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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왜 대부분 공룡덕후가 될까?

조회수 2018. 8. 16. 11:0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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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인 공룡!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 개봉한 '쥬라기 월드: 폴른 킹덤'도 흥행에 큰 성공을 했죠. 


아이들은 희한하게도 길고 복잡한 공룡의 이름을 모조리 외우고 있는데요. 왜 이렇게 공룡에 열광하는지 알아볼까요? 


과학, 의심에서 시작하고 질문으로 발전하는

{공룡덕후}

공룡과 별. 이 두 가지는 과학으로 통하는 가장 큰 관문이다. 내 주변에 있는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지금 연구하고 있는 분야와는 상관없이 그 출발점은 공룡과 별이었던 사람들이 많다. 


어린 시절 엄마가 보여준 은하수, 술김에 흥에 겨운 아버지가 사들고 오신 공룡 인형에서 우주와 생명에 대한 관심의 씨앗이 싹트는 것이다.


공룡은 보통 다섯 살에서 아홉 살 사이의 아이들이 좋아한다. 요즘에는 남녀 구분도 없다. 꼬마들은 공룡 이름을 기가 막히게 잘 왼다. 등에 뾰족한 골판이 솟은 스테고사우루스, 얼굴에 뿔이 달린 트리케라톱스, 꼬리에 곤봉이 달린 안킬로사우루스처럼 특이하게 생긴 초식공룡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브라키오사우루스나 바로사우루스, 아파토사우루스처럼 그게 그것처럼 생긴 목긴 공룡도 기가 막히게 구분하는 것을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꼬마들은 공룡학자들보다 공룡 이름을 더 많이 안다.

출처: ⓒShutterstock
{공룡덕후}

“그런데 왜 아이들은 공룡을 좋아할까요?” 공룡 덕후 부모님들이 많이 묻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는 아무런 걱정이 담겨 있지 않다. 오히려 거의 공룡 박사처럼 보이는 자식에 대한 대견함이 묻어 있다. 이런 질문에 내가 해주는 대답은 거의 교과서적이다. 교과서에 나온다는 말이 아니고 모든 공룡학자가 같은 대답을 한다는 뜻이다.


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공룡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큰 것에 매력을 느낀다. 공룡만 그런 게 아니다. 코끼리, 기린, 코뿔소, 고래처럼 큰 동물을 좋아한다. 같은 고양잇과 동물이라고 해도 살쾡이나 삵보다는 사자와 호랑이처럼 큰 동물이 멋있다. 


그런데 공룡은 얼마나 큰가! 하지만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1000여 종의 공룡 가운데 절반은 거위보다 작았다. 우리가 큰 것만 기억할 뿐이다. 어쨌든 아이들은 공룡이 커서 좋아한다. 

{공룡덕후}

두 번째 이유는 이상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공룡은 지금 살고 있는 그 어떤 동물들과도 닮지 않았다. 머리와 등 그리고 꼬리가 괴상하게 생겼다. 이상한 생김새는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한다. 스테고사우루스 등에 있는 골판의 역할은 무엇일까,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어릴 때는 방어 무기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포식자가 등 위에서 공격하는 게 아닌데 등판에 갑옷이 있어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또 CT 촬영을 해보니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모세혈관의 흔적이 보였다. 물리면 피를 줄줄 흘렸을 것이다. 방어 무기이기는커녕 약점인 셈이다. 


요즘은 뇌가 작은 초식공룡들이 동족을 찾기 위한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넘친다. 

{공룡덕후}

끝으로 아이들이 공룡을 좋아하는 세 번째 이유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사라진 것에 대한 아련함이 있다. 어른도 그렇다. 학교 소사 아저씨, 유랑 서커스단, 연애 편지처럼 사라진 것에 대한 기억은 변주를 일으켜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다. 공룡을 중심에 두고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 무수히 많은 이야기 다리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공룡이 멸종했다는 것은 큰 오해다. 약 1만 400종의 공룡이 지금도 살아남아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새가 바로 공룡이다. 


시조새는 잊어도 된다. 시조새는 새의 조상이 아니다. 시조새 역시 공룡의 일종이었고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새였던 공룡은 6600만 년 전 대멸종을 견뎌내고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축구를 보면서 공룡튀김을 먹는다. 

{공룡덕후}

공룡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아이들도 아홉 살이 되고 열세 살이 되면 공룡과 헤어진다. 공룡 인형을 버리고 공룡 이름도 잊어버린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나는 ‘질문’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사박물관장으로 일하던 시절 매일 한두 가족에게 전시 해설을 하는 도슨트 활동을 했다. 고생대 코너에서는 얌전하던 친구들이 중생대 코너에 들어서면 말이 많아진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자랑하기 바쁘다. 부모님들은 그 모습을 대견해한다. 공룡 앞에서 “질문 없어요?”라고 물어보면 100 중 99는 같은 질문을 한다.“공룡은 왜 멸종했어요?”가 바로 그것이다. 1980년대라면 의미 있는 질문이다. 하지만 요즘, 그것도 자연사박물관 방문객이 공룡 멸종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출처: ⓒShutterstock
{공룡덕후}

6600만 년 전 지름 10km짜리 거대한 운석이 지구에 충돌했고 그 여파로 열폭풍, 쓰나미, 지진, 화산 폭발 그리고 기후 변화로 인해 고양이보다 커다란 육상동물이 모두 멸종할 때 같이 비조류 공룡도 멸종했다. 이것은 다 아는 것 아닌가. 


오히려 “공룡은 왜 발생했어요?” 같은 질문이 나올 것 같은데 정작 이런 질문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 이것이 문제다. 공룡을 좋아해서 열심히 책도 읽고 다큐멘터리도 보고 강연도 들으면서 지식이 많아졌다.


지식을 자랑하는 재미가 쏠쏠했고 부모님이 좋아하시기도 했다. 그래서 뭐? 자랑도 한두 번이지…. 궁금하지 않았다. 새로운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더 이상 묻고 캘 것이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공룡에 대한 관심도 사라졌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에서 공룡 자리에 별을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행성의 이름과 성질을 익히고 별자리를 암기하고 추운 겨울날 관측도 했지만 질문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으면 별과도 이별할 수밖에 없다. 

{공룡덕후}

“우리 아이가 어릴 때는 공룡 박사였는데 이젠 과학이라고 하면 쳐다도 안 봐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부모님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많이 묻는다. “애들이 다 그렇지요. 뭐”가 내 공식적인 대답이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아이들이 질문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지요”가 진짜 답이다.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곳에 그쳐서는 안 된다. 새로운 질문을 얻어 가는 곳이어야 한다.


공룡과 별은 과학으로 통하는 가장 큰 관문이다. 하지만 이 관문을 지났다고 해서 누구나 과학자가 되거나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은 아니다. 문을 통과하면 지식이라는 넓은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강물에 휩쓸리면서 지식만 쌓다 보면 결국 과학이라는 밀림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식의 강에 놓여 있는 질문이라는 징검다리를 총총 밟고 건너야 한다. 과학은 의심에서 시작하고 질문으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서울시립과학관장/칼럼니스트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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