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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로 자란 소녀가 어른이 돼 얻은 예상치 못한 교훈

조회수 2021. 5. 3. 14: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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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영재로 자랐지만 지금은 평범한 어른이다.
출처: 사진: 에인절 마르티네스 (ANGEL MARTINEZ) 제공
영재 소녀

5살 때 부모님이 날 의문의 여성에게 데리고 갔다. 집에서 몇 분 떨어진 사무실에 들어서자 한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서 여성이 시키는 대로 평가를 치렀다. 여성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르는 채 그저 하라는 대로 따랐다. 단어의 철자를 대고 구절을 소리 내서 외웠다. 기억에는 몇 시간 동안 평가를 치렀다. 여성은 평가를 끝까지 수행한 대가로 옆에 있던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줬다. 그곳엔 세상의 모든 백과사전이 있는 듯했다. 이후 여성과 만나 평가를 두 번 더 치렀다. 그때는 그게 마지막 만남이라는 걸 몰랐다. 그 이후로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13살 때 비밀스러운 만남의 실체를 알게 됐다.

부모님은 나의 남다른 인지 능력을 알아차리고 재능을 키워주고 싶어 전문가 상담을 받으러 갔었던 거라고 설명했다. 당시 의문의 여성은 임상 심리학자였다. 부모님은 그때 받은 평가 보고서를 보여줬다. ‘지적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라는 진단이 있었다. 또 5살이었는데 중학교 3학년의 어휘와 읽기 능력, 13살의 추론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있었다. 심리학자는 부모님에게 딸의 영재성을 키워주기 위해선 다양한 활동 참여와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출처: 사진: 에인절 마르티네스​ 제공
글쓴이가 3살 때 어머니의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 있다.

부모님이 이 일을 털어놨을 때 놀랍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기대가 크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기 때문이다. 외동에 관심받는 걸 좋아하니 그런 대접이 좋았다. 1살 때부터 구절로 말하는 법을 터득했다. 알파벳을 거꾸로 외우는 방법도 스스로 배웠다. 3살 때부터 집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과 통계를 매년 정리해서 나오는 연감과 동화책, 제품 사용 설명서까지 손에 닿는 모든 책을 훑어봤다. 천재성 때문에 난 가족 모임에서 항상 스타였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국가별 수도를 읊고 음식이 소화기관에서 어떻게 이동하는지 설명하면 박수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출처: 사진: 에인절 마르티네스​ 제공
글쓴이가 어릴 때 쓴 책
출처: 사진: 에인절 마르티네스 제공
필리핀 신문 1면에 나온 글쓴이

모든 것 중에 가장 관심사는 책 쓰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매일 밤 직장에서 스테이플러로 묶은 종이를 들고 와서 글을 쓸 수 있게 해줬다. 처음에는 좋아하던 동화책을 변형해 썼다. 그러다가 일상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5살 때까지 이렇게 쓴 책이 100권이 넘었다. 신문과 TV는 날 소개하며 ‘필리핀 문학의 미래’라고 치켜세웠다.

“5살 때까지 이렇게 쓴 책이 100권이 넘었다. 지역 신문과 TV는 내 이야기를 소개하며 ‘필리핀 문학의 미래’라고 치켜세웠다.”
출처: 사진: 에인절 마르티네스 제공
학창 시절 수상 후 사진 촬영하는 글쓴이

문학적 재능은 학업과 과외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교 졸업 때까지 철자 맞추기, 논술 대회 등 수많은 대회에 나가 상을 휩쓸었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를 얻었다. 여름 보충 수업을 듣지 않고도 필리핀 4대 대학으로부터 모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꿈의 대학 마닐라 아테네오대학에 입학하면 계속 잘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만한 생각은 신입생 때 무참히 무너졌다.

영어 수업 시간에 처음 제출한 에세이가 ‘수준 이하’와 ‘논점 이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에세이의 오른쪽 상단에는 ‘C’가 크게 적혀 있었다. 그 전까지는 스스로 천재라고 믿으며 살았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그럴 법도 한 게 모든 걸 첫 시도에 성공했다. 내게 실패란 무능하고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사실 어렸을 때 철자를 틀리게 쓰거나 글씨가 엉망이면 종이를 구겨버리곤 했다. 주변에는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밖에 없었다. 


거기에 어떤 의심도 품어본 적이 없었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주변에는 내가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밖에 없었고, 나도 그렇게 믿었다.”

똑똑한 사람들로 가득 찬 수업에서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건 어려웠다. 다른 친구들은 나보다 뭐든지 잘했다. 문학 수업 중간고사 때 기억이 떠오른다. 우화를 읽고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에 비유해 에세이를 쓴 적이 있었다. 높은 점수를 받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다른 친구들도 같은 글을 썼다는 걸 알게 됐다.


수업 시간에 대화 참여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수준 이하의 리포트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첫 학기의 평균 학점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때까지 누구와도 경쟁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다. 실패하는 순간 슬럼프가 찾아왔다. 환멸감에 사로잡혀 학업에 필요한 글 외에는 어떤 글도 쓰려고 하지 않았다.


영재 아동은 일반적으로 번아웃(극심한 피로와 무기력증)을 경험한다. 이에 대해 수많은 사회학 연구가 이뤄졌고 이를 표현하는 틱톡 영상도 유행했다. 다른 영재들이 무언가를 처음부터 못하거나 취미를 하다가 포기하는 사례를 찾아보면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례를 보면서 느낀 건 그게 아니었다.


거대한 착각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천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거대한 착각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천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삶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을 기회를 놓쳤다. 방 안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전보다 더 많은 글을 쓰고 있었다. 글쓰기는 갇혀있는 시간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마감일도 없었고 점수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나와 컴퓨터만 남은 시간에 닥치는 대로 써나갔다.

출처: 사진: 에인절 마르티네스
글쓴이와 그가 신문에 쓴 첫 번째 기사

몇 달간 관심사를 반영해 콘텐츠를 제작했다. 콘텐츠 포트폴리오도 만들었다. 가족들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또 글을 기고해보라고 조언했다. 일주일 내내 좋아하는 매체에 글을 기고했다.

출처: 사진: 에인절 마르티네스 제공
글쓴이와 그가 언론에 쓴 기사의 제목들

경험이 풍부한 편집자에게 글을 보내는 건 편집받는 데 동의했다는 의미다. 처음부터 수정하고 다듬어야할 부분이 너무 많았다. 얼른 출고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한 부분을 들추고 쓴 글을 고치는 일은 힘든 과정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퇴고 과정에서 상대의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다. 난 최고가 아니다. 아마 과거에도 최고가 아니었고, 미래에도 최고가 될 수 없을 거다. 그렇지만 최고가 아니어도 괜찮다.

“난 최고가 아니다. 아마 과거에도 아니었고, 미래에서 될 수 없을 거다. 그래도 괜찮다.”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5살 때 받은 진단 결과를 들춰봤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 20쪽짜리 종이가 내 가치를 모두 담았다는 듯이 삶을 전부 장악하도록 내버려뒀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어 한바탕 웃었다. 그렇다고 과거를 원망하진 않는다. 덕분에 글쓰기를 향한 열정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날 속박했던 일차원적인 영재라는 꼬리표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면 스스로 삶의 결정자로 성장하지도 못했을 거다. 결국 영재는 날 정확히 표현하는 말이 아니었다. 단순히 열심히 하는 일과 사랑하는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상기해주는 말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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