승격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음식점과 술집이 밤낮으로 흥청댔다. 험한 파도를 헤치고 생선을 가득 채워 항구로 돌아온 바다 사내들은 대폿집에서 회포를 풀었다. 무연탄과 시멘트를 나르는 배들도 묵호항의 주인공이었다.


백화점도 생겼고, 극장이 세 곳이나 있었다. 매일 밤 항구는 오징어잡이 배 불빛으로 대낮처럼 환했다. 돈이 넘쳤다. 묵호에는 길거리 개들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했다.

▶좁고 가파른 논골담길 골목길

논골담길 마을은 아직도 1960~1970년대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달동네다. 일제강점기에 묵호항이 개항하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항구와 이어지는 산꼭대기까지 슬레이트집과 판잣집이 자리 잡았다. 화장실도 대문도 없었다. 아랫마을에는 주로 뱃사람들이, 윗마을에는 덕장 인부들이 살았다. 주민들은 명태와 오징어를 담은 고무 함지박을 지게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마을에서 가장 높은 묵호 등대 주변에 있는 덕장을 오르내렸다.

▶강인한 바닷가 아주머니를 원더우먼처럼 그렸다.

명태와 오징어를 말려서 파는 것이 논골 윗마을 주민들의 주된 수입원이었다. 덕장까지 가는 오르막 좁은 골목길은 함지박에서 흘러넘친 물로 늘 질퍽거렸다. 마치 모내기 철 논두렁처럼 장화를 신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논골이다. “마누라나 남편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생겼다. 다 옛날이야기다. 바다 수온이 올라가 동해 바다에서 오징어와 명태가 안 잡히면서 주민들은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마을 담벼락 벽화가 불러온 ‘반전’

그런 논골마을에 10년 전부터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리기 시작했다. 마을 이름에 담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코로나19 이전엔 한 해 50만 명의 관광객이 논골담길 마을을 찾았다. 바로 나지막한 담장에 그려진 그림 덕분이다. 지금은 골목길이 질퍽대지 않는다. 시멘트로 포장됐다. 굴 껍데기같이 딱딱하다. 벽화는 낡아서 금이 간 벽을 감추기 위한 그림이 아니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온 우리네 이웃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어시장 아줌마의 수다도 벽화의 좋은 소재다.

언덕 위의 한 벽화를 보자. 주민들이 공동으로 쓰던 화장실의 외벽이다. 어시장 좌판에서 오징어를 손질해 파는 두 아주머니가 주인공이다. 둘 사이의 대화가 말풍선에 담겨 있다. 한 아주머니가 이렇게 말한다. “논골 영식아제 새장가 간다우∼.” “샥시가 스므살 어리다꼬. 왕문어 마이 묵은갑제.” 이 말을 들은 옆의 아주머니가 이렇게 받아친다. “새장가 든다고? 왕문어 지만 쳐묵나. 울 영감도 매일 묵어쌌는데 쯧.” ‘쯧’에서 보는이의 웃음보가 떠진다.

▶한때 오징어와 명태는 묵호를 기름지게 만들었다.

한때 2만여 명이 살던 논골담길 마을엔 이제 500여 명의 주민만 남았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아주 천천히 골목길을 올라가 본다. 논골담길은 등대오름길, 논골1길, 논골2길, 논골3길 등 네 골목으로 나뉘어 있다. 비좁고 가팔라 빨리 올라갈 수도 없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길 한쪽의 오색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온갖 사연을 품은 바람의 속삭임을 느끼며 담장 벽화를 천천히 ‘감상’하는 여유는 필수적이다. 힘이 들면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사서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와 대화를 나누자.


노란 양은 주전자가 노가리 안주와 함께 큼직하게 그려진 벽화엔 이런 문구가 있다. “오징어와 명태는 넘실대던 ‘묵호의 희망’이었다.” 주전자엔 시큼한 막걸리가 가득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 시절 묵호는 ‘넘실댔다’. 멋진 표현이다.

젊은 작가와 마을 어르신이 함께 그려

조금 더 올라가니 검은 바다 위에 노란 등불을 밝힌 오징어잡이 배들이 줄지어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함께 써 있는 문구가 가슴을 파고든다. “오늘도 아버지의 등불은 검은 바다 위를 서성인다.” 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아버지를 걱정하는 자식의 애틋한 마음이다. ‘서성인다’는 표현에 바닷가 삶의 스산함이 배어 있다.

▶오징어를 가득 담은 지게를 힘들게 지고 골목길을 올라가는데, 아이가 살짝 한 마리를 집는다. 아마 알고도 모른 척했을 것이다.

골목길에 펼쳐진 그림은 추억의 파노라마다. 고된 뱃일을 마친 일꾼들이 매일 들러 피로를 풀었던 대폿집, 먹고사는 데 필수품이었던 장화, 코흘리개 아이들이 드나들던 구멍가게, 옛 이발소, 오징어가 가득 찬 지게를 진 아저씨, 논골상회의 아이스크림 냉동고, 빨랫줄에 매달아놓은 오징어, 억척스럽게 살아온 논골마을 아낙들…. 한평생 바다와 함께한 논골 사람들의 신산한 삶이 연작시처럼 정겹게 녹아 있다. 그린 이가 ‘동네 경로당 어른신’인 액자에 넣은 그림들도 긴 돌담을 장식한다. 골목 벽화는 바람과 햇볕에 바래가지만 그때를 부르는 감성의 여운은 진하다.

▶10년 전 평범한 논골마을을 관광객이 몰리는 논골담길 마을로 변모시키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조연섭 동해문화원 사무국장이 골목길에서 포즈를 취했다.

담장 벽화는 수십 년 동안 폐허 같던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10여 년 전이다. 동해문화원이 ‘어르신생활문화 전승가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을 어르신과 젊은 미술대학 졸업생들이 손을 잡고 골목길을 ‘지붕 없는 갤러리’로 바꾸기 시작했다. 벽화의 밑그림은 미대생 출신들로 구성된 ‘공공미술 공동체 마주보기’ 회원들이 했고, 채색은 60~70대 마을 어르신들이 했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조연섭 동해문화원 사무국장은 “마을 공터에 어르신들을 모셔다 놓고, 물감을 칠하는 요령을 교육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살고 있는 현지 어르신들이 참여해 만든 벽화가 의미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 국장은 “해마다 벽화를 새로 그렸다. 벽화를 통해 마을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청년작가들 대상 ‘한 달 살기’ 프로젝트도

▶논골담길 마을의 꼭대기인 바람의 언덕에 있는 포토 존. 검푸른 묵호 앞바다가 배경이다.

논골담길 마을은 한국관광공사가 강원도의 유일한 강소형 잠재관광지로 꼽기도 했다. 묵호역에는 KTX 동해선이 멈춘다. 서울역이나 청량리역에서 출발해 묵호역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다. 묵호역에서 논골담길까지는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하다. 허기지면 장칼국수나 곰치국을 먹어도 좋고, 특산품 매장에 들러 묵호태를 사도 좋다. 묵호태는 묵호에서 만드는 먹태다.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보이는 해발 70~80m 높이의 묵호 덕장에서 생산한 것이다. 11월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전통 해풍 건조 방식으로 말린 명태다. 눈과 비, 서리를 피해 해풍으로만 말리기 때문에 바싹 마른 다른 지역의 황태와 달리 속살이 부드럽다.


2020년에는 전국 청년작가들을 대상으로 ‘논골담길 한 달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진, 그림, 공예, 시나리오, 여행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 예술인들이 무료로 제공되는 집에 머물며 자신의 예술혼을 키우고 있다. 묵호의 검은 바다가 유혹한다.



ⓒ 이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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