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두 엄마 이야기>, '이런 슬픔 겪는 마지막 엄마 됐으면..'

조회수 2018. 4. 26. 14:3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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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서 허다윤 양과 조은화 양을 기다리는 두 엄마 박은미, 이금희 씨의 사연을 담은 MBC 휴먼다큐 사랑 ‘두 엄마 이야기’가 뉴욕TV페스티벌 은상을 수상했어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이지은 PD는 “방송한 지 벌써 1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팽목항의 스산한 바람 소리와 가족들의 울음소리가 귓가에서 맴돈다”고 했는데요.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부모의 슬픔을 다큐멘터리로 다루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함께 이야기 나눠보았어요.


끝까지 기다립니다. 엄마니까.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산에 묻고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잖아요. 이분들의 슬픔은 도저히 언어라는 수단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어요. 자식을 잃고 3년을 하루같이, 4월 16일의 기억을 안은 채 팽목항을 지키는 어머니들… 속절없이 기다려야 하는 그 상황이 너무 참혹했지만, 그 애틋한 모정을 온전히 담고 싶었습니다.”

출처: C영상미디어
‘두 엄마 이야기’는 세월호 미수습자였던 허다윤, 조은화 양을 기다리는 팽목항의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았다.

모정은 곧 우정이었다고 합니다. 두 엄마는 서로가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배가 바다 위로 올라오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저기에 어떻게 우리 딸이 있었느냐”며 혼절할 뻔한 다윤이 엄마를 안아준 건 은화 엄마였습니다.


“‘세월호 가족’을 아이템으로 잡고 방송하기까지는 사실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세월호’라는 단어만 나와도 조심스럽게 생각했던 사내 분위기가 그랬고, 과연 이 소재가 12년간 이어온 ‘휴먼다큐 사랑’에 적합한 것인지 고민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저로서는 개인의 희로애락을 넘어 사회의 아픈 문제까지 함께 고민하는 실험적인 휴먼다큐를 만들고 싶었어요.” 


‘휴먼다큐 사랑’의 프로듀서인 이모현 PD는 ‘세월호 100일의 기록’ 영상을 찾아주는 등 선배와 동료들은 그의 의지를 지지해줬어요. 하지만 출연할 엄마들의 마음을 여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해요. 이지은 PD가 찾아가자 이들은 “정말로 방송이 가능해요?”라고 물었다고 해요. 공중파 프로그램에서 ‘세월호’를 거의 다루지 않던 시기였거든요. 


“하지만 제게 가장 부담이 됐던 건 ‘과연 내가 자식을 잃은 엄마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어요.”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방송의 시의성과 신속성을 위해 취재 역시 속도전으로 이뤄지지만 휴먼다큐 프로그램은 달랐어요. ‘끝없는 기다림’은 필수라고 해요. 출연자들이 카메라에 익숙해지고, 깊은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기까지 제작진은 곁에 머물어요. 출연자와 제작자의 관계가 아닌 친구 같은 사이가 되어야 비로소 ‘사랑’은 시작되기 때문이에요. 조심스럽게 시작된 촬영, 이지은 PD는 처음 인터뷰부터 눈물을 쏟았어요. 엄마들은 인터뷰에서 은화와 다윤이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을 들려줬어요.  


어려운 형편에 수학여행비 33만 원을 걱정해서 가지 않겠다는 속 깊은 다윤이의 등을 떠민 건 엄마였어요. 평생에 남을 추억이라고, 그러니 꼭 다녀오라고. 그 말이 평생의 한이 될 줄 몰랐다고 해요. 다윤이 아빠 허흥환 씨는 그날, 딸에게 넉넉히 용돈도 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어요. 면도도 하지 못한 채 일을 나가는 아빠에게 “아빠 좀 깔끔하게 하고 다녀”라고 말했던 딸이 행여 언제 돌아올지 몰라 아빠는 매일 아침 면도를 하고 바닷가에서 딸을 기다렸어요.

출처: 이지은
팽목항에서 봄을 맞은 다윤 엄마 박은미 씨, 은화 엄마 이금희 씨

“제가 울음이 한번 터지면 좀처럼 그치지를 못해요. 아이처럼 소리를 내면서 훌쩍이게 돼요. 촬영 중에 제가 그렇게 눈물을 쏟으면 가족들은 한층 더 서러워져서 같이 울게 되고요. 그럼 우느라 촬영을 못하죠.”


은화 엄마는 ‘처음에는 모두가 아이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시신이 올라오면 서로 자기 아이가 아니라고 했다고 해요. 그런데 5일이 지나자 ‘얼굴만이라도 봤으면 좋겠다’로 바뀌었고, 10일이 지나자 시신을 찾은 부모들은 축하를 받았어요. 시신을 찾은 부모는 찾지 못한 부모들에게 미안해 울지도 못했고요. 미수습자 아홉 명의 가족들은 끝까지 못 찾을까 봐 무섭고, 이 중에 또 남겨질까 봐 두려워하며 3년을 보냈다고 해요. 


“하루는 다윤이 집에서 다윤이의 유치원 시절 연습장을 꺼내 볼 때였어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옆에 답을 적는 식이었는데, 멈춰버린 큰 배 그림이 있었어요. 거기에 다윤이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사람이 죽어요’, ‘배가 못 움직여요’라고 썼더라고요. 다윤이 어머님이 그 그림을 안고 통곡하셨어요. 나중에 촬영된 영상을 보니, 다윤이의 연습장 한 귀퉁이가 카메라감독과 제가 흘린 눈물로 젖어 있더라고요.”

외국 사람들도 함께 느끼고 아파했나봐요.

출처: 이지은
2017년 5월에 방영된 휴먼다큐 사랑 ‘두 엄마 이야기’

다윤이와 은화를 기다리는 두 엄마의 이야기는 2018년 ‘뉴욕TV페스티벌(New york TV & Film Festival)’에서 은상을 받았어요. ‘뉴욕TV페스티벌’은 1957년 설립된 시상식으로 드라마, 다큐뿐 아니라 광고, 라디오 등 다양한 미디어 시상식을 진행하는데요. 미국 방송 매체의 종합 페스티벌이라 외국 프로그램의 수상은 드물어요. 특히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영상물이 해외에서 상을 받은 건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수상 소식을 어머님들께 알렸더니 다윤이 어머님이 그러셨어요. ‘외국 사람들도 모두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함께 느끼고 아파했나 봐요.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테니까요’라고요.”  


엄마들이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한 이유도, 수상 후 남기고 싶은 말도 한결같았어요. 이들은 자신들이 “이런 고통을 겪는 마지막 엄마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어요. 다윤이 엄마와 은화 엄마는 팽목항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광화문에서 만난 시민들에게 늘 말했어요.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을 때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하고, 더 많이 안아주라”고요. 이지은 PD는 이 엄마들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어요. 시상식은 4월 11일에 있었고, 4월 16일 세월호 4주기를 앞두고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이지은 PD 역시 여섯 살 된 딸을 둔 엄마예요. 이 또한 ‘미래의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생각한거죠.  


“어쩌면 어머니들에게는 지금이 더 힘든지도 몰라요. 배가 인양되기를 기다릴 때는 기다릴 수 있는 목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할까 봐,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을까 봐 걱정하고 계세요.” 


미수습자 아홉 명 중에 네 명의 시신이 수습됐어요. 그중에는 온전히 찾은 이들도 있지만, 유골의 일부만 찾은 이도 있어요. 아직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군과 양승진 교사, 일반 승객 권재근·혁규 부자 등 다섯 명의 유해는 수습되지 않았어요. 비로소 고인이 된 다윤 양의 가족들과 은화 양의 가족들은 이들의 시신이 모두 수습될 때까지 장례식을 열지 않을 예정이에요. 대신 이들은 이별식을 치렀어요. 홀로 남겨지는 슬픔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에요.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기나긴 세월 속절없이 기다리는 분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하려는 노력, 미수습자 가족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도 필요하고요. 함께 기억하고, 동시에 사회를 바꾸려는 작은 움직임이 모여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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