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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실릴 만한 문화재 대거 발굴, 1500년 전 신라인이 착용한 고급 장신구

금동관부터 금귀걸이까지, 금붙이가 한꺼번에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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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황남동 고분 120-2호분에서 발굴된 금귀걸이.


금동관과 금드리개, 금귀걸이, 가슴걸이, 은허리띠, 은팔찌, 구슬팔찌, 은반지….

약 1500년 전 신라인이 착용하던 장신구다. 이 모든 장신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인이 걸쳤던 상태 그대로 경주 고분에서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3일 장신구가 경북 경주시 황남동 고분에서 일괄 발굴됐다고 밝혔다. 이렇게 장신구가 한꺼번에 나온 것은 1973~75년 황남대총 이후 처음이다. 또 착장 상태 그대로 공개되는 것도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2018년 5월 14일부터 황남동 고분을 조사하고 있다. 그러다가 지난 5월 시신이 있는 매장주체부 자리에서 금동신발과 금동 달개 일부를 확인했다. 그런데 이번에 정밀 조사를 통해 6세기 초에 만들어진 장신구를 발굴했다.

주로 120호분을 발굴조사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장신구가 발굴된 곳은 120호분의 봉토를 파괴하고 축조된 120-2호분이다. 120호와 120-2호분은 친연 관계로 추정된다. 고분의 주인은 최고위급 신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은 금동관을 보면 주인의 지위를 가늠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나온 경주 금동관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고 밝혔다.

주인의 키는 170cm 내외였던 것으로 보인다. 금동관의 중앙부에서 금동신발의 뒤꿈치의 길이가 176cm인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다. 문화재청 신라왕경사업추진단은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주인의 성별 등을 추가로 밝힐 예정이다.

경북 경주 황남동 고분에서 발굴된 장신구.


금동관의 가장 아랫부분에는 머리에 관을 쓸 수 있도록 둥글게 만든 띠인 관테가 있고 그 위엔 나뭇가지 모양의 3단 세움 장식이 3개 있다. 사슴뿔 모양의 세움 장식 2개를 덧붙여 세운 형태로 관테에는 거꾸로 된 하트 모양의 장식용 구멍이 배치돼 있다. 금동관의 관테에는 또 곱은옥(곡옥)과 금구슬로 이뤄진 금드리개가 양쪽으로 달렸다.

금동관의 관테에 구멍이 뚫려있는 건 처음이다.

또 경주 돌무지덧널무덤 주인이 관과 관모를 동시 착장한 첫 사례다. 투조판이 관을 장식한 용도라면 최초의 사례다.

아래로 내려가면 은허리띠와 허리띠 양 끝에 은팔찌와 은반지도 나왔다. 오른팔 팔찌 표면에서는 크기가 1mm 내외의 노란 구슬이 500점 넘게 나왔다. 구슬로 만들어진 구슬팔찌를 은팔찌와 끼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은허리띠의 드리개 연결부가 삼각형인 점, 시신과 함께 묻는 물건을 두는 공간인 부장칸에서 출토된 철솥 좌우에 고리 자루 모양의 손잡이가 부착된 점이 새로웠다.

경북 경주 황남동 고분 120-2호분에서 발굴된 철솥.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경주에서 이렇게 온전한 상태의 세트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70년대에 발굴했던 천마총은 순금으로 돼 있어 상태가 좋았지만 금동은 보통 제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하지만 (고분) 120-2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가 아주 잘 남아 있다"며 "특히 가장 주목할 만한 건 머리의 금동관인데 경주에서 이렇게 금동관을 머리에 착장한 상태로 온전히 발굴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금동관이 머리에 올려진 게 아니라 망자의 얼굴 위에 놓였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신라인들이 망자에게 어떻게 장신구를 입혔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며 "망자가 평소 사용했던 물건을 입혀 관에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신라의 왕족들은 보통 머리엔 금관, 허리엔 금허리띠를 착용한다"며 "이번에 나온 건 금동관과 은허리띠라서 주인이 왕족이 아닐 수 있지만 장신구가 풀세트로 나온 건 무덤의 주인이 귀족 이상이라는 걸 말해준다"고 전했다.

성별은 면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하지만 여성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보통 경주에서 남성은 왼쪽에 칼이 있고 여성은 칼을 소유하지 않거나 허리에 은장도 같은 장식 칼이 있다"며 "이번에는 허리에 금은 장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북 경주 황남동 고분 120-2호분에서 발굴된 금동신발.


위광철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금속은 과학적인 성분 분석이 가능하다"며 "수습하고 보존 처리하면 성분과 유기질 분석할 수 있고 목질의 수종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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