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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손잡고, 우리나라 최초 한글 해부학 교과서 보러 가요!

조회수 2018. 8. 9. 14:2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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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접어드는 절기 입추가 지나도 무더위는 식을 줄 모르고 있어요. 무더위를 피해 나들이 갈 곳으로 우리나라 한글의 변천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회 하나 소개해드릴게요.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아가 치미는데요. 여기서 부아란 폐를 나타내는 옛말로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이라고 해요. 


근대 격변기를 지나오면서 예로부터 쓰던 우리말 대신 외래어를 쓰고 사라져 버린 옛말이 많아요. 우리 몸을 일컫는 말도 서양 의학을 받아들이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해요.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우리나라 최초 해부학 교과서인 <제중원>을 통해 말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요. 이번 전시회는 무엇이 특별한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자세히 알아보았어요.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나는 몸이로소이다-개화기 한글 해부학 이야기’는 한글을 주제로 한 전시의 기준이 될 만한 메가톤급 전시다. 특히 한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제중원 <해부학>’ 전질이 대중에게 처음 공개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7월 19일부터 10월 14일까지 기획특별전 ‘나는 몸이로소이다-개화기 한글 해부학 이야기’를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인 ‘제중원 <해부학>’을 대중에게 처음 소개하는 전시회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제중원 <해부학>’ 전질은 1906년 간행된 초간본으로 3권 전질이 갖춰진 유일본이에요. ‘제중원 <해부학>’은 일본 해부학자 이마다 쓰카누(今田束)의 <실용해부학(實用解剖學)>(1888)을 제중원 의학생 김필순(金弼淳)이 우리말로 번역하고 제중원 의학교 교수 올리버 에비슨(魚丕信, Oliver R. Avision)이 교열해 1906년에 펴낸 책이에요.


최초의 한글 의학서를 통해 ‘몸’에 대한 우리말과 문화의 역사를 조명한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아울러 ‘제중원 <해부학>’과 함께 18개 기관 소장 유물 127건 213점을 전면적으로 공개하는 이번 전시는 규모 면에서도 전례가 없어요.


전시를 기획한 고은숙 학예연구사는 “최초의 한글 해부학 의학 교과서를 바탕으로 우리 몸에 대한 말과 사고, 세계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시”라고 설명합니다. 


제중원 <해부학> 초간본 전질 최초 공개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훈민정음 해례본>부터 <동의보감>, <해부학>,<조선어사전>에 이르기까지 몸의 명칭을 문헌에 나오는 이미지 그대로 시각화했다고 고은숙 학예연구사는 설명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가 탄생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어요. 1884년 12월 갑신정변 때 개화파 민영익(閔泳翊)을 의료 선교사 알렌이 외과수술로 치료한 일이 결정적이었는데요. 칼에 찔려 생명이 위독한 민영익의 몸을 열고 꿰매는 외과수술은 당시 조선인들에겐 충격 그 자체였어요.


민영익의 외과수술을 계기로 알렌은 고종에게 서양식 병원 설립을 제안했어요. 1885년 최초의 서양식 병원 제중원이 세워지고, 의학생도 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에비슨이 김필순과 만나 번역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조선인 의학생에게 보다 쉽고 빠르게 서양 의학을 가르치기 위해 한글로 번역된 의학 교과서의 필요성을 절감한 에비슨이 처음 선택한 책은 헨리 그레이(Henry Gray)의 <해부학(Anatomy of the Human Body)>이었어요.


하지만 에비슨이 잠시 고국을 방문한 사이 조수의 죽음과 함께 완성된 원고도 사라졌고, 이후 김필순을 만나 재번역한 원고 역시 불타 없어지는 등 고난을 겪었는데요. 이후 세 번째로 번역한 책이 바로 이마다의 <실용해부학>이에요.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딛고 다시 번역하는 일을 되풀이하면서 마침내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가 탄생하게 되었어요.


검시 보고서에 나타난 전통의학의 가치관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돼 있어요. 1부 ‘몸의 시대를 열다’에서는 몸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과 근대 서양 의학의 관점 차이를 비교하고, 2부 ‘몸을 정의하다’에서는 한글 창제 이후 개화기에 이르기까지 몸을 가리키는 우리말의 변화상을 선보입니다. 마지막 3부에서는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인 ‘제중원 <해부학>’을 소개하고 한글학적 의의를 살펴보고 있어요.


무엇보다 개화기 근대 건축의 공간 특성을 반영한 전시 공간의 연출이 전시의 집중도를 높여주는데요. 개화기 건축물을 모티브로 문과 창, 등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연출된 공간은 흡사 실제 제중원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해요.


해부학을 기초로 하는 서양 의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치료하는 문제를 넘어 몸에 대한 근본적인 세계관의 변화와 관련된 일이었어요. 극과 극에 있는 몸에 대한 동서양의 가치관이 어떻게 다른지 1부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한글로 번역된 조선의 법의학서 <증수무원록언해(增修無寃錄諺解)>입니다. 언해란 한문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로 몸을 가리키는 다양한 우리말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예요.


조선시대에는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시신의 몸을 열어보지 않았어요. 오로지 겉으로 드러난 몸의 흔적을 조사할 뿐이었어요. 


당시 자살로 위장된 타살이 제법 있었는데, 부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원래 상처를 찾기 위해 감초물로 상처를 닦아낸다든지 독살을 알아내기 위해 은비녀나 밥알을 이용했어요. 시신의 입이나 항문에 밥을 넣었다가 닭에게 먹이고 반응을 보는 식이었어요.

몸을 가리키는 우리말의 변화

해부학이 들어온 이후 몸에 대한 관점이 바뀌고 우리말 몸 이름은 변화를 겪는데요. 개화기 새롭게 들어온 한자어 용어에 밀려 이전에 썼던 말이 사라지거나 의미가 바뀌기도 하고, 새롭게 들어온 한자어보다 이전의 고유어 표현이 더 활발하게 쓰이기도 했어요.


서양 의학이 몸에 대한 치료방식뿐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음을 신소설 속 표현들을 통해 알 수 있어요. 이해조의 <빈상설>에서는 간교한 첩에게 홀린 주인공의 상태를 “신문학으로 말하면 뇌에 피가 말라 신경이 희미하다 할 만한”이라고 표현했어요.


서양 의학의 도입으로 ‘이두박근’, ‘안면근’, ‘복근’, ‘승모근’ 등 근육을 지칭하는 단어가 새롭게 등장해요. 눈, 코, 입, 귀와 관련해서는 특히 이전에 쓰이던 말과 새로운 말이 공존합니다. 이전에 없던 ‘홍채’, ‘수정체’ 등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고 ‘안검’과 같은 어려운 말은 기존의 쉬운 표현 ‘눈꺼풀’이 더 활발하게 쓰이는 식이에요.


몸속 기관들은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간과 쓸개의 관계 특성이 반영된 우리말 ‘간에 붙었다 쓸개 붙었다 한다’, ‘간이 부었다’, ‘간이 콩알만 해졌다’ 등과 위와 비장을 사용하는 ‘비위가 사납다’, ‘비위가 좋다’ 등의 표현도 이전의 전통적인 사고가 반영된 표현이에요. ‘부아가 난다’의 ‘부아’는 폐를 가리키던 옛말로 이제는 사용하지 않아요.


‘애가 탄다’, ‘배알이 골리다’에서 ‘애’와 ‘배알’은 ‘장’의 옛말로 한자어 세력이 커지면서 원래 이름이 쓰이지 못하고 의미가 변한 대표적인 예인데요. 


2부 ‘몸을 정의하다’ 전시는 ‘몸의 기둥, 뼈와 근육’, ‘마음의 집, 심장과 뇌’, ‘보고 듣고 느끼는 감각기관’, ‘서로 돕는 몸속 기관’의 네 가지 주제로 구성해 주제별로 몸에 대한 우리말과 문화, 새롭게 생겨나고 사라진 말들을 볼 수 있어요.


한글 의학서는 한글사의 중요한 사료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 ‘제중원 <해부학>’ 3권의 실물을 직접 관람할 수 있는 3부 전시가 이번 기획의 최고 백미예요. 


1권은 뼈와 관절, 근육, 2권에는 내장기관, 3권에는 혈관과 신경에 관한 내용이 기술돼 있어요. 원서에 없는 새로운 지식을 더하기도 하고, 다른 그림으로 교체해 넣기도 하는 등 원서의 체재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수용하고자 한 노력이 돋보입니다.


원안이 된 이마다 쓰카누의 <실용해부학>도 전시돼 있어 비교해볼 수 있어요.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 의학교에서는 <해부학>을 시작으로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약 30여 종의 한글 의학서를 출간했다고 기록돼 있어요.


현재 전해지는 것은 <약물학 상권(무기질)>(1905,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 소장)과 <신편화학교과서(무기질)>(1906, 연세대 학술정보원 소장), <병리통론>(1907,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외과총론>(1910,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소장) 등 14종이 있어요. 각 소장처에 흩어져 있던 서적들이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모여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글 의학 교과서의 사용 기간은 몹시 짧았어요.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일본어 교재를 사용했기 때문이에요. 한글 의학 교과서들은 대부분 영어나 일본어 책을 번역한 것이지만, 새로운 개념과 지식을 우리말로 전달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한글사의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어요.


당시 만들어진 ‘세포’, ‘신경’ 등의 몸 관련 어휘와 지식은 이제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 속에 뿌리내렸습니다. 이 전통이 이어졌다면 우리말을 다듬는 작업이 보다 풍성했을 텐데 사실상 맥이 끊겨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래서 원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 ‘제중원 <해부학>’을 비롯해 현존하는 14종의 한글 의학서의 한글사적 의미가 남다릅니다. 한글을 통해 우리말의 역사와 문화, 세계관의 변천사를 훌륭하게 증명한 이번 전시는 한글 전시의 새로운 기준이 됩니다.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우리나라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데요. 잘 보존된 한글 해부학 고서를 통해 우리나라 말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이번 전시회에 관심있는 분들은 놓치지 말고 꼭 관람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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