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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고수를 싫어하는 이유

조회수 2020. 11. 17. 11: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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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고수 향을 좋아하는데 난 안 좋아하는 이유. 이건 유전자 때문이다.
고수를 맛보고 있는 모습. 모든 사진: NAEUN KIM

난 고수를 싫어한다. 반면 가족들은 고수를 입안 가득 넣어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


고수를 싫어한다고 말하면 외국 사람들은 대부분 "아시아인이잖아요! 매 끼니 고수를 드시지 않으세요?"라고 반응한다. 음식점에 가서 고수를 빼달라고 하면 친구들은 창피한 듯 메뉴판 뒤에 숨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쨌든 난 고수가 싫다. 고수를 예전에도 싫어했고 앞으로도 싫어할 거다. 고수의 잔가지 하나만 봐도 속이 메스껍다.


고수를 안 먹은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어느새 입맛이 성숙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최근 굴과 블루치즈까지는 괜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트남 식당에 가서 쌀국수를 주문할 때 고수를 따로 한 접시 달라고 부탁했다. 


오랜만에 맛을 보려고 했다. 또 내가 여전히 고수를 싫어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주문해서 나온 쌀국수는 초록 잎으로 뒤덮여 있었다. 분명 고수를 따로 달라고 했는데 얹어서 준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숙여 먼저 고수의 향을 맡아봤다. 코끝이 찡했다. 첫술마저 고통스러웠다. 쓴맛이 가득했다. 썩은 비누 향이 들이쳤다. 몇 차례 씹으니 쓴맛이 더 강해져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결국 휴지에 뱉었다.


도대체 왜 이런지 궁금했다. 사실 더 궁금한 건 친구는 어떻게 고수를 잘 먹는지였다.

호주 총리 스콧 모리슨은 지난 선거 기간 고수를 좋아한다고 선언했다.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고수 아이스크림까지 판다. 그러나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2012년 캐나다 토론토대학 연구에 따르면 캐나다 거주 청년의 3~21%가 고수 향을 싫어했다. 미국 TV 요리 프로그램 요리사 이나 가르텐은 고수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그는 2017년 Munchies의 팟캐스트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요리에 넣어도 괜찮아요. 제가 그냥 싫어할 뿐이에요. 저한테 향이 너무 강해요. 비누 맛이 나고요. 그래서 다른 맛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요."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 중엔 잭 베일리라는 호주인도 있다. 그는 2013년 12월 '나는 고수가 싫어요(I Hate Coriander)'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현재 이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은 25만8000명이 넘는다. 잭에게 연락해봤다. 그는 시드니에 있는 태국 음식점에서 직장 동료와 점심 식사를 한 뒤로 페이지를 개설했다.

"고수를 듬뿍 얹은 요리가 나왔어요. 접시에 작은 농장을 만든 것 같았죠. 고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죠."

1만 개였던 페이지의 '좋아요' 수는 10만 개로 늘었다. 6개월 만이었다. "하루는 룸메이트가 요리하려고 고수를 사 왔더라고요. 그래서 고수를 놓고 중지를 세운 사진을 찍어 페이지에 올렸어요. 자고 나니 '좋아요' 2000개가 달렸어요."


잭은 고수를 싫어하는 건 집안 내력이라고 했다. 고수를 좋아해서 가족들에게 눈총을 받는 쌍둥이 동생만 제외하고. 잭은 동생의 차에 '고수가 싫어'라는 스티커를 몰래 붙이고 회심의 미소를 지은 적도 있었다. 잭은 "동생은 사람들이 왜 자신에게 경적을 울리고, 신호등 앞에 멈출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지 의아해했다"고 말했다.


잭은 페이지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2월 24일을 '국제 고수 혐오의 날'로 만들었다. 


날짜에 담긴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한다. 잭은 고수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의 공통점이 반갑다가 문득 전문가에게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질문: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 전 왜 고수가 싫은 걸까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의 식품 생물학자 앨리슨 존스 박사에게 물었다. 그는 “일부 사람이 고수 향을 못 견디는 이유에는 유전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존스 박사는 "고수에는 알데하이드 화합물이 들어있다”며 “특히 E-2-알켄(에틸렌열 탄화수소)은 비누의 성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유전적 차이는 감각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감각에는 다른 요인이 작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존스 박사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런 감각기관의 유전적인 차이 때문에 고수에서 비누 향이 난다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가 모든 상황에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존스 박사는 “난 고수를 좋아한다”며 “하지만 사람이 음식을 좋아하는 데에는 다양한 요인이 존재해서 이유를 정확히 알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호불호가 극심하게 갈리는 다른 음식에 대해 어떤 유전적인 차이가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분명히 증명하지 못했다. 예컨대 발효한 상어고기인 아이슬란드 요리 하카리를 어떤 사람들은 왜 잘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존스 박사는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지만 유전자뿐 아니라 그 음식에 얼마나 자주 노출되는지, 문화 정체성이나 여러 사회 요소가 함께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식이 좀 더 쌓였으니 고수를 다시 한번 더 맛보기로 했다.

고수를 싫어하는 이유가 화학 작용이라는 사실을 알고 먹으면 맛을 다르게 느낄 수도 있으니까.

같은 레스토랑에서 같은 음식을 주문하고 고수도 한 접시 요청했다. 전처럼 코끝이 찡했고 비누 향은 더 강하게 느꼈다. 한 입 먹어 보려고 무척 애쓰다가 결국 줄기를 손톱 크기만큼만 먹어보기로 스스로 합의했다.

아삭했지만, 쓴맛이 나고 역겨웠다.

식당은 글루텐이나 유제품의 경우 손님의 요구에 맞춰준다. 이런 친절을 채소에도 똑같이 적용해주면 된다. 손님에게 미리 물어보지 않고 파르메산 치즈를 요리에 뿌리는 경우는 없다. 고수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원하는 건 메뉴에서 재료를 투명하게 알고 싶다는 것과 다른 취향의 손님에게 맞춤형 음식을 제공해주면 좋겠다는 것 정도다. 단지 우리가 지닌 상식을 고수에도 한 번 적용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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