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창 관객 부르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조회수 2018. 11. 22. 09: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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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아우르는 음악의 힘은 어디까지일까요? 아름다운 나의 젊은 시절을 소환해 주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록의 전설로 불리는 퀸의 프레디 머큐리의 일생을 그려낸 영화가 4050 세대에게 큰 인기라고 해요. 40여년 전 인기를 누렸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를 인기차트에 역주행하게 한 영화와 대중의 반응을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10월 31일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우린 ‘부적응자들’을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이에요.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마음 둘 곳 없는 사람들, 우린 그들을 위한 밴드예요.
10월 31일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프레디 머큐리는 세계적인 록스타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전설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됐어요. 그 전설의 이야기가 30여 년의 세월을 넘어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10월 31일에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200만 명의 관객을 돌파하며 차트를 역주행하고 있어요. 공연 실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스피커가 스크린 뒤와 천장, 측벽에 설치된 ‘싱어롱’ 상영관에서는 관객이 함께 ‘떼창’을 부르는 진풍경도 연출됩니다. 


주말 영화관에는 중·장년층이 유독 눈에 띄었어요. ‘보헤미안 랩소디’는 4050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는데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스타’는 우리가 함께 젊었고 푸르렀던 한때를 소환합니다. 음악의 마법이죠. 

출처: 보아 SNS
‘보헤미안 랩소디’를 단체 관람한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와 보아 등 뮤지션들

메가박스 관계자는 “주말 기준으로 사운드 특화관을 이용하는 관객 수가 2.5배가량 늘었다”고 했어요.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후 연달아 영화를 관람하는 ‘N차 관람’ 관객도 늘었어요.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관람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여요. ‘동창 모임을 영화관에서 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어요.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 역시 회사의 뮤지션들과 함께 ‘보헤미안 랩소디’ 단체 관람에 동참했는데요. 이 영화가 차트를 역주행할 수 있었던 것도 4050세대가 영화를 본 뒤 ‘음악을 듣다가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비트에 맞춰 발을 구르고 목청껏 따라 부르고 있었다’는 후기를 올리면서에요.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이 영화는 그 주인공이 ‘퀸’이었기에 가능하고, 그 공연의 중심에 전설 프레디 머큐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극장, 공연장이 되다

10월 31일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밴드 퀸은 대학교 밴드인 ‘스마일(smile)’로 시작했고, 1969년부터 ‘퀸(Quee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합니다. 이후 1971년 베이시스트 존 디콘이 영입된 후부터 4인조 록밴드 퀸이 완성되었지만, 이들의 음악에 평론가들은 혹평 일색이었어요. 


하지만 대중은 퀸의 음악에 반응했고, 1975년 만든 4집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들을 세계적인 밴드로 만들어 줍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세계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노래예요. 최초의 뮤직비디오가 제작된 노래이기도 해요. 


무엇보다 이 곡은 6분 가까이 이어집니다. 아카펠라와 오페라, 록을 넘나드는 편곡도 이색적이에요. 가사는 또 어떤가요. “Mama, just killed a man(엄마, 사람을 한 명 죽였어)”로 시작한 노래는 “Mama, ooh, (Any way the wind blows) /엄마, 오, (어떤 식으로 바람이 불든) I don’t want to die /난 죽고 싶지 않아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난 가끔씩 아예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어”로 이어집니다. 


계속 이어지는 Mama는 오페라의 Oh! Mamma mia와 대구를 이루며 장르를 전환시키는데요. 이 곡에 쓰인 합창은 퀸의 멤버들이 여러 번 녹음해서 만들었다고 해요. 다른 멤버들은 몇 번의 녹음을 거치는 동안에도 도대체 어떤 음악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고 해요. 


퀸에서 기타리스트였던 브라이언은 “영화가 만들어진다고 했을 때 망설였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어요. 프레디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인데요. 오랜 시간 망설였던 이들은, 자신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이 프레디에 대해 제작할 것이고, 그렇다면 더욱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용기를 냈다고 했습니다. 프레디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거의 10년 가까이 제작에 몰두했습니다.

10월 31일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아프리카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가세가 기울어 영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고 공항에서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며 음악의 꿈을 키우던 아웃사이더 프레디 머큐리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음악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꿈을 응원하지 않았어요. 그의 이름도, 그의 옷도, 그의 남다른 행동들도 지적 거리였어요.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주눅 들지 않았어요. 퀸의 드러머였던 로저는 “사람들은 프레디 머큐리의 이색적이었던 행동들을 기억하지만, 내가 기억하기에 그는 대단한 뮤지션이었다”고 말합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뮤지션으로서 프레디를 집중 조명하고 있어요. 사람들을 웃게 하고, 울게 하는 그의 힘을 말이예요. 아름다운 것을 사랑했던 프레디는 발레와 오페라 그리고 록을 두루 사랑했어요. 초기에는 ‘글램록(glam rock)’으로 시작한 퀸의 음악은 점차 다양한 장르로 진화합니다. 그 진화는 모든 장르를 작곡할 수 있고, 소화할 수 있었던 싱어송라이터 프레디 머큐리가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하지만 언론은 여전히 퀸에 우호적이지 않았고, 퀸 역시 언론을 멀리하면서 이들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요. 평론가들은 퀸의 인기가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었다고 했고, 퀸의 음악은 일관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엘튼 존은 “만약 프레디 머큐리가 영국에서 태어난 유럽인이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로 떠나는 시간 여행

출처: CGV
‘싱어롱 시사회’는 스피커가 전면, 후면, 측면에 설치돼 마치 공연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평론가도 냉소하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어요. 잦은 해체설과 루머에 시달리며 2년 동안 공백기를 가진 퀸은 1985년 7월 13일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에티오피아 난민 돕기 자선 콘서트에 참여합니다. 


당대 내로라하는 팝 뮤지션이 참여한 이 공연에서 퀸은 한물간 밴드 취급을 받았어요. 허나 노래가 시작되자 달라졌어요. 술, 담배와 약으로 망가진 성대와, 병으로 부서져 가는 몸이었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전무후무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어요. 


흰색 민소매 옷을 입고 피아노를 치고, 무대를 휘저으며 노래를 부르던 프레디는 그야말로 ‘무대를 씹어 먹었는데요.’ 그의 무대에 매료된 7만 2000여 명의 관객은 일사분란하게 반응했고 폭발적으로 화답했습니다. 그 자리에 들어찬 수만 관객을 ‘조련’할 수 있는 뮤지션은 오직 프레디 머큐리였어요.


1975년 영국의 주간차트 1위에 올랐고, 1985년 퀸을 다시 정상에 올려놓은 ‘보헤미안 랩소디’는 1991년 다시 한 번 차트 1위에 오릅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부고가 전해졌기 때문이에요. 죽기 전날, 프레디 머큐리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음을 발표했고 24시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를 둘러싼 온갖 소문들도 함께 사라진 날이었어요. 

출처: 연희 38 애비뉴
LP바에서 퀸의 노래를 신청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8년, 세상은 다시 ‘보헤미안 랩소디’로 떠들썩해요. 영화 역시 평론가들에게는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관객은 퀸에게 반응하고 있는데요. LP바에는 퀸의 명곡을 틀어달라는 주문이 빗발치고 있어요.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음악바 ‘재즈 잇업’을 운영하는 김정욱 대표는 “요즘 신청곡 중에는 퀸의 노래가 반 이상”이라고 말했습니다. 퀸의 노래 중 전 세대에 잘 알려진 ‘위 아 더 챔피온(We are the champion)’이나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를 틀면 신청자든 아니든 모두가 ‘떼창을 한다’는 후문이 있어요.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지난 9월 발간한 책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음악에 대해 이렇게 썼어요. 

노래는 거기 그대로 있는데 삶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랑은 식고 재능은 사라지고 희망은 흩어진다. 삶의 그런 균열들 사이로 음악이 흐를 때, 변함없는 음악은 변함 많은 인생을 더욱 아프게 한다.

프레디 머큐리가 세상을 떠난 뒤 태어난 이들도 퀸의 노래를 부릅니다. 깊어가는 가을밤, 사람들의 귓가에 ‘보헤미안 랩소디’가 흐르는 이유예요. 인생은 짧고, 음악은 길어요. 


음악이 들려오면 나도 모르게 따라부르는 노래가 있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노래를 통해 그 시절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으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요?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떼창까지 하는 우리는 같은 시대와 추억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마음일 거예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우리를 함께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음악의 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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