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행 가이드의 눈으로 본 국경 봉쇄 전 북한

조회수 2020. 12. 22. 17:0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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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60번 넘게 간 가이드는 세상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폴란드계 호주인 북한 여행 가이드 맷 쿨레샤가 북한 휴일에 열린 행사에 참여해 주민들과 단체로 춤을 추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올 초부터 국경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로 불리는 북한이 더욱더 폐쇄의 길을 걷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1일 ‘코로나19 주간 상황 보고서’를 통해 북한에서 10일까지 1만960명이 검사받았고 이 가운데 확진자가 없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북한이 WHO에 상황을 보고하는 식이라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긴 어렵다.


북한은 국경을 닫기 전까지 외국인 관광객을 받았다. 연간 외국인 관광객 수천 명을 받아 관광으로 외화벌이를 했다. 물론 흔히 생각하는 자유 여행은 아니었다. 당국이 철저히 세운 계획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단체 여행이었다.


34세 폴란드계 호주인 맷 쿨레샤는 중국의 북한 전문 여행사 ‘영파이어니어투어’ 소속으로 201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북한 여행 가이드로 일하면서 단체 여행을 이끌었다. 국경이 닫히기 직전까지 북한의 내부 모습을 들여다봤다.


맷은 지난달 VICE와 인터뷰에서 “여행과 일로 북한을 60번 넘게 갔다”며 북한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전했다.

Q.

VICE: 북한에서 외국인 여행 가이드로 일했을 때 주요 업무가 무엇이었나.

A.

맷 쿨레샤: 북한은 다른 나라처럼 개인으로 자유 여행이 불가능한 나라입니다. 모든 관광객은 개인으로든 단체로든 여행 시 북한 안내원 2명의 안내를 받아야 합니다. 외국인 가이드 리더로 일하면서 주요 업무는 북한 안내원과 관광객을 연결하는 일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이 즐겁고 안전하게 여행하고 일정을 순조롭게 소화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또 일정 중에 변화가 생기면 조정했습니다. 보통 ‘가장 먼저 일어나서 가장 늦게 잠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간 조정자 역할뿐 아니라, 상담사, 통역사, 안내원 역할을 했습니다.

Q.

북한 여행 가이드로 일하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동기가 있나.

A.

북한이라는 나라에 수년 동안 관심이 많았습니다. 폴란드계 호주인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공산주의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폴란드도 공산국가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아마 이런 성장 배경이 제 어딘가에 북한에 대한 관심의 씨앗을 심어놓은 것 같습니다. 2014년부터 호주의 한 대학교에서 한국어와 국제관계를 공부하면서 흥미가 높아졌습니다. 그해 처음 북한 여행을 갔습니다. 가서 상상을 초월할 만한 경험을 했습니다.

Q.

경험했던 일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이었나.

A.

지난해 북한 정부 수립일이었던 9월 9일 평양 모란봉에서 주민 수백 명을 앞에 두고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노래 중 하나인 ‘반갑습니다’를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보통 연휴에 모란봉은 주민들로 넘칩니다. 수천 명이 술마시고 고기를 먹습니다. 친구와 가족과 모여 연휴를 즐깁니다. 노인들도 이곳에서 춤추고 노래를 부릅니다.


특히 이날 따라 공원의 경찰은 주민들을 엄격하게 대했습니다. 휴일이라 사람이 너무 몰려 그런 것 같았습니다. 경찰은 카세트 플레이어로 노래를 크게 틀어놓은 아줌마에게 음악을 끄라고 지시했습니다.


아줌마가 경찰의 지시에 따라 음악을 끄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공원 주위를 감쌌습니다. 곧이어 흥이 깨진 노인들로부터 진심 어린 한탄과 아쉬움의 목소리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그때 ‘광기 반, 술김 반’으로 용기가 나서 앞으로 나가 ‘반갑습니다’를 불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다 함께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민 수백 명이 무리를 지어 노래 부르고 ‘이상한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노래 부르는 광경을 흥미롭다는 듯이 지켜봤습니다. 그러다가 경찰에게 잡혀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을까 잠시 걱정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곧이어 수많은 군중 사이로 악수와 포옹을 받으며 공원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주민들이 2017년 5월 1일 노동절에 평양의 모란봉에서 모여 휴식하고 있다.

Q.

북한에서 어떤 말을 들었고 어떤 말이 기억에 남는가.

A.

북한 사람 중에 국가의 체제나 현재와 과거의 지도자를 두고 부정적인 말을 할 사람은 없기 때문에 항상 정치적이지 않은 대화를 나누면서 관계를 쌓으려고 했습니다. 늦은 밤에 소주병을 앞에 두고 삶과 사랑, 세계 정치, 생활 등에 관해 얘길 나눴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또 북한 담배를 연달아 태우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Q.

북한에서 일하는 동안 어떤 제약을 겪었는가.

A.

물론 대부분 사람이 이상하게 생각할 제약이 많았습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없다는 것도 그렇고요. 하지만 보통 관광객들이 생각하는 것보단 더 개방적인 편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관광 산업을 구축하고 싶어 하며 외국 여행사의 제안을 일반적으로 잘 받아들입니다. 외국 여행사가 아이디어가 생기면 보통 당국에 전하는데 ‘네’나 ‘아니오’로 답해줍니다. 보통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라면 수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편입니다.


보통 여행지 관련 문제가 자주 발생하죠. 특별한 이유 없이 만수대대기념비 같은 장소가 일정에서 빠진다거나 접근 제한을 받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곤 합니다. 지금까지 관광객들이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기념비를 방문하도록 강요받았다는 다큐멘터리나 외신 기사가 많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기념비 방문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관광객의 방문을 금지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이드의 임무는 기념비 방문 허가를 다시 받기 위해 협상하는 등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최대의 무역항 남포의 노동자.

Q.

가이드 일을 하면서 북한이나 북한 사람들을 보는 인식이 바뀌었나.

A.

대부분은 북한 다큐멘터리로 인해 북한 사람들을 ‘세뇌당한 기계’라고 생각합니다. 전 항상 사람과 정치를 따로 보려고 했습니다. 물론 북한에선 정치가 일상생활 속에 상당히 깊숙이 뿌리 박혀 있어 그렇게 하기 굉장히 어려울 수 있지만요. 저와 우정을 쌓았던 사람들을 보면 진심으로 체제나 리더십을 지지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분명히 태도나 개성이 달랐습니다. 이들과 일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지금 더는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다른 보직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언젠가 이메일을 열어 봤을 때 예전 친구들로부터 ‘.kp’(북한 이메일 도메인)로 끝나는 이메일을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여행 가이드로 일하면서 무엇을 배웠는가.

A.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한 곳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정말 놀라웠던 건 호주에서의 삶과 북한에서의 삶이 많이 달랐는데도 계속 지내니 생활이 익숙해졌다는 것입니다. 정치를 제외하고 우린 모두 환경의 산물입니다. 사람 사는 건 어디든 다 비슷합니다. 북한 사람도 자신과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이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은 똑같습니다.

Q.

대유행 이후에 북한에서 다시 일하고 싶나.

A.

생각할 것도 없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 여행 단체를 이끌고 싶습니다. 지난 7년간 북한 사회의 변화를 지켜 보는 건 정말 매력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옛 친구와 동료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래부터 맷 쿨레샤가 북한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했을 때 촬영한 사진.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사람들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단체로 춤을 추고 있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사람들이 신의주 동림호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커플이 평양의 한 대형 건물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사람들이 평양의 문수워터파크에서 수영하다가 간식을 사먹고 있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사람들이 2018년 2월 평양에서 인민군창설일 행진을 지켜보고 있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선생님이 평양의 한 학교에서 수화로 장애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학생들이 평양의 위성 도시 평성에 위치한 한 외국어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평양의 지하철.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평양에 위치한 신식 아파트 단지로 주로 지역 선생님이나 과학자들이 거주한다.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북동쪽 라선특별시(라진-선봉특별시)에 위치한 북한 가정집 내부 모습.
출처: MATT KULESZA / VICE
북한 평양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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