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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사주는 뭐가 다를까? 워런 버핏

조회수 2018. 10. 18. 17:4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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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주에 재물운이 있을까?
빈티지하우스의 신간 <내 사주에 재물운이 있을까?>의 미리보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모두가 궁금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운명 맞춤형 재테크 전략으로 부자되세요^^

버핏을 대표하는 글자는 임수壬水로 수水기운입니다. 임수는 큰 물로 호수와 같으며 지혜가 깊은 사람입니다. 임수의 뿌리가 될 수 있는 것은 금金기운과 수水기운입니다. 정인, 편인, 비견, 겁재 등의 글자가 있으면 일단 뿌리가 있다고 보는데요. 아래쪽 지지에 편인과 겁재가 있어 결코 약하지 않은 사주입니다. 


※ 1930년 8월 30일 15:28에 태어난 워런 버핏의 사주원국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주팔자가 담긴 만세력 보는 법은 <내 사주에 재물운이 있을까?>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답니다!)

버핏에게 재물을 뜻하는 재성은 화火기운입니다. 정재, 편재 등과 같은 글자들이 재물을 의미합니다. 천간으로는 병화丙火와 정화丁火이고 지지로는 오화午火와 사화巳火입니다. 실제로 버핏에게는 시간에 정화가 있고 연지에 오화가 있습니다. 재물운이 사주원국에 자리 잡고 있는 겁니다. 

또한 버핏 사주의 가장 큰 특징은 오행이 고르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앞으로 사주원국을 보면 알게 되겠지만 버핏과 같이 오행이 고르게 자리 잡고 있는 사주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이런 경우 사주가 중화中和를 이루었다고 하고 아주 좋은 것으로 해석합니다.

재물운에는 정재正財와 편재偏財가 있는데, 정재는 월급과 같이 매월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재물을 의미하고, 편재는 사업을 해서 벌어들이는 돈이나 횡재수가 있는 돈 등을 의미합니다. 버핏에게는 재물 중에서도 정재正財, 즉 횡재로 얻는 재물이 아니라 정기적이고 안정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재물운이 있습니다.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는 1967년 내셔널보험회사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보험업을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서 버핏은 안정적으로 주식을 운용하면서 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0조 원의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버핏은 늙어서까지 재물을 잘 지킬 수 있는 운으로 흘러갑니다. 

버핏의 사주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재물을 견딜 수 있는 신강한 사주이고, 재물운을 크게 다치게 하는 대운이 없으며, 횡재수가 없더라도 꾸준히 큰 재물을 거둘 수 있다는 겁니다. 즉, 재물운이 사주원국에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으면 로또나 주식으로 대박이 나지 않아도 충분히 큰 재산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워런 버핏은 1930년 8월 30일 미국의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습니다. 버핏의 부친 하워드 버핏은 공화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이었으며 주식 브로커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버핏은 열한 살부터 부친이 근무하던 증권회사 헤리스업햄 객장에서 시세판을 적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때 처음으로 시티서비스의 주식을 매입하기도 했습니다.

열세 살에는 <워싱턴포스트>와 <워싱턴타임즈-헤럴드>를 배달하면서 번 돈을 모아서 35달러짜리 중고 핀볼 게임기를 이발소에 설치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곧 일곱 대로 불어나 일주일에 50달러의 수입을 올렸습니다. 이후 그는 친구와 함께 돈을 모아서 롤스로이스를 구입해서 이를 임대해 하루에 35달러씩을 벌었다고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이미 6천 달러를 모을 수 있었습니다. 


버핏은 네브라스카대학 4학년 때 벤자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감동을 받아 대학 졸업 후 그레이엄이 교편을 잡고 있던 컬럼비아대학의 경영대학원에 진학하였습니다. 컬럼비아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버핏은 고향인 오마하로 돌아와 아버지가 근무하던 증권회사에 잠시 근무했지만, 이후 스승인 그레이엄의 권유에 따라 1954년 그레이엄-뉴먼에 입사하게 됩니다.

버핏은 이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스승의 투자기법을 완전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1956년 그레이엄-뉴먼은 해체하게 되고 스물다섯의 버핏은 고향으로 돌아와 일곱 명의 주주에게 모은 10만 5천 달러로 투자펀드를 시작했습니다. 투자펀드를 시작한 이후 버핏은 13년 동안 연평균 29.5%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되자 점점 많은 사람이 그에게 자산관리를 의뢰하게 되었고 1965년에는 펀드 금액이 2,600만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워런 버핏은 섬유업을 하던 버크셔해서웨이를 인수했고 이후 오마하에 본점을 두고 있는 내셔널 손해보험과 내셔널 화재해상보험 두 회사의 주식을 사들여 보험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버핏이 보험회사를 인수하게 된 것은 이 두 회사가 자산운용을 위해 주식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인수한 두 회사 모두 2,470만 달러 상당의 채권과 720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워런 버핏은 1965년 버크셔해서웨이에 처음 투자했을 때 순자산이 2,2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29년이 지난 후에는 104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이는 복리로 계산했을 때 수익률이 매년 23.3%에 달하는 셈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또한 지금까지도 그 명성을 떨치고 있는 20세기 최고의 투자자 워런 버핏은 오마하의 현인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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