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세계여행?! 외국인과 현지 집밥 쿠킹 클래스
어느 지역이든 의외로 기억에 오래 남는 게 냄새다. 어디서든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아, 여기 미국 같아. '아 여기 홍콩 같아' 라고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속 냄새의 근원은 보통 음식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이 쿠킹 클래스를 찾는 사람들은 '과거의 여행 향수를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좋은 추억이 있는 나라의 원주민과 이야기하며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만에 경험하는 세계문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원데이 클래스 플랫폼 '마이컬처이즈'는 한국어가 능숙한 외국인 강사가 각 나라 대표 집밥 요리나 디저트를 알려주는 쿠킹 클래스를 운영한다. 인도, 스웨덴, 페루, 콩고(DRC), 터키, 브라질, 말레이시아, 튀니지, 일본 등 10여 개국의 대표 요리를 함께 만들어보고 식사하는 시간을 통해 세계의 음식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사실 ‘마이컬처이즈’는 코로나가 터지기 전,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한국전통문화 원데이 클래스’를 중점으로 개발된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히자 ‘우리나라에서 잠시나마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서비스’로 노선을 틀었다. 마이컬처이즈의 대표 채서원 씨는 이 아이디어를 종종 해외여행을 가서 현지 쿠킹 클래스를 듣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각 나라의 쿠킹 클래스를 그대로 한국에 옮겨오면 ‘해외여행이 고픈 사람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외국인 자체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쿠킹 클래스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한국어가 능숙한 외국인이라니. 외국어에 대한 부담도 없는 현지 쿠킹 클래스니 말이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보기로 했다.
필자가 선택한 수업은 ‘인도 요리 클래스’였다. 가장 인기 클래스 중 하나라는 인도 클래스는 채식 위주의 집밥이 컨셉이었다. 인도는 흔히 커리와 난을 주식으로 생각한다. 물론 한국에서 인도 식당에 가면 당연히 먹는 게 커리와 난, 탄두리 치킨 등 특유의 향신료가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건 요리라니 다소 뜻밖이었다.
강남에서 얼마 전에 합정으로 이사했다는 쿠킹 스튜디오는 아담했다. 1층에 위치한 공간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밤에는 운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들어서면 넓은 아일랜드 식탁과 냉장고 등 주방 기기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 내가 쿠킹클래에 왔구나' 실감하기 시작한다. 쿠킹 클래스 자체가 처음이었던 터라 뭘 해야할지 몰라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구경을 했다. 전체적인 느낌은 아마 EBS <최고의 요리비결>이랄까?
기다림도 잠시, 오늘의 강사가 되주실 분이 자전거와 함께 헉헉 소리를 내며 도착했다.
인도 요리 클래스의 ‘나니’ 강사는 이탈리아 요리학교를 수료하고 실제 미슐랭 스타를 받은 식당의 인턴으로 일한 경험도 있는 ‘베테랑’ 강사였다. 나니 강사는 한국 문화가 마음에 들어 인도에서 독학으로 한국어를 마스터한 후,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인도에서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한국 대학교로 편입학한 그녀는 한국학 전공을 하며 ‘대한외국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이 날 필자는 단순히 인도하면 떠오르는 음식인 ‘커리’가 아니라, 실제로 강사가 집에서 자주 해 먹던 요리를 배웠다. 특히, 나니 강사의 고향이기도 한 인도 북부 지방에서 주로 먹는 시금치를 활용한 ‘팔락 파니르(시금치커리)’와 버터를 곁들인 인도 기본 빵 ‘바티아 로티’를 만들었다. 인도에서는 의외로 ‘커리’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흔해서 넣는 재료에 따라 이름을 붙이면 자연스레 00커리겠거니 인식한다고. 시금치를 의미하는 ‘팔락’과 생치즈인 ‘파니르’를 합친말인 '팔락 파니르'는 이 자체로 커리인 것이다.
가장 먼저, 나니 강사는 재료 하나하나를 설명했다.
시금치는 차가운 곳에서 잘 자라는데 자신의 고향이 북쪽이라 자주 접한 재료였다는 것부터 인도 요리에 무조건 들어간다는 큐민씨도. 그리고 오히려 강황은 인도에선 약재로 인식되어 아주 조금만 쓴다는 것과 인도 빵은 발효를 거치지 않는 것까지. 정말 재료 각각에 담긴 사소한 인도 문화도 세세하게 설명해줬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인도 식당에 가면 흔히 먹는 대표 메뉴인 ‘난’과 ‘커리’는 인도에서도 특별하게 외식하는 날만 먹는다고 했다. 주식으로 커리를 먹는 건 맞지만 그런 ‘특별한 커리’는 현지인도 매일 먹지는 않는다며 잘못 알려진 인도 상식도 바로잡아 주었다.
모든 재료에 대한 설명이 끝나면 본격적인 요리가 시작된다. 강사가 직접 요리를 해주진 않는다. 설명과 시범만 보여준다. 수강생들은 그것을 보고 들은 후 따라하면 된다. '팔락 파니르'를 먼저 만들기로 하고 제일 처음 한 일은 시금치 다듬기. 차가운 물에 시금치를 탈탈 씻고 나니 손이 빨개졌다. 이어지는 수업 내내 나니 강사는 화려한 경력만큼 풍부한 요리 지식으로 왜 그렇게 조리를 해야 하는지 설명을 단계마다 덧붙였다. 그래서 ‘요린이’도 이해하며 따라갈 수 있었다. 양파를 까고 썰고, 토마토를 썰고 태어나 처음으로 생강도 숟가락으로 다듬었다. 요리의 수준이 대충 집에서 볶아 먹는 김치볶음밥 수준은 아닌 듯 했다.
이때 넣는 향신료가 빨간색 빛을 띄게 되는데, 어떤 고추가루를 쓰냐에 따라 맵기를 조절할 수 있다고도 했다. 새삼 매운 고추 안 매운 고추가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또! 향신료를 종지에 넣는데 어디선가 인도 냄새가 나서 킁킁 대니 다양한 향신료 중에서도 '큐민씨'가 그 양꼬치스러우면서도 인도 음식점의 메인 향기를 뽐내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상상하던 커리와 멀어져갔다. 시금치 커리인 ‘팔락 파니르’의 화룡정점인 시금치를 넣는 순간 너무나도 '파래'스럽게 초래진 색에 약간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초록인 커리는 본 적이 없었기에 음식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이따 완성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마지막 단계인 생치즈 ‘파니르’를 깍뚝 썰어 넣었다. 파니르는 약간 두부를 응축해 만든 치즈처럼 아주 담백하고 고소했다. 나니 강사는 이 맛을 '無'맛으로 표현했다.
두번째 음식인 빵을 만들 차례. 정말 쉬웠다. 이게 빵이라고? 흔히 아는 빵보다는 또르띠야와 비슷하다. 통밀가루에 물로만 반죽을 해서 오분정도 글루텐의 긴장을 낮춘 후에 밀대로 모양을 잡아 버터를 발랐다. 그리고 동글게 말아 다시 한 번 동그랗게 모양을 잡은 뒤 밀대로 둥글 납작하게 만들어주면 구울 준비가 끝난다. 너무 쉬워서 집에서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 보는 얕은 후라이팬에 굽는다. 어느 정도 노릇해지고 반죽이 부풀자 나니 강사가 후라이팬을 빼고 냅다 불 위에다 반죽을 올렸다. 그러자 자주 보는 난처럼 군데 군데 부풀며 익어갔다. 처음 해보는 요리법에 너무나도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다 구워진 빵의 표면에 버터를 발라주면 끝!
근데 그 맛이 정말 상상 그 이상, 두 배 이상으로 맛있었다. 너무 놀랐다. 아까 중간에 살짝 맛을 의심했던 자신이 죄스러울 정도. 나니 강사를 따라 빵에 파프리카와 치즈를 함께 얹어 먹으니 처음 먹어보는 맛이지만 '정말 맛있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 됐다.(원래 레시피에는 파프리카가 없었지만 나니 선생님이 더 좋은 식감을 위해 즉흥적으로 추가했다. 이건 아주 브릴리언트한 아이디어였다.) 양파와 파프리카는 오랜시간 졸여서 단맛만 남았고 생치즈는 마치 단단한 두부를 응축한 것처럼 고소하고 담백했다. 거기에 달콤 쫀득한 반죽을 얹어 먹으니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맛인데 진짜 맛있는 맛이 탄생했다. 마치 인도 현지 식당 중에서도 노포에서나 팔 법한 인도식 백반을 먹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