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에서 넘어진 여성 도와준 후 벌어진 일

조회수 2021. 1. 8.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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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미지 출처 = unsplash

그런 줄 알았다. 아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망설일 것도 없이 보자마자 몸과 마음이 움직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0년은 훌쩍 지난 일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최근 본 한 뉴스 때문이다. 

캐나다 토론토에 머무를 때였다. 정말 살을 에는 듯 하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맹추위가 거세던 어느 겨울날 아침이었다. 두꺼운 오리털 파카에 눈만 나오게 생긴 털모자로 중무장을 하고선 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역내가 서너 번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야 플랫폼에 갈 수 있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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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움츠리고 계단을 중간쯤 오르고 있던 차에 앞쪽에서 “으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가죽 소재의 스커트에 롱코트를 입은 한 젊은 여인이 내지른 소리였다. 아마도 신고 있던 롱부츠 뒷굽이 계단과 삐끗하며 기우뚱한 것으로 보였다. 앞으로 넘어지면 크게 다치겠다 싶은 생각이 들던 찰나, 다행히(?) 몸이 뒤로 젖혀지며 엉덩방아를 찧은 채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난 반사적으로 내려오는 여인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고, 가까스로 그녀의 질주를 막았다. 내가 온몸으로 막지 않았다면 계단 끝까지, 마치 눈썰매 타듯 내려갔을 상황이었다. 롱코트의 뒷자락이 썰매역할을 하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길에서 넘어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빠르겠지만 넘어지자마자의 상황은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것 때문에 고개를 들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캐나다에서도 같았다. 잠시 고개를 무릎 쪽에 파묻고 있던 그녀는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일어나더니 속삭이듯 “고맙다”고 말하고선 두 눈을 바닥에 떨궜다.

출처: 이미지 출처 = (좌)flickr, (우)unsplash
출처: 이미지 출처 = (좌)flickr, (우)unsplash

그녀가 들고 있던 파일과 텀블러 등을 주워 건네며 “다치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그녀는 “괜찮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두세 번 더한 채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잠시 기다리라던 그녀는 가방에서 자그마한 캐나다 국기가 새겨진 배지를 꺼냈다. 감사의 뜻이라고 내 손에 쥐어줬다. 나는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그 배지를 가방에 꽂고 다녔고, 볼 때마다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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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뉴스를 검색하다가 한 뉴스에 시선이 꽂혔다. 영국의 젬마 허트라는 여성이 주차장에서 쓰러진 남성을 발견했다. 심폐소생술(CPR)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긴급한 상황이었다. 젬마는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쓰러진 남성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결국 남성은 사망했다. 

며칠 뒤 젬마는 한 장의 청구서를 받았다. 당시 응급 상황 때문에 주차장에 14분을 더 머물렀던 그녀에게 100파운드(한화 약 15만원)의 벌금이 부과된 것이다. 젬마는 주차장 회사 측에 CCTV 등을 통한 상황 확인과 벌금 면제 등을 요청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거절이었다. 기간 내 벌금 납부를 하지 않으면 추가 요금을 징수하겠다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이후 젬마는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며 다시는 그 주차장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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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를 베풀어 한 남성의 생명을 살리려 했던 젬마의 상황은 10여년 전 지하철역의 해프닝을 떠오르게 했다. 물론 두 사건을 같은 조건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선의를 행하려는 행동의 시작은 같았고, 그 행동에 따른 대응의 차이는 명확히 달랐다. 토론토에서의 추억은 아직도 훈훈하게 떠오르는 반면, 영국 여성 젬마에게 당시 주차장의 기억은 잊고 싶을 만큼 싫은 순간일테니 말이다.

가끔 이런 얘기를 듣거나 볼 때가 있다. “요새 세상이 무서우니 남 일을 돕거나 끼어들거나 하지 말아라.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도 하지 말아라.” 충분히 수긍이 가는 말이다. 하지만 힘들 때마다 항상 나타나는 슈퍼맨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벌어진 자그마한 어려운 일에 도움을 전하는 행위마저 못하고 안하는 문화가 된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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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고마움을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도 너무나 안타깝다. 고마움에는 ‘왜’가 붙지 말아야 한다. 단서를 달지 말아야 하는 표현에는 ‘미안함’도 함께 한다. 두 가지 표현은 극과 극에 있는 감정이지만 어찌 보면 같다. 진심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나아가 서로 표현하는 사회여야 아름다울 수 있다. 지금껏 꽤 오랜 시간을 우리는 표현하며 살아왔고, 때문에 ‘관계’를 뛰어넘어 ‘인연’을 만들어왔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고,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이런 마음가짐이 갈수록 따스함이 사라져가는 우리 사회에 꺼지지 않는 불쏘시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시 누군가 어려움에 닥쳤을 때 휙~ 하고 나타나는 슈퍼맨이나 원더우먼이 보이면 응원하자. 진심으로. 때로는 내가 나서기도 했으면 한다. 나로 시작한 슈퍼맨 되기가 너로, 우리로, 다함께 모두로 바뀌는 상상은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 전 세계 사람이 슈퍼맨이 되는 공상과학 같은 꿈이 현실로 다가오길 간절히 바라본다. 꼭. 

슈퍼맨이 되고 싶지만 수퍼만가는 여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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