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 감염인이 당신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 하는 사랑 이야기

조회수 2020. 3. 19. 14: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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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누군가가 있습니다."
출처: 픽사베이

그날을 아직 생생히 기억합니다.

2017년 홍콩에 휴가를 갔다가 인도네시아로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온몸에서 통증을 느꼈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피곤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병원에 가니 의사가 뎅기열일 수 있다고 혈액 검사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결과를 보고 당황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목에 작은 돌기가 나서 림프샘 조직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집에 가서 2주간 통증을 진정시켰습니다. 의사는 검사 결과 림프샘 결핵이 발생해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충격에 빠졌습니다. 바로 누나에게 전화했습니다. 아버지와 형이 죽고 나서 누나와 가까워졌던 때였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가족 중 남은 마지막 남자가 돼 있었습니다.

누나는 “혹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검사 안 해봐도 괜찮겠냐”며 “친구 몇 명이 HIV 양성 반응이 나왔는데 전에 림프샘 결핵을 앓고 있었다”고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누나와 통화하면서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점점 생각과 감정을 통제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누나는 제가 게이라는 걸 아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게이라는 걸 숨겼습니다. 심지어 여자친구도 사귀었습니다.

그러다가 2015년 누나가 결혼하기 며칠 전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당시 누나는 38세였고 저는 35세였습니다. 누나는 그때 “이제 내가 결혼하니 너도 결혼할 수 있겠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자바에는 손위 형제들이 결혼할 때까지 동생들이 기다리는 문화가 있습니다.

누나가 그 말을 했을 때 “결혼하지 않을 것 같다”며 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동성 결혼이 불법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차별과 편견이 심합니다.

누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괜찮아.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어.”

과거 기억을 더듬다가 다시 누나와의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누나는 HIV 검사를 꼭 한번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성생활하는 게이로서 HIV와 에이즈의 위험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HIV 검사를 매달 무료로 해주는 단체에 속해 있었지만 검사를 받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른 채 삶을 마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혹시라도 HIV에 걸렸다고 나오면 사형 선고나 다름 없을 것 같았습니다. HIV 환자들은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결핵약을 먹으니 속이 메스껍고 식욕이 떨어졌습니다. 목에서 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몇 주 동안 20kg가 빠졌습니다. 수술했는데도 몸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누나의 말대로 HIV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이 나왔을 때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습니다. 가장 걱정된 건 제가 아니었습니다. 애인이었습니다. 애인이 나한테 옮았으면 어떡하지?

우린 9년째 연애 중이었습니다. 남자친구는 출장 갈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를 언제나 믿었습니다. 문제는 저였습니다. 전 항상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가졌습니다. 남자친구에게 검사 결과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을 잠적했습니다. 용기 내서 전화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남자친구는 완전히 침착했습니다. 어떻게 감염됐는지조차 묻지 않았습니다. 제가 삶의 의지를 다시 살릴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살기 위해 평생 복용해야 하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을 먹도록 항상 챙겨줬습니다.

남자친구는 세상이 무너져 내려 낙담뿐이었을 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해줬습니다.

남자친구도 HIV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성생활은 유지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성욕을 잃었습니다. 약 때문인지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반면 남자친구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손으로밖에 성욕을 해소해줄 수 없다는 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성생활을 극도로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2018년 중순 헤어졌습니다. 남자친구의 가족은 업체를 통해 여성과 결혼을 목적으로 한 만남을 주선했습니다. 남자친구는 양성애자였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가 언젠가 여성과 결혼해 곁을 떠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석달 후 그는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를 떠나보내고 우울한 시기를 견뎌야만 했습니다.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프로필에 HIV 양성이라는 걸 써야 할까? 데이트하기 적절한 시간은 언제일까?

이런 고민하는 제가 싫었습니다. 세상에서 절 지워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앱에서 두 명이 매치가 됐습니다. 한 명은 저보다 10살 어렸습니다. 현재 애인입니다. 또 한 명은 사업가였습니다. 둘 모두에게 HIV라고 밝혔지만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삶이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살도 다시 쪘습니다. 직장 일도 잘 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러운 애인이 있고 한 사람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바이러스는 제 몸에는 침투했지만 삶에 침투해 절 흔들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몸이 많이 나아서 몸에서 바이러스가 감지되지 않습니다. 다른 이에게 옮길 확률도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그래도 조심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콘돔을 사용합니다.

마음이 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모든 사람에게 상황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HIV 환자에 대한 대우는 참혹한 수준입니다. 직장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모든 걸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HIV 양성 환자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조차 힘듭니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세상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 숨을 고르고 있어도 괜찮습니다. 불행 속으로 침잠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언제나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누군가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필요한 건 약간의 용기입니다.

본 기사의 출처는 VICE ID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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