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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왕국의 은밀한 이야기: 술과 사치스러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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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1991년 북한 평안북도 창성군에서 제트스키를 타고 있다.

출처HUGO & CIE

1982년 초가을. 일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북한으로 건너간 지 두 달 정도 됐을 무렵이었다. 후지모토는 북일 상공회의소에서 운영할 예정이던 노래방 시설을 갖춘 일본 음식점에서 일하기로 돼 있었다. 당시 음식점이 완공될 때까지 기다리던 중이었다.

10월의 어느 날. 식당 사장으로부터 초밥 20인분을 서둘러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얼마 뒤 벤츠 3대가 식당 앞에 도착했다. 그 차를 타고 북한의 시골 풍경을 끝없이 바라보면서 어디론가 향했다. 2시간 뒤 해변에 있는 호화스러운 건물 앞에 도착했다.

후지모토는 새벽 2시쯤이 돼서야 연회장 손님들에게 초밥을 대접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만찬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 한 남성이 식탁에 놓인 음식의 종류를 물었다. 그건 참치의 뱃살 부분이었다. 남성은 그 부위를 한 접시 더 달라고 요청했다.

연회장 일을 마치고 이틀 뒤 평양으로 돌아왔다. 후지모토는 식당 주인의 손에 들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를 보고 얼어붙었다. 신문의 1면엔 참치 뱃살을 몇 번이고 주문했던 남성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그렇게 남성의 정체를 알게 됐다. 그는 당시 북한 김일성 주석의 아들이자 장차 독재자가 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었다.

머지않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식당 앞에 벤츠가 대기했다. 김정일이 배가 고프다는 신호였다. 후지모토가 이번에 도착한 곳은 평양 어딘가에 있는 ‘제 8번 연회장’이었다. 이런 일은 열흘에 한 번꼴로 있었다. 하지만 후지모토는 김정일의 식사를 준비한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요리에 대한 답례로 김정일로부터 벤츠 V450과 북한 운전면허증을 하사받았다. 후지모토와 김정일은 초밥을 매개로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북한 평양 ‘제 8번 연회장'

후지모토는 자서전 ‘김정일의 요리사’로 김정일과 나눈 우정을 전했다. 올여름 ‘마지막 계승자’란 책을 낸 외신 기자 애나 파이필드와도 경험을 나눴다.

후지모토가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였던 당시는 북한 최대의 암흑기였다. 정치적으로는 암살 시도가 계속됐고 사회적으로는 사람들이 아사하던 시기였다. 90년대 중반 북한에서 기근으로 사망한 사람은 최소 100만명인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가 일본 기린라거 맥주를 마시고 있다.

반면 북한 엘리트층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후지모토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후지모토는 88년 김정일에게 전속 요리사가 돼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건 공식적인 직책을 받고 그의 최측근이 된다는 의미다. 김정일의 사람이 되면서 깔려 죽을 만큼 많은 양의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 카드 게임을 하면 경품은 엉덩이를 데워주는 좌변기부터 피아노, 소니 캠코더와 같이 당시로선 놀랄 만큼 사치스러운 물건이었다.

김정일은 후지모토를 국민가수이자 복싱챔피언 엄정녀와 맺어줬다. 후지모토를 확실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여권을 압수하고 결혼하게 한 것이다.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와 북한 국민가수 엄정녀의 결혼식.

후지모토는 결혼식 피로연에서 양주인 코냑 한 병을 다 비우고 정신을 잃었다고 회상했다. 깨어나 보니 필름이 끊긴 동안 누가 와서 옷을 벗기고 음모를 다 밀어놓았다고 한다. 후지모토에 따르면 술은 김정일과 최측근의 삶에서 중요한 일부분이었다.

김정일은 연회에서 종종 손님들에게 코냑을 원샷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건강이 안 좋아져서 주치의의 요청으로 음주를 오랫동안 끊어야 했다. 그런데도 술을 좋아했던 터라 곧 긴장의 고삐를 늦추곤 했다. 김정일이 요트에서 술에 취해 비닐봉지 안에 소변을 보고 머리 위로 빙빙 돌려 바다로 던진 적도 있었다고 후지모토가 전했다.

김정일이 1989년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채로 배에 타고 있다.

후지모토는 음식 재료를 구하기 위해 차가 아닌 비행기를 타고 아시아를 누볐다. 과일은 싱가포르, 캐비아는 러시아나 이란, 생선은 고향인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왔다.

“요리는 자고로 눈이 즐거워야 해. 모양과 색감이 즐길 만해야지.” 김정일은 이 말을 평소 자주 했다고 한다. 김정일의 식탁에 오를 요리는 모양뿐 아니라 위생도 완벽해야 했다. 주방 직원들은 쌀 한 톨까지 모두 검사한 뒤에야 요리를 상에 올렸다.

미식가인 김정일은 후지모토가 만든 이키즈쿠리(생선을 살아 있는 상태, 모양대로 회를 친 요리)를 특히 좋아했다. 또 김정일은 닛신식품의 ‘라오 라면’을 좋아했다.

후지모토는 자신이 북한에 잘 맞아 보여도 부족한 점도 많았다고 전했다. 지도자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둘이 압록강에서 제트스키를 탔을 때였다. 김정일이 먼저 경기를 제안했다. 후지모토는 김정일이 자신의 스키 실력에 감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승부에서 이겼다. 김정일은 한 달 후 재시합을 청했다. 놀랄 만큼 크고 강력한 신형 제트스키를 가져와 승부에서 후지모토를 압살해버렸다.

몇 년 후 독재자를 화나게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일깨워준 사건이 있었다. 후지모토는 김정일 소유의 집에서 살았다. 방을 지저분하게 썼다는 이유로 6개월간 평양 체육관에서 강제 노역하는 형벌을 받았다. 그곳에서도 초밥을 만들어야 했다.

후지모토는 북한에서 여러 풍파를 겪었다. 하지만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돌려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새천년이 시작될 때쯤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온 후 충성심을 의심받아 2년 가까이 가택에 연금된 것이다.

대세가 불리하다고 느낀 후지모토는 일단 가택 연금이 끝나면 탈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음식으로 북한에 들어왔듯이 음식으로 탈출 계기를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2001년 3월 후지모토는 일본의 TV 프로그램을 김정일에게 보여줬다. 그 요리 프로그램에는 매우 먹음직스럽게 생긴 성게 덮밥이 나오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정일은 성게 덮밥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때 후지모토는 홋카이도에서 성게를 구해 똑같은 요리를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 한 달 뒤 김정은의 허락을 받았다. 후지모토는 평소보다 훨씬 더 큰 가방을 들고 고국인 일본으로 향하는 여객기에 올랐다.

그렇게 20여년이 지났다. 모두 과거의 일이 됐다. 후지모토는 김정일의 후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대로 2013년 북한에 돌아갔다. 2017년 평양에서 초밥과 라면 식당을 열었다.

본 기사의 출처는 VICE Franc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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