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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의 건강 비결은? 창덕궁 내의원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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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건강을 돌보던 내의원을 직접 구경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세계문화유산 비원을 품고 있는 창덕궁에서 '궁궐 속 치유'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조선 내의원의 의복과 약방 공예품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서 보던 의녀 복장을 한 진행자와 함께 약첩 싸기 체험도 할 수 있다고 해요. 조선시대 왕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내의원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도 함께 들어봐요.


약첩 싸기 체험이 이루어지는 창덕궁 약방 전경. 체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약재의 특징과 효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출처C 영상미디어

궁궐은 당대 최고의 사상과 문화가 집결된 곳이에요. 최고 수준의 학자들과 가장 뛰어난 기량을 갖춘 장인들이 궁궐로 모였는데요. 조선 태종 때 세워진 창덕궁은 조선 5대 궁궐 중 가장 오랜 시간 임금들의 사랑을 받았던 궁궐이에요.


아시아 3대 정원으로도 꼽히는 창덕궁의 후원은 그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는데요. 창덕궁에는 후원 외에도 ‘약방(藥房)’이라 불리는 내의원(內醫院)이 있어요. 이곳은 궁궐 내 병원으로 어의, 의관, 의녀 등이 상주하며 왕과 왕족의 건강을 살핀 곳입니다.


지금 창덕궁 약방에서는 문화재청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하는 ‘궁중일상전시-궁궐 속 치유’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요. 이번 전시는 궁궐의 치유 공간이었던 조선시대 약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장인들이 만든 약구(藥具)와 사발, 소반, 의복, 침통 등 약방에서 사용하던 다양한 도구와 자료를 직접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약첩 싸기 등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국가무형문화재 보유 장인들이 재현한 내의원의 공예품들이에요. 


내의원 약방의 의미를 무형문화재와 연계해 유·무형의 가치까지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창덕궁 약방에서는 역사와 문화에 장인정신의 숨결이 더해져 시간을 뛰어넘는 의술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어요.


조선시대 왕실 의료는 내의원에서 담당했는데요. 이곳에서 근무하는 의관을 내의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의과(醫科)에 급제해야 임명받을 수 있는 고위직 관료였어요. 이 중에서도 궁궐에서 임금과 왕실 가족을 치료하는 의원을 어의라고 불렀어요. 물론 임금이 은혜를 베풀어 특별히 궐 밖에 사는 왕자나 관료에게 어의를 파견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궁궐 안의 병원’ 내의원에 가다

옹기 장인이 빚은 물 항아리와 약구 너머에 젊은 공예작가들이 빚어놓은 사발이 보인다.

출처C 영상미디어

창덕궁 약방의 전시 공간은 ‘ㄏ’자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들어서는 입구 왼쪽에 조선시대 내의원의 약방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이 있어요. 이곳에 들어서면 천장 가득 약봉지가 매달려 있고, 진맥을 보는 방에는 약장과 침통이 놓여 있어요. 마루에 올라섰을 때부터 진하게 피어오르는 약재 냄새로 약방에 들어섰다는 게 실감날 정도예요. 약방 우측에는 드라마 ‘대장금’에서 익숙하게 보아오던 옥색 저고리에 남색 치마의 의녀(醫女) 복식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왕실의 여성 진료와 치료는 의녀들이 맡아왔는데 이들은 진료와 간호를 맡고 처방은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예외적으로 대장금이 중종의 처방을 돕는 여의로 승격되었는데요. <중종실록>에는 “의녀 대장금의 의술이 무리 중에서 뛰어나 내전에 출입하며 간병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대장금은 중종의 약을 다른 어의들과 논의하고 처방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의녀 복식 외에도 정조시대 숭록대부(종1품)까지 오른 김영길 어의의 복식과 의관 복식, 품대, 신발 등을 문헌 그대로 재현해 전시하고 있어요. 내의원에서 일하던 사람들의 의복을 보면 이곳을 오갔던 그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듯 현실감 있게 다가옵니다.

진료기록지와 붓통이 놓인 책상

출처C영상미디어

귀한 약재로 가득했던 내의원에는 도난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어요. 내의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사령이 임금 전용 약제실에 들어가 침향을 훔친 거예요. 당시 침향은 금보다 귀한 약재 취급을 받았어요. 때문에 외교 약재로도 활용될 정도였어요. 


일본은 침향을 바치면서 우리의 대장경판(국보 제32호) 선물을 요청하기도 했고, 명나라는 조선에 원병을 청하면서 인조에게 침향을 선물했어요. 당시 세종은 이것을 도난사건이 아닌 국왕 경호 시스템의 붕괴로 보았습니다. 임금의 건강을 다루는 의료기관인 내의원 약품 보관실에 사령 출입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강하게 문책했는데요.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국문이 열렸고, 이 사건을 계기로 세종은 내약방에 외부인 출입금지를 명하게 됐습니다.


이번 행사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장인들이 재현한 공예품들이 가장 눈길을 끌어요. 메인 전시관인 약방에 올라서면 국가무형문화재 제96호 옹기장 김일만 보유자가 조선시대 내의원에서 사용하던 약구(藥具)를 재현하는데요. 내의원에서는 탕을 달이거나 조제한 약을 옹기로 된 약기(藥器)에 담았는데, 김일만 장인이 타림질, 수레질, 근개질과 통가마에서 구워낸 전통 방식으로 선조들이 사용한 약구를 그대로 구현했어요. 


전시장에는 약화로(藥火盧), 약탕기(藥湯器), 약사발, 약절구 등이 있으며 다양한 재현 용품 83점을 만나볼 수 있어요. 옹기로 만든 물품 중에서 ‘배밀이’라는 도구는 지금도 사용 가능할 정도로 실용적인데요. 주전자 뚜껑을 닮은 배밀이는 배앓이를 할 때 따뜻하게 데워 배 위에 올려놓고 문지를 때 사용하는 도구예요. 낯설지만 쓰임이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내의원 약구의 특징이기도 해요. 

문헌을 근거로 조선시대 내의원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했다.

출처C 영상미디어

정성 들여 조제한 약을 올릴 때는 약소반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약기만큼이나 중요한 도구였어요. 약소반은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 김춘식 보유자와 전승자들에 의해 재현됐는데요. 약사발과 약차를 올려 사용한 나주반, 팔각호족반, 공고상, 찻상, 민자공고상 5종이 전시되었는데, 간결하면서도 기품 있는 약소반은 현대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밖에도 제116호 화혜장(보유자 황해봉)이 만든 어의 신발, 제22호 매듭장(전수조교 박선경)이 만든 침통(針筒) 노리개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작품이에요. 아울러 우리 공예의 신구 조화를 느낄 수 있도록 젊은 작가들이 만든 약사발 90점도 함께 전시됐어요. 체험장 뒤쪽 칸막이에 전시된 약사발의 실루엣은 시공을 초월하듯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요. 임금의 치료를 맡았던 창덕궁 내의원에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장인들과 신예 작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를 가집니다.


약방 체험관에는 서른 개의 소반과 전통 방석이 깔려 있는데 이곳에서는 하루 두 번 ‘약첩 싸기’ 체험이 이루어져요. 체험자에게는 당귀, 계피, 천궁, 작약, 감초 다섯 가지의 약초를 제공하는데, 이 약재를 한지와 노끈을 사용해 전통 방식으로 묶는 거예요. 이렇게 만든 약첩은 체험자가 가져갈 수 있습니다. 약첩은 한방 방향제로 활용 가능해요. 의녀복을 입은 진행자가 체험 안내를 맡아 마치 조선시대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인데요. 창덕궁을 방문한 초등학생과 외국인들도 참여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쉽고 간단한 체험이에요. 

알려지지 않은 조선 왕들의 건강 비결

창덕궁 약방 입구. 약방 표시 덕에 쉽게 찾을 수 있다.

출처C 영상미디어

조선의 왕들은 건강하게 장수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아요. 왕들의 평균수명은 47세에 불과했는데, 평균적으로 24세에 왕이 되어 19년 2개월가량 임금 노릇을 하다가 죽었습니다. 원기 왕성할 때 임금이 되지만 중년을 넘기지 못했는데요. 물론 그 당시의 평균수명이 요즘과는 차이가 있지만 조선 팔도에서 생산되는 사계절의 산해진미와 당대 최고의 명의들을 주치의로 뒀던 것을 생각하면 결코 장수한 것으로 볼 수 없어요.


가장 오래 살았던 영조는 83세에 승하했는데 요즘으로 치면 100세를 넘는 나이에요. 재위 기간도 무려 52년이나 됩니다. 조선시대 국정을 상세히 담은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영조는 임금의 자리에 있던 52년 동안 무려 7284회나 내의원 진찰을 받았다고 해요.  


보통은 닷새마다 한 번, 즉 한 달에 여섯 번씩 내의원 의원이 들어가 국왕의 건강 상태를 살폈는데요. 그런데 영조는 기본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월평균 11.7회의 입진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승하하기 전 마지막 4년은 하루 평균 1.2회의 입진을 받았다고 하니 건강에 쏟은 관심이 대단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창덕궁 약방의 근무자들은 모두 전통 복장을 입고 관람객들을 안내한다.

출처C영상미디어

김일만 옹기장이 만든 약구들 중에는 물항아리도 있는데 물항아리에는 내의원에서 사용하는 물을 보관했어요. 왕은 귀하고 비싼 약재를 먹기도 했지만 마시는 물부터 달랐어요. 내의원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왕들은 새벽 5시경에 샘물을 떠서 차로 달여 마셨다고 해요. 양기가 왕성해지는 시각으로 물에도 양기가 충만하다 여겼고 솟는 샘물은 양기가 살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왕비나 대비에게 사용한 물은 저녁에 길은 물로서 차나 약을 달일 때 사용했습니다. 남자는 양기를, 여자는 음기를 위주로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궁중의 여인들에게는 솟는 샘물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양기 넘치는 물을 마시고 기가 왕성해지면 나라가 시끄러워질 수 있어 궁중 법도로 정한 거예요. 


궁중에서는 다양한 보양식품을 만들 때 지장수를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지장수는 황토 땅을 파서 구덩이를 만들고 황토가 가라앉고 난 뒤에 맑은 윗물을 취한 거예요. 지장수는 옥으로 만든 그릇이나 질그릇 옹기에 보관해야 약효가 유지되는데, 100도의 열로 끓이거나 영하 25도로 냉동해도 약효가 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왕이 사용하는 물의 종류는 꽤 다양했는데, <동의보감>에 나오는 물의 종류만 해도 30여 가지나 돼요. 왕이 마시는 물 가운데는 ‘백비탕(百沸湯)’도 있어요. 백비탕은 말 그대로 물을 끓였다가 식히는 것을 백 번이나 반복한 거예요. 궁녀들이 미리 아흔아홉 번이나 끓여서 식혀놓았다가 필요할 때 마지막으로 한 번 끓이고 식혀서 임금에게 올리는 건데요. 백비탕은 양기를 돕고 경락(經絡)을 잘 소통시키는 약효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물을 끓였다 식히면 그 속에 녹아 있던 공기량이 절반으로 줄 뿐 아니라 물분자 사이가 더 치밀해지고 전도가 달라져 몸에 더 빨리 흡수된다고 해요. 높은 생리 활성을 가지게 되어 세포막을 쉽게 통과하고 물질대사를 왕성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의원은 의술이 고도로 발전한 곳이지만, 음식과 약이 같다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의 철학대로 임금이 마시는 물부터 음식까지 임금이 섭취하는 모든 것을 관장하는 곳이기도 했어요. 따라서 조선 왕들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창덕궁 약방을 놓쳐선 안 될 거예요.

‘2018 궁중일상 전시-궁궐 속 치유’

기간 2018년 9월 20일~11월 4일/휴궁일(월) 제외

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장소 창덕궁 궐내각사 약방

체험 약첩 싸기(11시/2시 운영-선착순 30명)

문의 02-2270-1233(www.chf.or.kr)


조선왕실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물 하나도 의미를 두고 정성 들여 사용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창덕궁의 후원은 아름답기로 유명한데요. 주말 나들이로 가을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든 비원도 둘러보시고 조선시대의 내의원도 관람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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